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상 "'남영동 1985'는 내 과거에 대한 속죄"(인터뷰)

조지영 2012. 11. 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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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 조지영 기자] 퀭한 눈과 야윈 볼살, 덥수룩한 수염까지. 박원상(42)은 스크린 속 김종태였다. 조금이라도 불쌍해 보이려고 수염을 길렀다는 너스레와 함께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 때 방만했던 몸을 다시 리셋할 수 있게 해준 정지영 감독에게 심심한 인사를 전하는 박원상이다.

故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정지영 감독, 아우라픽처스 제작). 박원상은 김근태 의원을 완벽히 재현한 민주화 투사 김종태를 연기했다.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서 일어난 22일간의 끔찍한 고문의 현장, 그곳에 박원상이 서 있다.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 칠성판에 묶여 오롯이 고문을 받았다. 매콤한 고춧가루 물이 코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따끔을 넘어 화끈거리는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흐르지만 '컷~' 소리가 들리기 전 박원상은 그저 김종태가 돼서 발악하는 수밖에 없다. 배우라는 직업, 참 못할 짓이다.

◆ 일개 배우가 느낀 실제와 영화의 괴리

"불편했다"라는 영화 감상평으로 박원상을 마주했다. 어쩌면 '남영동 1985'에 대해 숱하게 들었을 말이다. 역시나 "아이고~"라며 앓는 소리를 내쉰다. '남영동 1985'는 지난달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당시 오전 10시였던 기자시사 덕분에 속이 부대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자 긍정의 고갯짓을 끄덕인다.

100%로 이해한다는 박원상은 "나도 부산에서 '남영동 1985'를 처음 봤다. 기술 시사를 통해 먼저 볼 기회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술 시사로 보고 싶지 않았다. 부산에서 보고 싶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그는 "기자간담회 때는 그동안 내가 찍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질문에 답해서 말도 안되는 농담을 많이 늘어놨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몇 시간 뒤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영화에 자신까지 그 묵직함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박원상이 언급한 무거움이란 106분 동안 이어지는 눈 뜨고 보기 힘든 고문의 장면을 설명한 것이다. '남영동 1985'가 공개된 이후 그가 가장 많이 걱정하게 만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기자가 경의를 표하자 "오해"라며 그동안의 고통을 낱낱이 해명했다. "'고문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후유증은 없나?'라는 질문이 1순위 질문이다. 이건 말 그대로 연기이고 실제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했다면 영화가 완성이 안 됐을 것이다"고 선을 그었다.

생각보다 강철 심장을 가진 그였다. 후유증보단 자신을 스스로 방어했다. 어렸을 적 물에 빠져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로 인해 물 공포증이 생겼지만 그 또한 적응되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기 방어 덕분에 좀 더 쉽게 김종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실제 '남영동' 수기나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들었을 때는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상황이고 점점 더 처참해진다고 하더군요. 이게 바로 실제와 영화의 괴리인 거죠. 이런 부분이 촬영 중간마다 찾아올 때 괴로워졌죠. '남영동 1985'의 원제는 '야만의 시대'였는데 정 감독이 왜 그런 제목을 달게 됐는지 알게 된 대목이죠. 우리는 연기를 한 거에요. 일개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었는데 현실에서 직접 경험을 한 분들은 오죽하겠어요. 그게 힘들었죠.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기억 지우기'였죠. 촬영이 끝나면 김종태를 전부 지우는 거였죠."

◆ '남영동 1985', 인연이자 필연이었다

정 감독과 박원상은 이미 '부러진 화살'로 호흡을 맞췄다. 박원상은 '남영동 1985'를 선택하는 데 있어 정 감독의 신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전작의 호흡만을 기대하기엔 꽤 어려운 작품이고 부담스러운 영화이긴 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어땠을까?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단다.

무엇보다 박원상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과거, 숭실대학교 88학번의 박원상이었다. 당시에도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휴강은 일수였고 거리에는 최루탄의 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로지 연극에 빠져 산 연극쟁이였다. 동기들은 학생운동에 가담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혹은 만신창이가 되기도 했던 그저 극장에서 다른 삶을 연기하기에 바빴다.

박원상은 "연극만 했던 그런 놈이 이런 캐릭터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정 감독과 이경영 선배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가 고문기술자 이두한을 연기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때 이경영 선배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네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어. 김종태는 박원상이 해야 해'라며 일침을 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게 과거에 대한 속죄 아닌 속죄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운명이자 필연이었을까. 그에겐 잊지 못할 역사의 순간도 있었다. 바로 박래전 열사에 관한 이야기다. 박 열사는 1982년 숭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으로서 1988년 인문대 학생회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88년 6월 4일 인문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타도를 외치며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위인이다.

"1988년 6월, 그날도 어김없이 공연을 하고 있었죠. 그때도 한창 밖에서는 학생운동 중이었고 관객들은 최루탄 냄새에 콜록이면서 객석을 채웠죠. 그런데 총학생회에서 오더니 공연을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하는거에요. 이유를 물었더니 박래전 선배가 옥상에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이었죠. 순간 멍했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찾아왔으니 공연을 안 할수가 없었어요. 그날 공연은 박래전 선배에 대한 묵념으로 막을 열었죠. '남영동 1985' 촬영을 마치고 정 감독과 프로듀서와 함께 김근태 의원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참외 몇알과 막걸리를 가져가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그런데 묘소 입구에 박래전 선배가 있었던 거죠.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었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죄책감이 다시 떠올랐어요."

◆ 용서는 하는 게 아니라 구해야 한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박원상은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를 통해 내면의 성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것들의 연속으로 두 작품에 일말의 후회는 없다고. 세간에선 '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 영화다'라며 민감하게 반응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박원상은 "정치적인 색깔로 영화를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조심스레 부탁했다. 앞서 말했듯이 기억을 공유하고 용서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자신 역시 잊고 있었던 기억처럼 하나씩 떠올려 다가올 미래를 좀 더 윤택하게 맞이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정치적인 방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어떤 기억이든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을 꺼내보자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박원상은 '남원도 1985'를 즐겼다고 한다. 꽤 충격적인 소감이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박원상은 "즐긴다는 말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이 영화는 특히 즐겼다. 굉장히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물론 캐릭터의 감당에 관해서는 자의식의 고민으로 힘든 시간도 보냈지만 그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받아들였다"고 답했다. 배우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와 닿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10년째 연기를 해온 사람이고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겠나.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었던 작품인 것을…. 그렇다고 보상받으려는 마음은 없다. 분명 힘들었던 것만으로 회자하기엔 허전한 작품이다. 내가 느꼈던 것은 몸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뇌가 생각했던 마음의 것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각자의 느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김근태를 포함한 당시의 고문 피해자를 연기한 박원상에게 마지막으로 "'남영동 1985'를 통해서 과거에 대해 용서를 받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원상은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그건 모르겠다"며 진심을 토해냈다. 연기할 때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연기했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용서의 메시지도 충실하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영화 후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김종태가 이두안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죠. 이후 힘겹게 내뱉는 한마디가 '참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죠. 그 장면에 대해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요. 연기했던 사람으로서 정체불명의 어떤 기분이 흘렀지만 설명을 못 하겠어요. 용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니 스치는 것이 있었죠. '용서는 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라는 정의가 내려졌어요. 용서를 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조지영 기자 soulhn1220@tvreport.co.kr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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