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부부도 부모입니다"

고찬유기자 2012. 11. 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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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직장인 부부엔 육아 지원 많은데..

정부 지원책은 맞벌이에만근로소득 없다는 이유로 보육비·시설 우선권 제외"최소한의 배려 있어야…"대학도 학생 육아에 무심보육시설 갖춘 학교 적고 대부분 교직원만 이용 가능비싼 등록금에도 혜택 없어저출산 시대에…학생 부부는 증가 추세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절실美선 교내에 돌봄 센터도

여대생 김모(21)씨는 덜컥 아이가 들어서자 지난해 가을 결혼했다. 캠퍼스커플이던 남편(25)은 자퇴했고, 간호학을 전공하는 김씨는 휴학을 했다. 양가 부모가 도울 처지가 못돼 올해 1월 태어난 아기까지 세 식구가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이 매달 100만원 남짓 벌어오지만 육아 비용 탓에 늘 20만원가량 적자다.

김씨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다. 아기를 맡길 요량으로 찾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꽉 차 있거나, 맞벌이 부부 등에 밀려 차례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야 아끼면 된다지만 휴학기간(최대 2년)이 끝나는 내년 여름 이후가 걱정이다. 김씨는 "돈을 버는 직장인 부부 자녀에겐 이런저런 지원이 많은데, 정작 우리처럼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에 다니는 부모의 자녀에겐 혜택보다 핀잔이 돌아온다"고 서글퍼했다. 만약 복학 전에 아기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하면 자퇴할 수밖에 없어 간호사의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대학생 부부인 박모(24)씨 사정은 그나마 낫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를 부산 시댁에 맡기고, 동갑내기 남편과 서울에서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한 달에 한번 아기를 만나는 '월말 부모'가 된 뒤부터 아이는 엄마보다 조부모를 더 따른다. 박씨는"성인인 우리가 선택한 결혼과 출산인 만큼 학교나 국가에 지원을 바라는 건 염치가 없지만, 출산 장려를 외친다면 최소한의 관심과 배려는 필요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같은 처지의 엄마 대학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교내 직장인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면 좋겠다는 글을 많이들 올린다"고 했다.

정부가 결혼 장려, 신혼부부 지원, 출산 지원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맞벌이 부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도움이 절실한 대학생 부부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거의 없다. 근로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보육비 지원과 보육시설 우선권 대상에서 제외되고, 교직원이 아닌 탓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교내의 직장인 보육시설조차 이용할 수 없다.

한국일보가 서울 12개 주요 대학과 4개 지방 국공립대를 조사한 결과, 교내 보육시설을 갖춘 대학은 5개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국립인 서울대와 전남대만 대학생 부부 아이도 받아주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나이가 어려 대기 중인 대학생 부부 아이가 5명"이라며 "이르면 내년쯤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립대는 육아 자체에 무심하다. 10개 사립대 중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3개 대학만 교내 보육시설이 있고 모두 교직원 차지였다. 연세대는 대학원생 이상(40%)이라는 기준을 두고 있었다. 연세대 관계자는 "설립자의 의견을 반영해 예외적으로 대학원생도 받고 있다"며 "학부생 자녀까지 포함시켜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반면 미국은 교내에 어린이 돌봄 센터를 만들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혜택을 제공하는 곳이 많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보육원과 미네소타대의 학생부모지원센터(SPHC), 미주리대의 학생부모센터(SPC) 등은 모두 소득이 없는 학생 부모와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국내서도 대학생 부부가 점차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회 다양성 차원에서라도 세심한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해 결혼 건수 32만9,000건 중 20대 비율은 44%였다. 이들 중 직업을 가진 20대의 이혼율은 10%인 반면 무직ㆍ가사ㆍ학생은 76%나 됐다. 대학생 부부가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아르바이트(월 평균소득 56만원)로는 어림도 없고, 현재 아기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다. 학생 신분, 부모 신분, 배우자 신분 중 한두 가지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주은 부부상담심리센터 소장은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미 낳은 아이들을 안정되게 보살피고 키우는 것도 넓은 의미의 출산 장려"라며 "대학생 부부의 자녀 역시 다양성 차원에서 지원을 받게 해야 하고, 보육시설 이용 등 학교 측의 현실적인 배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안나경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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