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지순? 진상이라 감사해"..정지순, 변두리 배우의 스타덤 (인터뷰)

2012. 9. 2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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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서보현기자] 끈기없었던 고등학생 시절, 배우를 꿈꿨다. 연기만큼은 지루하지 않았다. 다른 건 흥미도, 재주도 없었다. 그래서 연기, 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역할과 장르의 귀천은 없었다. 그게 그가 생각한 배우의 자존심이었다.

문제는, 늘 그랬듯 현실이었다. 연기'만' 하기에는 삶이 너무 빡빡했다. 돈이 문제였다.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그대로 고집을 부리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찾거나.

그의 선택은 연기였다. 갈 길을 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일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단다. 실제로 그에게 1순위는 늘 연기였다. 나머지는 그 다음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한 호프집 서빙, 캐스팅 매니저, 유치원 체육 선생님 등도 늘 연기를 하고 비는 시간에만 했다.

그렇게 11년을 넘게 버텼다. 그랬더니 기회가 찾아왔고 또 그로부터 5년 뒤. 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는 배우가 됐다. 케이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감초 정지순의 이야기다.

◆ 무명, 단역, 그리고 아웃사이더

정지순. 올해로 연기 16년차 배우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로 아동 극단에 들어갔다. 대단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고, 연기는 유일한 취미였다. 군 제대 후에는 변화를 꾀했다. 그는 대학로가 아닌 인천극단으로 눈을 돌렸다.

대학로가 아닌 인천을 택한 건,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는 "대학로의 장점도 크지만 페이와 공연 기회가 적었다"며 "반면 인천에 가면 1년에 15편씩도 할 수 있었다. 지원금으로 하는 공연도 있었다. 연고지가 아닌 인천에 뿌리를 내린 이유"라고 말했다.

연기 경험은 쌓았지만 대중과는 멀어졌다. 인천방송 '실제상황 24시' 등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관객들의 환호와 관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린이 연극으로 돌아갔다. 바로 EBS '모여라 딩동댕'이었다.

"무대 갈망을 해소하고 싶었어요. 하루에 3편씩, 매회 1,000~2,000여 명의 관객이 모이는 공연이었죠. 저는 무당벌레로 출연했는데요. 관객들의 에너지가 장난 아니었어요. 정말 순수하게 무대에만 집중하거군요. 그 모습을 보며 '그래, 이게 좋아서 연극했지' 싶더라고요."

◆ '영애씨', 연기 인생 전환점

그렇게 '모여라 딩동댕'으로 초심을 찾았다.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곧 서른이 됐다. 이제는 연기로 먹고 살 수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지상파로 진출했다. KBS-1TV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1회 주인공을 시작으로 MBC-TV '베스트 극장-드리머즈'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기대처럼 곧장 탄탄대로를 걷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 정지순의 연기 인생을 180도 바꿔놓는 계기는 됐다.

"'드리머즈' 덕분에 '막돼먹은 영애씨'에 출연할 수 있었어요. 당시 막내 작가가 '드리머즈'를 보고 저를 추천했데요. 오디션을 봤는데 연기는 뒷전이었어요. 오히려 제 인생 이야기를 많이 했죠. 그랬더니 정지순 역으로 합격했어요. 시즌2부터 쭉 출연하게 됐죠."

그렇게 '영애씨' 정지순이 탄생했다. 개지순이라는 별명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다. 순도 100% 생활밀착형 연기에 관심이 쏟아졌다. 이제는 그를 보면 자연스럽게 '짠돌이', '진상' 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다.

여기서 잠깐. 정지순에 가장 많이 쏟아지는 질문 하나. 정지순과 '영애씨' 정지순과의 싱크로율은?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설마하니 제가 쓰레기 주워다니고 하겠어요? 물론 공짜는 마다하지 않지만. 흠흠."

◆ '영애씨', 시즌10까지 달린 비결?

'영애씨'는 정지순의 대표작이 됐다. 동시에 케이블 드라마의 대표주자다. 5년 동안 시즌 10을 마쳤고, 곧 시즌 11을 앞두고 있다. 정지순에게 '영애씨'의 원동력을 묻자 단번에 답이 날라왔다. 정(情)이었다. 재미와 호기심을 넘어 시청자와 정을 나누고 있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리얼리티 때문에 인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시즌 10까지 와보니 결국엔 정이더라고요. 길을 걷다보면 오피스텔 산거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영애는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보세요. 시청자와 '영애씨' 사이에 정이 참 많이 들었구나 싶어요."

환상 팀워크도 인기요인 중 하나다. '영애씨' 배우들은 동료를 넘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다. 그는 "매 시즌이 끝난 후 1~2개월 공백 기간에는 워크샵을 떠난다. 등산파, 골프파, 오락파 등 사모임을 갖기도 한다"며 "이제는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라고 자랑했다.

'영애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동시에 쓸쓸한 표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정지순은 "시즌7때는 10까지는 가겠지 했다. 근데 어느새 시즌10이 끝나 버렸다"며 "이제는 언젠가는 끝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 지상파 진출, 지금부터가 시작

'영애씨' 그늘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정지순은 '영애씨'를 발판으로 삼고 있었다. 요즘은 MBC-TV '아들 녀석들'에 출연 중이다. KBS-2TV '내 딸 서영이'에 특별 출연도 했다. 다음 달에는 인천에서 공연도 한다. 모두 '영애씨'를 잠시 쉬는 틈에 생긴 기회라 했다.

공백기없이 출연작이 연이어 생긴건 처음이다. 그저 감사하단다. 이유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있어서. 그에게 배역의 크기와 분량, 인기와 돈은 1순위가 아니었다. "현실의 무게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며 웃었다.

"제가 운이 좋은 놈이죠. 연기를 10년 넘게 해도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받는 배우들이 수두룩하거든요. 그에 비하면 전 '영애씨'로 고정 수입도 있고‥.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연기를 접고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20년 가까이 연기만 바라 보고 달려왔다. 중간에 넘어진 적도 있고 길을 잃은 적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제야 속도가 붙는단다. 아직은 갈 길이 더 멀지만, 그래도 희망적이다.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롤모델은 손현주. 어느 배역,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잘 소화하잖아요. 어느 작품에 들어가도 어울리는 배우….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 날, 꼭 오겠죠?"

< 사진=송효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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