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사일 지침] 주권국 사이 유례없는 '일방적 가이드라인', 그대로 유지
작년 1월부터 시작된 한미 양국의 미사일 지침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외견상 드러난 결과만 놓고 보면 2001년 개정 협상 때보다 성과가 큰 것처럼 보인다. 300㎞에 묶여 있던 미사일 사거리(射距離)를 배 이상 늘어난 800㎞로 늘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사일 사거리 외에는 탄두(彈頭) 중량, 무인 공격기, 민간 고체로켓 등 실제 탄도미사일 성능이나 우주 개발에 중요한 핵심적 사안에서 여전히 미국 측의 반대로 큰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탄두 중량은 현행과 마찬가지로 500㎏ 이내로 묶였고, 그간 우리 측이 요구해온 대로 무인 항공기 탑재 중량은 늘리기로 했으나 무인 공격기는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 일방적 지침 형식의 문제
한미는 10월 중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결과 발표는 우리 정부 단독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 발표에서 현재 명칭인 '한미 미사일 지침(guideline)'이라는 표현과 형식 대신 우리의 자율 정책 선언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권국끼리 맺은 협정 또는 조약에서 한 국가가 상대 국가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을 채택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현행 미사일 지침은 33년 전인 1979년 9월 당시 우리 측 노재현 국방장관의 서한에서 비롯됐다. 그해 7월 당시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우리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180㎞ 이하, 탄두 중량을 500㎏ 이하로 각각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왔고 이에 대해 수용하는 답장을 보낸 것이다. 따라서 이 지침은 협정도 조약도 아니다. 우리나라나 미국 어느 쪽이든 이 지침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통보하기만 하면 효력이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 안보의 기본 축인 한미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해 서로가 이 지침을 존중하고 지켜온 것이다. 국책 연구 기관의 한 전문가는 "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미국과 양자(兩者) 비밀 지침을 맺고 있는 나라는 우크라이나, 브라질, 남아공 등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지만 미사일 문제에서만큼은 공개된 이 지침에 발이 묶여 왔고, 종종 국제회의 등에서 "주권국가인 한국이 어떻게 일방적 지침을 그대로 따르느냐"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는 게 우리 외교관들의 전언이다. 정부가 이번에 명칭과 형식 변경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이는 명칭만 바꾸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 사거리 외에는 성과 적어
그간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에 대한 관심은 주로 사거리 연장에 집중됐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이 북한은 물론 통일 이후 중국·일본 등 주변 강국의 위협에 대해 고슴도치의 '가시'와 같은 역할을 하려면 탄두 중량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500㎏ 이하'로는 부족하고 1t은 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당초 미측에 '탄두 중량 1t'을 요구했으나 미측이 계속 반대하자 사거리가 늘면 탄두 중량을 줄이는 현행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규정을 폐기하는 대신 탄두 중량은 500㎏으로 제한하자고 절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트레이드 오프를 없애기로 한 것도 큰 성과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무기 전문가들은 "우리 탄도미사일이 북한의 견고한 전략 목표물을 파괴하려면 탄두 중량이 500㎏은 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무인 공격기 족쇄는 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최근 전쟁에서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는 무인 항공기(UAV) 분야도 이번 협상에서 주목을 받았던 부분이다. 미측은 우리 정부가 요구한 탑재 중량 증대(500→2500㎏)를 일부 수용, 1t 안팎까지 늘리는 데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군의 관심이 많았던 무인 공격기 부분에 대해선 완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인 공격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 중인 미군의 '리퍼'처럼 무인 항공기에 미사일이나 폭탄까지 탑재,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군 당국은 예산 약 5000억원으로 2017년까지 무인 공격기를 개발할 계획이었지만 미국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출발하기도 전에 좌초할 위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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