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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그만? 애플 특허戰, 시장경쟁 제한

입력 2012.11.11. 13:06 수정 2012.11.1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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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애플式 생태계 이대로 좋은가 (하)

[김현주기자] "특허를 남발하는 시스템이 특정 산업 부문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법조인인 리처드 포스너 연방 항소법원 판사는 최근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 직후 이렇게 말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전쟁은 특허 소송이 얼마나 기업들을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빠뜨릴 수 있는지 본보기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만 해도 애플과 소송 패소로 인해 1조원이 넘는 배상금을 내야할 판이다.

애플은 삼성전자, HTC, 모토로라, 노키아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소송전을 진행 중이다. 특히 애플은 삼성전자와 세계 9개국 50여건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애플이 시작한 특허 소송은 방어가 아닌 공격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송 진행 비용, 배상금 등만 해도 몇 개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형 규모다.

애플은 특허소송 전문회사(이하 특허괴물)를 직접 설립해 세계 IT업체를 공략하는가 하면 다른 특허괴물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같은 애플의 전술은 다른 특허괴물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한편 신생 IT벤처들의 창업 의지를 꺾는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말 우리나라를 방문한 구글 에릭슈미트 회장은 애플의 무차별적인 특허 공세에 대해 "지난 수년간 가장 좋지 않았던 일이 바로 특허 전쟁"이라면서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모바일 업계 선두주자인 구글마저 특허전이 혁신을 막는 장애물이 될까 우려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과도한 특허전쟁으로 시장 경쟁 제한

삼성전자와 애플의 '고래싸움'을 지켜보는 많은 전문가들은 특허 분쟁으로 인해 전자 산업의 혁신이 더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소송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특허를 가지려고 하면서 경쟁력있는 후발 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수천개의 특허를 취득하기까지 어떤 치밀한 노력을 했는지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 10월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10년전부터 PC, MP3, 스마트폰 등 기기를 가리지 않고 사소한 내용이라도 특허신청을 했으며, 이런 과정 끝에 10년 동안 4천100개의 특허를 취득했다.

또 지난 2007년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기존 아이디어의 뻔한 변형이라는 이유로 검색엔진 특허를 인정받지 못하자 5년간 작은 수정을 거듭한 끝에, 10번째 해당 특허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사가 특허 취득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애플은 지금도 일 년에 수백개의 특허를 신청하며 '특허 몸집불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애플은 캐나다 통신장비기업인 노텔의 특허를 45억달러(5조1천억원)에 매입해 설립한 '록스타비드코'로 세계 IT업체들을 공략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말 신생 특허괴물인 디지튜드 이노베이션에 자사 특허를 양도, 상호협력하면서 경쟁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디지튜드는 소니, 삼성전자, HTC, 노키아, LG전자 등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문제가 된 특허 중에서 절반 가량이 애플에서 넘겨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애플이 확장시키고 있는 특허 전쟁은 미국 내 특허전을 가열시키는 등 관련 업계에 미치는 파장도 상당하다. 특히 특허를 무기로 기업들을 괴롭히는 특허괴물들이 환호하고 있다.

일례로 특허괴물로 분류되는 인터디지털은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결과에 힘입어 회사를 매각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일련의 자사 특허를 판매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혀 논란이 됐다.

빌 메리트 CEO는 "삼성과 애플의 소송과 관련, 애플의 승리는 특허 수요확대에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특허분쟁 주도, IT산업 '불확실성' 가중

대형 기업들의 특허전쟁은 IT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벤처들의 창업의지를 꺾는다는 우려감을 높이고 있다. 신생 IT기업의 성장이 둔화되면 일자리 창출이 줄어들고 기술 혁신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국제협력연구실 김윤희 연구원은 "특허 관련 분쟁으로 인해 혁신이 더뎌지고, 경쟁력있는 벤처 기업들의 시장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미 대기업들은 혁신과 새로운 기술 개발에 힘쓰기보다는 경쟁적으로 특허를 신청하고, 중소기업들이 보유한 아이디어나 특허들을 사들이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스마트폰 업계에서 특허 소송으로 발생한 비용은 약 200억달러. 애플과 구글은 지난해 연구개발 예산보다 특허 소송이나 매입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이는 화성 탐사선을 8차례나 쏘아 올릴 수 있는 금액이다.

업계는 무차별적인 특허 전쟁으로 인한 특허세로 미국 내에서만 연구개발(R&D) 비용이 20%나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특허 분쟁에 국내 전자산업계도 술렁거리고 있다. 전자·IT 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글로벌 특허 분쟁이 양 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세계 300여개 협력업체들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공동 성명을 통해 진흥회 측은 "일방의 패소로 인해 어떤 기업이 해당국에서의 판매가 금지된다면 승소한 일방의 스마트폰만이 유통되는 독과점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와 국제경제침체 완화, 한미양국 국민간 반감 여론 무마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의 양사의 상호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애플에게도 악영향 끼친 특허전

전문가들은 애플이 소송에 집착할 수록 매출 감소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어 주목된다. 법정공방이 이어지면서 세계 사용자들이 열광하던 기존의 혁신 이미지가 퇴색돼가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포브스에서 이머징 산업 전문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헤이든 쇼네시는 지난 9월 영국 소셜분석 전문 기관인 미디어메저먼트의 소셜 분석 결과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분석에 따르면 실제 미국에서 애플이 삼성과의 특허소송 승소 이후 평판은 더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정적인 여론이 커졌을 뿐 아니라 애플 제품을 구매할 의향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시작 직후인 지난 8월3일부터 소송이 끝난 뒤 1주일 뒤인 30일까지 여론을 분석해보니 삼성과 애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62%로 똑같았다. 애플이 소송에서 승리하고도 부정적인 여론 비중이 똑같았던 것. 부정적인 여론은 특허 제도를 비롯해 애플 자체, 반기업 문화, 선택 제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애플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타난 여론이었다. 애플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평결이 나온 이후 한 주 동안 전체 글의 40%가 재판 관련 언급이 대다수를 이뤘다. 그중 상당수는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평결 전에는 제품과 기술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많았다.

미디어 메저먼트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애플 핵심 팬 그룹의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 전쟁은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공생'의 미덕을 잊은 자본주의적 이기심의 충돌로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