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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블랙아웃 주의보…동영상이 트래픽 폭증 주범

  • 김헌주 기자
  • 입력 : 2012.11.26 09:17:44
  • 최종수정 : 2012.11.27 11:54:01
# 2012년 12월 31일 오후 11시경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리는 서울 종각 보신각 주변. 사상 최대 인파인 20만명이 한꺼번에 몰리자 이동통신사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하면서 데이터 트래픽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은 일주일 전부터 이동기지국 추가 설치 작업을 끝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지만, 예상외로 많이 모인 인파가 변수로 작용했다. 11시 30분 데이터 트래픽이 기지국 용량에 근접하자 한 이통사는 과다 트래픽을 유발하는 동영상 신호를 차단하기로 했다. 반면 다른 이통사는 데이터 분산처리 기술만 믿고 결정을 미루다가 결국 통신망 자체가 다운되는 사태를 맞았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일부 지역에 데이터 트래픽이 몰려 블랙아웃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망관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일부 지역에 데이터 트래픽이 몰려 블랙아웃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망관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예상치 못하게 몰릴 경우 갑작스럽게 통신망 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상 시나리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우가 현실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이동통신 3사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무섭게 늘면서 ‘통신 블랙아웃(잠깐용어 참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데이터 트래픽은 17만2629테라바이트(TB)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14만1803TB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올 연말에는 50만TB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만7036TB에 불과했던 데이터 트래픽이 2년 만에 30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이통사별로는 SK텔레콤(상반기 8만5184TB)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이 발생했다. 다음 KT(5만1036TB), LG유플러스(3만6409TB)순이다. 가입자 5 대 3 대 2의 비율이 트래픽 발생량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이터 트래픽 2년 만에 30배 늘어

앞으로도 트래픽 폭증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 에릭슨은 한국의 트래픽이 2017년까지 연평균 100% 이상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평균 증가율 60%보다 40%포인트나 높다. 전력대란 우려만큼이나 통신대란을 우려해야 하는 대목이다. 일부 지역 통신망 장애는 다른 지역에도 곧바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통신망이 다운되는 통신 블랙아웃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서기만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데이터 트래픽이 기지국 용량을 초과하는 순간 망 과부하에 따른 블랙아웃이 올 수 있다”며 “지난해 9월에 발생한 LG유플러스 데이터망 불통 사건을 포함해 실제 이 같은 위기가 몇 차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통신망 장애로 인한 장비 보수비용도 비용이지만 소비자 피해 보상, 민원 처리가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단계별로 블랙아웃에 대한 만반의 대책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시그널 트래픽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향이 있어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서버를 별도로 설치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도 “트래픽이 집중되는 행사나 특정 이슈가 있는 장소에는 기지국 용량을 늘리고, 이동기지국을 투입해 트래픽을 분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인파가 과도하게 몰리는 유명가수 콘서트와 거리응원 등의 경우엔 음성 신호 중 일부를 차단해 통신 블랙아웃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통사가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 패킷당 요금을 내리고,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하면서다. 2010년 8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출시된 직후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월 278메가바이트(MB)에서 1년 뒤 759MB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멀티미디어 처리 기능이 향상된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콘텐츠가 대용량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 해상도가 개선되자 사용자들이 고화질의 사진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이는 데이터 폭증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이 됐다.

한국, 2017년까지 연평균 100% 증가

마지막으로 유튜브(YouTube)와 같은 플랫폼의 등장이다. 롱텀에볼루션(LTE) 시대가 되면서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자 유튜브 이용량이 급속도로 늘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모바일 유튜브 트래픽은 하루 48TB로 올 초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모바일방송 서비스도 트래픽을 늘리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전체 트래픽의 70% 이상이 모바일방송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모바일에서도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P2P 서비스가 제공될 경우 데이터 트래픽은 눈덩이처럼 커질 전망이다.

문제는 데이터 트래픽 증가 속도를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는 이통사가 투자를 게을리해서가 아니다. 올해 초 SK텔레콤은 설비투자(CAPEX) 금액으로 2조3000억원을 예상했지만 추가 예산을 편성해 5000억원을 더 투입했다. KT, LG유플러스도 당초 계획보다 각각 3000억원, 2000억원을 추가로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인프라 부족이 계속 거론되는 건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도 인프라 미흡으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미국 통신사 AT&T는 아이폰 도입 이후 트래픽 급증으로 통화지연, 연결장애 문제를 겪었다. 뉴욕 시내 통화가 끊기는 비율이 평균 30%를 기록할 정도다. 독일 통신사 O2도 과다 트래픽으로 통화불통, 데이터 전송 속도 저하 문제가 발생하면서 6000건의 고객불만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통신사는 트래픽이 갑자기 늘어날 경우 속도 조절을 통해 데이터양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 주파수 재배치 같은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요금제 정비가 거론된다. 음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요금제를 데이터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데이터 정액제에 가까운 현재의 요금제를 종량제로 전환하자는 얘기다.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 등장으로 음성과 문자 매출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데이터 요금을 저렴하게 구성해서는 수익 악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개편해야

나상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이터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음성-데이터 간 비용 수익구조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호접속료(잠깐용어 참조)를 급격하게 인하할 수 없기 때문에 음성 요금을 낮출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음성 요금을 대폭 줄이고 데이터 요금을 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내와 마찬가지로 상호접속료를 주고받는 유럽에서 음성 무제한 요금을 내놓은 걸 보면 국내 이통사들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또 하나는 주파수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주파수만으로는 내년 상반기 일부 지역에서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강종렬 SK텔레콤 네트워크기술원장은 “가입자 증가와 데이터 폭증은 체감 속도 저하를 수반한다. 주파수 용량 증설 지연 시 최악의 경우 통신망 다운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파수 추가 확보 난항

그러나 아직까지 주파수 재배치 관련 방송통신위원회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보느라 시급한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트래픽 폭증에 대비해 망 관리 권한을 대폭 위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주파수 재배치다. 군용 주파수 같은 경우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방송 주파수다. 조만간 디지털TV로 전환하면 남는 주파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통신용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반면 통신 블랙아웃은 기우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블랙아웃은 정치권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에 대한 대응 카드로 이통사가 들고나온 용어일 뿐, 현실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설명이다.

“통신 블랙아웃이 오기 전에 이통사가 알아서 망 투자에 나설 것이다. 이용자가 더 많은 데이터를 사용할수록 이통사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로 요금제가 설계돼 있는 상황에서 이통사들이 망 증설을 안 하고 버틸 리 만무하다.” 김인성 IT칼럼니스트 얘기다.

잠깐용어 *통신 블랙아웃
데이터 트래픽이 용량을 초과하면서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해 통신망 일부 또는 전부가 차단되는 걸 말함. 지난해 전력망 블랙아웃 사태 때 지역별로 전력 공급을 차단한 것과 유사하다.

잠깐용어*상호접속료
서로 다른 통신사가 통신망을 상호 연결할 때 발신 측 사업자가 착신 측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통신망 이용 대가를 말함. SK텔레콤 가입자가 KT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면, SK텔레콤은 1분당 31.75원을 KT에 지급해야 한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 사진 : 박정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3호(12.11.21~11.27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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