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규 칼럼] 진화와 혁신이 멈춘 애플

임윤규 입력 2012. 11. 11. 19:56 수정 2012. 11. 1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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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그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곁에 있는 것 자체가 편안했을 뿐이다. 소중한 것은 늘 사라지고 난 후 절실하게 다가온다. 익숙함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사람이든 물건이든 호흡하는 공기처럼 다가오는 게 가장 무섭고 강렬한 존재감을 준다.

스티브 잡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내 놓은 물건 하나가 전 세계를 매료 시켰다. 아무데서나 인터넷이 가능한, 감각적 디자인의 스마트기기. ICT의 역사는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잡스의 물건은 사람을 녹였다. 기능적 혁신뿐만 아니라 이용자 인터페이스까지, 입안의 혀처럼 체화될 만큼 깊게 파고들었다.

아이폰을 따라 잡는데 삼성전자는 2년 이상이 걸렸고, 그마저도 다른 경쟁사들은 아직 첫 번째 충격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생존에 몸부림치던 모토로라는 스마트폰에 치명상을 입고 피 흘리다 결국 구글에 인수됐다. 천하를 호령하던 노키아는 여전히 늪에 빠져 있다. 소니에릭슨도 뒷전으로 밀려났고, LG전자는 이제 막 꿈틀거리며 전진을 말한다.

그만큼 잡스의 혁신은 강했다. 아이튠즈를 기반으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라는 혁명적 기기를 쏟아낸 잡스는 아이TV(애플TV), 아이카(스마트카) 등으로 진화의 그림을 이어갔다. 잡스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유무선 IP망에 기반한 아이TV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흥분시켰을까. 또 IT와 자동차의 융합속에 아이카는 어떻게 구체화됐을까.

잡스 사망이후 애플은 정체가 역력해 보인다. 아니, 정체가 아니라 퇴보다.

팀쿡 CEO를 주축으로한 경영진이 잡스 이후 출시한 신제품에서는 혁신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잡스 생존당시 내 놓았던 아이폰4와 아이패드 이후, 팀쿡 사단이 선보인 제품은 이렇다할 평가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디자인까지 똑같았던 아이폰4S, IOS의 새로운 버전을 탑재하고 단말기 아랫단만을 길게 늘린 아이폰5, 아이패드의 디스플레이크기만 줄인 아이패드미니 등 뭐하나 신통치가 않다.

진화를 멈춘 애플. 애플은 영혼을 살라 IT기기에 생명을 불어넣던 순수함과 열정을 잃었다. 대신,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경쟁사를 해하는데 썼다. 팀쿡 이후 더 강력해지고 집요해진 특허 소송전은 애플의 혁신을 멈추게 한 가장 큰 요인이다. 순수함의 상실은 애플을 뒷걸음질치게 만들었다. 애플은 특허 소송에서도 패색이 짙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혁신에 있어서도 길을 잃었다. 아이TV와 아이카는 한걸음도 더 전진하지 못했다.

10년 넘게 이른바 `애플빠`였다는 영국 보도채널 스카이뉴스의 경제부문 편집자 에드 콘웨이는 최근 블로그에서 "잡스 이후 애플은 순수함을 잃고 평범해졌다"며 "이제 애플을 떠나겠다"고 이별을 고했다. 콘웨이 편집자는 특히 지난달 삼성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사실과 관련, 영국 런던 법원이 내린 사과문 게재 판결을 애플이 진정성 없이 대한 것에 대해 주목했다. 그는 애플의 `꼼수 사과문'이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천하무적 같던 노키아의 부진, 모토로라의 몰락, 애플의 정체를 틈타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갤럭시S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잡스가 보여줬던 충격적 혁신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주춤하는 사이, 빈자리를 차곡차곡 채워갈 뿐이다.

한 순간 오만함이 파국을 초래하는 법이다. 소비자들을 사로잡아 머물게 하는 것은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어렵다. 실망을 주는 순간, 바로 아웃이다. 그 대상은 삼성전자가 될 수도 있다.

임윤규 지식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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