'제비다방'에서 모던보이 이상을 추억하다

김재희 2012. 11. 28.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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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이런 식으로 시작하여 기어이 13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주장하는 시를 기억하는지. 바로 1934년 7월 24일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의 첫머리이다. 당시 신문사에 폭탄 테러를 하겠다는 등의 빗발치는 항의로 연작시 '오감도'는 8월 8일 연재가 중단되고 만다. 신문사 문예부장 이태준은 사표를 품속에 넣고 다니면서 '오감도'를 살려보려 애썼지만 결국 포스트모던한 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본명 김해경,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19세에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근무하다 23세에 퇴직한 이상은 시인으로 전업하고 다방을 차린다. 지병인 폐병 치료를 위해 갔던 온천에서 만난 기생 금홍과 종로 2가에 연 '제비다방'은 당대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정지용, 이태준, 이효석, 김기림, 이무영, 박태원 등 구인회 문인들을 비롯해 화가, 성악가 같은 예술가들이 드나들면서 살롱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커피는 뒷전이고, 문학과 예술을 논하며 일본인에게 받는 차별과 설움을 토로하고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예술가들의 일터이자 오락장이었다. 결국 제비다방은 2년 후 폐업을 선언하게 된다.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돈 되는 손님은 없고 죄다 룸펜인 무일푼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적자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커피를 통해 현실과 괴리된 낭만을 탐하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시대는 역사상 가장 불행하면서도 낭만적인 시대로 기억된다. 독립적 사상을 압박받고, 검열에 의해 글들이 잘려나가고,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조선인에 대한 차별로 취직하지 못한 룸펜들이 어디에나 많았다. 비록 가난하고 속박받는 시절이었지만 신문물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품고, 낭만을 즐길 줄 아는 감성을 지닌 모던보이, 모던 걸들로 경성 거리는 넘실거렸다. 백화점, 박람회를 통해 선보인 엘리베이터, 유성기, 시계, 전화기, 마네킹, 스타킹, 서양 화장품, 스케이트, 골프채 등의 신문물은 경성 시민에게 충격과 더불어 신기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경성 거리에는 100여 개의 다방이 난립했고, 근무하는 여급만 수백여 명에 이르렀으며, 커피라는 고급문화를 즐기기 위한 남녀들이 다방을 들락거렸다. '무용가 최승희는 조선호텔 로비 선라운지에서 항상 이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간다더라' 식으로 다방과 커피 문화는 상류층 그리고 최신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다.

청계천변에는 무허가 움막에서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이 득시글거렸고, 개천에 버린 오물 냄새로 숨 쉬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의 처량한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다방에서는 여전히 그것과는 괴리된 꿈과 낭만을 느끼게 해주는 커피의 은은한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금시계를 차고 중절모에 더블버튼 스트라이프 양복을 갖춰 입은 모던보이와 핀으로 고정한 트레머리에 하얀 레이스 블라우스에 투피스 정장을 갖춰 입고 비어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모던걸들이 경성에 새로 생겨난 다방을 들락날락하였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고 웃고, 미스코시 백화점의 진열대에 걸린 서양 드레스를 보고 감탄하며, 유성기에서 재즈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던 시대였다. 이런 화려한 경성시대는 암울한 정치 상황에서도 문학의 최고 황금기를 이끌어내는데, 이는 바로 경성의 낭만과 희망이 그 당시 문인들에게 끼쳤을 영향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기이한 시구들 속에 비밀을 간직한 시인

이상은 제비다방을 정리한 이후에도 '쓰루(鶴)', '69', '맥' 등의 다방을 인수하고 여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다. 금홍과 다방을 열고 동거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대표소설 <날개>를 발표했고, 이 외에도 여러 편의 소설과 수필에 다방을 배경으로 지루하게 살아가는 남자의 일상이 보여지는데 이것을 보더라도 제비다방이 이상의 작품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나비넥타이에 그럴듯한 양복을 걸쳐 입고, 백구두로 경성을 오가던 모던보이 이상은 26세에 친구의 동생 변동림과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결국 이상은 석 달 후 도쿄로 떠나게 된다.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잡혀 감옥생활을 하다 지병이 악화되어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유학생들이 죽은 그의 얼굴에 석고를 발라서 데스마스크를 떠놓았지만 유실되고, 정확한 사인이 가려지지 않아 미스터리에 묻혔다. 기이한 시구들 속에 비밀을 간직한 시인으로 기억되는 이상. 그의 시들이 함축한 의미는 지금도 여러 평론가에 의하여 제각각 다른 해석이 있고, 이상이 27세에 요절한 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팬의 사랑을 받는 문인이다. 죽음에 직면해서도 멜론이 먹고 싶다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위트 있는 시인 이상.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시는 영원히 살아남아 서울 구석구석에서 낭송되고 있다.

☞ 김재희

작가는 중학생 때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를 읽고 심취하여, 이상을 동경하게 되었다. 20여 년이 흐른 뒤 <경성 탐정 이상>이란 추리소설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중학교를 다니던 당시 이상의 시 '거울'에 그림을 그려 시화전에도 출품한 바 있다. 그녀에게 이상은 글을 쓰게 된 계기이자, 학창시절의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 통인동 154-10번지

는 이상(1910~1937)이 3세 때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 23세까지 거주하던 집터의 일부일 뿐 이상이 살던 집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행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이상의집'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부지 매입 이후 (재)아름지기와 공동의 노력으로 운영·관리되고 있다. 현재 '이상의집'은 과거 이상이 제비다방에서 당대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문화·예술인들이 소통하는 공간인 '통인동 제비다방'으로 내년 4월 17일(이상의 기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12월에는 이상, 서촌, 근대를 다룬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다방'도 열 예정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문의02-741-8374, www.arumjig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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