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확인' 응답하라, 신원호 PD!

글 김지윤 기자 사진 박동민 사진 제공 입력 2012. 9. 29. 16:12 수정 2012. 9. 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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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학창 시절 몰래 읽던 순정 만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방송되는 감칠맛 나는 편성에 열을 내는 이도 있었고, 섬세함이 돋보인 소품들과 그때 그 시절 마음을 울렸던 BGM에 감탄하며 눈물 흘린 이도 있었다. 어디 그뿐이었을까. 마지막 회까지 꽁꽁 숨겨뒀던 '성시원 남편의 정체'를 두고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은 이도 있었다. 일명 '응칠이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케이블 채널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tvN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PD를 만나 그간의 궁금증을 물어봤다.

"다들 이런 결과를 예상했냐고 물어보는데 그걸 알면 PD나 작가가 그렇게 밤낮으로 고민해가면서 만들었겠어요?(웃음)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청자 마음 아닙니까? 그래도 지상파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그 시간대 혹은 그 나이대 특성을 파악했는데 이건 뭐 새로운 채널에 낯선 장르니…."

최종회가 방송된 바로 다음날.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신원호(37) PD는 "불과 며칠 전까지 편집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라며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린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응답하라 1997'은 '남자의 자격', '올드미스 다이어리' 등을 연출하며 KBS의 간판 예능 PD로 활약했던 그가 지난해 CJ E & M으로 옮기고 난 뒤 선보인 첫 작품이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드라마를 공중파에서 했으면 더 대박이 났을 텐데 아쉽다'라고 하시던데 아마 공중파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일단 예능국 소속의 PD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시트콤 정도라서 드라마를 만들려면 부서 이동부터 해야 하는데 어휴…. 그리고 공중파에서 성공한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에 와서 잘되리란 보장이 없듯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Q 하필이면 신인 캐스팅, 왜?

소꿉친구로 자란 남녀가 사춘기 시절을 거치며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는 밋밋한 스토리에 색을 칠한 건 영화감독을 꿈꿨던 PD 특유의 감각적인 도전, 멜로·코믹·추리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의 촘촘함, 걸쭉한 사투리를 어색함 없이 소화해낸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하지만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면 꼬박 1년이 걸린 대장정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고.

"캐스팅이 제일 어려웠죠. 비교하자면 지상파는 어쨌든 목 좋은 곳에 있는 백화점이고 케이블 채널은 변두리에 있어 장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조차 모르는, 호객행위를 해야 관심 좀 가져볼까 하는 곳이라(웃음).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지도 있는 주인공 섭외였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다 안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당연하죠. 제아무리 야구 감독으로 난다 긴다 했다 한들 그가 갑자기 축구팀을 만들겠다고 하면 유능한 선수들이 모이겠어요? 그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웃음)."

이제 와 쏟아지는 "대단한 안목이었다", "신의 한 수였다"라는 칭찬들. 하지만 신 PD는 이우정 작가와 함께 최종 리스트에 오른 서인국과 정은지의 가능성을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저울질을 했다.

"그땐 정말 그 아이들밖에 없었어요. 은지 같은 경우엔 오디션 때 입에 착착 붙는 사투리에 '아! 얜데…' 하면서도 저 역시 '에이핑크'라는 걸 그룹이 있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하필이면 왜 얘냐'라고만 했죠. 16부 내내 '성시원의 남편이 누굴까'로 끌고 가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성시원이 누군지 알아?'부터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또 인국이는 저더러 자꾸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던데(웃음), 제가 '고마 됐다'라고 했어요. 로또 당첨된 사람이 로또 판 사람한테 감사의 인사를 할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저도 덕분에 '로또 판 가게 주인'이 됐잖아요."

Q 아이디어, 제작진의 실제 경험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후 상실감에 빠져 있던 가요계가 H.O.T.와 젝스키스로 양분되던 시절. 그때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린 데는 김란주 작가의 역할이 컸다. '1박 2일'의 메인 작가였던 이우정 작가를 따라 CJ E & M에 둥지를 튼 김 작가는 실제로 토니안의 광적인 팬이었는데, 극중 주인공이 토니안의 집 앞에 찾아가 밤을 새다 그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쏟은 에피소드는 바로 그녀의 경험담이었다. '안승부인(토니의 본명인 안승호에서 따온 닉네임)'은 물론 우비, 현수막 등 당시 팬덤을 보여주는 아이템들도 모두 팬클럽 활동을 했던 김 작가의 소장품이라고.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이야기만 하자고 했어요. 모르는 이야기를 그리면 디테일을 살려낼 수가 없으니까요. '빠순이'를 소재로 한 건 작가들 중에 H.O.T., 젝스키스, 신화의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일 힘들게 찍어서 그런가, '독설 배틀' 신(1998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에 참석한 H.O.T.와 젝스키스 팬들이 극에 달한 신경전 끝에 충돌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긴 해요. 해가 지기 전부터 세팅해서 다음날 아침에 촬영을 접었거든요. 해가 뜨는 바람에 후반 작업을 통해 하늘색 보정까지 했죠. 스태프들도 살수차에서 뿌리는 물을 맞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메인 무대가 부산이 된 데는 어떤 숨은 사연이 있을까?

"그건 작가들의 고향을 반영한 거예요(웃음). 저는 사투리가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졌어요. 단순히 어휘나 악센트가 달라서 주는 효과 외에도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포함돼 있다고 해야 하나? 서울 사람들은 선물 하나를 줄 때도 '오글거림'이 있는데 경상도 남자들은 '오다가 주웠다'라고 말하는 무뚝뚝함이 있더라고요. 얼마나 신선해요. 다른 정서, 성격을 보여주는 그 매력이 아주 신선했어요."

Q 최고의 선곡, 복고 소품은 누가 어디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드라마에 열광한 시청자들 중 남성들의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PC통신, DDR, 삐삐, 다마고찌, 마이마이(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유행통신」, 축배 사이다, 콤비 콜라 같은 소품들과 '스타극장', '별은 내 가슴에', '접속' 등과 같은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영화의 등장이 이들의 '안줏거리'로 충분했기 때문.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만 소품 구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어요. 차라리 조선시대처럼 꽤 오래된 시점이면 오히려 더 나았을 거예요. 1990년대의 소품은 의외로 남아 있는 것들이 없더라고요.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버려지는 속도도 그에 못지않고. 장소 섭외 부장님이 백방으로 뛰면서 장소를 찾아내도 그곳을 보면서 딱 1997년을 떠올릴 순 없잖아요. 소품, 의상, 헤어 스타일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소품 팀에서 구하기 힘든 건 제작진의 것으로 채우기도 했어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작가들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해요. 제 책상 옆에도 세 꾸러미나 있는걸요(웃음). 가장 어려웠던 건 장판 DDR? 그리고 결국 구하지 못한 건 준희가 콜라텍 댄스 경연대회에서 1등 하고 받은 샤킬 오닐 가방이에요. 인터넷에서 구한 마크를 컬러 프린트해서 비슷한 가방에 붙였어요. 예리한 시청자들이 알아차릴까봐 멀리서 재빠르게 잡았죠."

드라마만큼이나 화제가 된 건 배경음악 선곡이었는데, 이는 평소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신 PD의 공이 컸다.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같은 경우엔 저만 아는 노래를 넣어도 상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또 다르더라고요. 보편성을 갖고 있는 노래여야 했죠. 들으면서 '이 노래 뭐더라' 정도는 되는 곡으로. 일단 선곡을 한 뒤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확인을 받았어요. 현장에서 딱 필이 꽂히는 곡으로 할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편집 과정에서 깔아보기 전까진 몇 번이고 번복한 경우가 많아요. 의도했던 건 시원이가 윤제에게 '니, 나 아직도 좋아하나' 할 때 깔린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와 준희가 윤제에게 이별 통보를 할 때 깔린 '아름다운 이별', 깔아놓고 제일 잘했다 싶었던 건 '취중진담'. 또 '아, 이러면 반칙이지' 싶을 정도로 소름끼친 건 'I Miss You'. 극의 몰입도보다 노래가 주는 임팩트가 더 클까봐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다 잘 나온 것 같아요."

Q 동성애, 형제간 삼각관계가 막장?

인기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호야가 연기한 준희에게 동성애 코드를 불어넣은 것도 새로운 시도 중 하나였는데, 실제 극중 준희의 커밍아웃 전까지 이는 철저한 비밀에 붙여져 더 큰 놀라움을 안겨줬다.

"세상에 가슴 아픈 사랑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준희의 말 못하는 사랑을 그리게 된 거에요. 사실 제작진은 그의 사랑에 '동성애'라는 이름이 붙지 않길 바랐어요. 그저 '준희가 윤제를 좋아한다'라고만 읽히길 원했죠. 있는 그대로.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아꼈죠. 덕분에 시청자들도 큰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인 듯해요."

아픈 사랑으로만 치면 윤제의 형인 태웅 역시 마찬가지. 그는 시원의 언니인 송주와 연인 사이였으나 그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그녀와 꼭 닮은 시원을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동생을 좋아하는 시원의 진심을 알고 두 번째 사랑마저 포기했다.

"가끔 드라마 같은 데서 '내가 그 아이랑 닮아서 사랑하는 거야?' 하는 대사를 들을 때마다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러면 안 되나?(웃음) 옛사랑을 그리워하다 새로운 사랑을 할 수도 있죠. 또 형제가 같은 여자를 좋아하게 됐다고 '막장'이라는 말을 하시는데,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동생이 짝사랑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걸 알게 된 뒤에는 갈등이 해결됐으니 개연성 면에서도 별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시간이 2005년으로 넘어오고 러브 스토리도 강화되고 그러면서 복고를 좋아하던 남자 시청자들이 극명하게 줄긴 했어요. 반면 여성 시청자들은 더 열광하고요(웃음). 엔딩을 향해가는 숙명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일종의 그림자였어요. 웃음의 포인트에 뭔가 채우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시트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억지웃음은 싫고…. 예전에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했을 때 함께 일한 음악감독님과 또 작업을 하게 됐고 그때 사용한 뻐꾸기 소리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염소 소리를 찾아오셨어요. 매우 흡족했어요.

기획 단계에서 작가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요. 잘되면 '응답하라 1994'를 만들자라고요(웃음). 저랑 우정 작가 모두 94학번이거든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명확한 변별점이 있다면 시즌2 제작도 가능하겠죠.

가장 판타지적인 인물이 태웅이었어요. 학력고사 1등을 했으면서도 동생을 위해 사범대에 간 형이죠. 동생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그가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그 시절 붐을 이뤘던 IT 벤처기업을 생각하게 된 거였어요. 그러고는 이런 사람이 내 형, 내 아빠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가 대통령이어도 괜찮겠다 싶었죠. 졸지에 고아가 되고, 동생을 위해 희생한 암울한 인생이 그 정도 보상은 받아도 되잖아요?(웃음) 애초부터 안철수 원장을 의도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해석한 분들이 많아 놀랐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분의 아내도 의사를 하셨더라고요(웃음).

< 글 김지윤 기자 사진 박동민 사진 제공 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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