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속되고 싶다, 대한민국 창피 좀 주게"

2012. 11. 25. 14: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경훈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환자복을 입고 분만대 위에 앉아 방금 출산한 아기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MBC 드라마 < 골든타임 > 의 최인혁을 연상케 하는 의사는 아기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간호사가 V를 그리며 웃는다.

유신 40주년을 맞아 평화박물관이 기획한 '유신의 초상' 전시회에 전시된 그림 <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 , 일명 '박근혜 출산' 그림 이야기다.

홍성담_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194×265cm, 캔버스에 유채, 2012

ⓒ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이 그림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22일 오후 이 그림을 그린 민중화가 홍성담(57) 화백을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오전에도 세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는 홍 화백은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 거침없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며 박근혜 후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홍 화백은 새누리당의 법적 대응 방침을 두고 "후보 풍자하는 그림 그렸다고 화가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1류 코미디"라며 "새누리당이 내건 '감성의 정치'는 말의 구호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런 정도라면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그건 국민의 의무다"라며 새누리당의 공세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걸로 구속되면 세계의 모든 언론들이 집중을 할 텐데 이런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냐"며 "나를 구속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신성한 출산을 비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출산은 숭고하지만, 예술에는 성역이 없다"며 "어떤 성역을 두는 것은 자기 스스로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감각할 수 없는 것까지 미학적 형식 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다. 거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성역을 두는 것은 자기 스스로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다음은 홍성담 화백과의 일문일답이다.

"작품, 이렇게 논란될 줄 몰랐다"

- 작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럴 것이라고 예상했나.

"물론 선거 국면이니까 논란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크게 논란이 될 줄은 몰랐다. 가십으로 끝날 걸로 생각했다."

- 어떤 의도에서 이 작품을 그렸나.

"올해 유신 40년인데 유신의 당사자를 아버지로 둔 박근혜씨가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고,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신 40년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로 이 작품을 그렸다."

- 그림 이야기를 해보자. 그림 속의 갓난아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의미하는 건가?

"물론 의도한 바는 있지만, 그림은 그 자체로 상징체계를 갖는다. 박정희일 수도 있고, 그냥 박정희를 닮은 아기일 수도 있다."

- 그림의 제목이 <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 이다.

" < 골든타임 > 의 최인혁은 병원의 여러 잘못된 관행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주체의식이 강한 의사마저도 각하, 혹은 각하를 닮은 아기를 보니까 차렷 부동자세로 경례를 붙일 수밖에 없는, 유신 트라우마랄까 그런 것을 표현했다. < 골든타임 > 에 4명의 주연급 배우가 나오는데, 그림의 인물은 모두 그들을 묘사한 것이다. 아기에게 경례하는 사람이 배우 이성민, 아기를 건네주는 사람이 배우 황정음, 놀라고 있는 사람이 배우 이선균, V자를 그리는 사람이 배우 송선미다."

- < 골든타임 > 이 MBC에서 방영됐는데, 최인혁의 거수경례가 MBC의 충성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풍자의 미학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풍자적 구성 형식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코드로 읽힌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보는 사람이 다양한 해석을 하는 게 풍자적 그림을 보는 재미다. 나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해석이다, 귀한 해석이다'하며 즐거워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인물의 성격과 행동의 부조화를 통한 익살이었다. 예컨대 의사로서의 주체의식이 강한 최인혁이 거수경례를 하는 것은 드라마 속 최인혁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여기서 익살이 나온다. 배우 송선미가 연기한 간호사도 전혀 농담도 할 줄 모르는 성격인데 여기서는 V자를 그린다. 이런 것 자체가 익살이다."

"박근혜 대통령 되면 던져주는 뼈다귀 주워 먹으려고..."

작업실에서 인터뷰 중인 홍성담 화백.

ⓒ 김경훈

-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사자는 태연한데 주변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충성경쟁을 벌이다 보니까 문제가 커졌다"는 발언을 했다. 지금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여성모독의 문제가 아니라 '충성경쟁'의 문제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측근들이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들한테 던져주는 뼈다귀를 주워 먹으려고 못난 짓거리를 하고 있다. 박근혜 밑에 있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전부 시커멓고 어두운 욕망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참신한 얼굴은 전혀 안 보이고, 구태의연한 사람들뿐이다.

또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감성지수(EQ), 문화적 마인드가 제로다. 문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풍자와 어울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넘어갈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원인이다."

- 홍성담 화백이 생각하는 박근혜 대선후보는 어떤 사람인가.

"박근혜를 볼 때 여자라기보다는 중성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박근혜 안의 남성성, 심리학 용어로는 '아니무스'가 대단히 강하게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 남성성이 아버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고, 그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나타나는 거다. 그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뭐냐. 한마디로 자신의 주체의식이 성숙되어 있지 않은 어린애라는 말이다."

"표현의 자유 쟁취하는 건 국민의 의무"

- 새누리당 여성의원들이 "여성의 가장 지고지순하며 숭고한 출산까지도 예술을 가장해 정치적으로 선동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 외에도 출산을 비하한다는 지적이 많다.

"출산이라는 주제는 고대 벽화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려온 주제다. 어떤 곳에서는 아주 참혹하고 징그럽게 묘사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아주 성스럽고 환희로운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니카 스주는 자궁에서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오는 장면을 그리는데 보기에 따라 불쾌할 수도 있는 그림이다. 전통문화인 판소리나 탈춤에서도 출산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장면을 통해 당대의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고, 지배자들을 야유하고, 조소했다.

출산은 숭고한 것이지만, 인간에게 가장 거룩해야 할 종교적 문제까지도 예술가에게는 일종의 소재가 된다. 그것이 아무리 성스럽고 거룩한 것이라 하더라도 예술 앞에서는 성역이 없다. 그런 맛에 예술가를 하는 거 아닌가? 자유롭게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싶어서 예술가를 선택한 건데, 그것을 제약하려고 달려들면 문제가 있다."

- 정치인 박근혜가 아니라 개인 박근혜를 인신공격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오히려 이런 그림이 박근혜를 피해자로 만듦으로써 또 다른 지지층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가.

"억지주장이다. 공인 박근혜만 있지, 무슨 개인 박근혜가 있냐. 언제 개인 박근혜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적 있냐. 식구들과 집에서 밥 먹고 이런 개인적 면모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리고 박근혜는 이미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고, 공인이다. 그리고 공인은 얼마든지 비꼬고, 조롱하고, 야유하고, 조소하고, 물어뜯을 수 있다. 그것이 그렇게 괴롭고 참기 힘들면 왜 대통령 후보로 나오나. 혼자 숨어있어야지."

- 새누리당이 법적 대응을 검토했는데,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문화적 표현, 예술적 표현을 법적인 잣대에 올려놓는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그만큼 새누리당이 마음의 여유가 없고, 정신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구속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국격이 높아지는 꼴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만약 이런 걸 가지고 구속되고 재판하면, 세계의 모든 언론들이 집중을 할 텐데 이런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웃음) 세계 경제규모 15위권인 나라에서 선거 국면에서 후보 좀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림 그렸다고 화가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정말 1류 코미디다. 대한민국 창피 좀 주게 구속해줬으면 좋겠다."

- 한 인터뷰에서 "이런 정도의 자유가 없으면 국적 포기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정말 그럴 각오인가.

"화가 나서 반어법으로 한 이야기다. 내가 왜 국적을 포기하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그들과 끝까지 싸워야지.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데,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런 정도라면 싸워서 쟁취해야지. 그건 국민의 의무다."

- < 바리깡Ⅰ-우리는 유신스타일! > 작품은 어떤 의도로 그렸나.

"(격앙된 어조로) 박근혜씨가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는데, 인혁당이 뭐냐. 박정희 유신독재를 비판했다고 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을 하고, 바로 재판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교수대에 매단 것 아닌가. 한두 명도 아니고 8명의 젊은이를 무고하게. 그런데 버티다가 나중에 사과했다. 사과를 했으면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바로 오후에 부산에 내려가 말춤을 췄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애달픔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까 화가 났다. 그래서 그린 그림이다."

홍성담_바리깡Ⅰ-우리는 유신스타일!, 194×130.5cm, 캔버스에 유채, 2012

ⓒ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예술가에게는 무한한 권리가 있다"

- 이 작품이 박근혜 후보 모독이 아닌 '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학'의 범주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감각할 수 없는 것까지 미학적 형식 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다. 거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성역을 두는 것은 자기 스스로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소재든 형식이든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무한한 권리가 예술가에게 있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룸살롱에 가서 뇌물 받고 떵떵거릴 때, 예술가는 배고파하면서도 예술을 하는 거다."

-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에게 충성경쟁하면서 권력자가 던져주는 뼈다귀 하나 받겠다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어떤 애는 타조처럼 생겼고, 어떤 애는 하얀 돼지처럼, 어떤 애는 뱀처럼 생겼고, 어떤 애는 지렁이처럼 생겼고, 어떤 애는 오소리처럼 생겼다. 말하자면 박근혜가 동물농장을 경영하는 거다. 박근혜가 던져주는 뼈다귀 주워 먹으려고 아우성치는 동물들의 모습을 그려서 보여드릴 생각이다."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되면?

"그러면 더 재미있는 판이 벌어질 거다. 왜냐하면 그들은 뼈다귀 하나 주워 먹으려고 충성경쟁 벌이려고 있는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안 되면 그들은 정말 허무하게 한순간에 다 사라져버릴 거다. 그런 허무한 축제의 끝을 그릴 생각이다."

오마이뉴스 아이폰 앱 출시! 지금 다운받으세요.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