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만남' 아저씨들은 제가 미성년자인거 알아요

입력 2012. 9. 18. 18:40 수정 2012. 9.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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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또다른 성범죄, 청소년 성매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① 만남

때리는 아빠 미워서 가출…배 채우려 '조건만남'도

지난해 2만여명의 청소년이 가출했다. 경찰에 신고 접수된 인원만 그렇다. 줄잡아 20만명의 청소년이 전국 곳곳의 거리를 떠돌고 있다. 가난과 폭력을 못이겨 집을 나온 아이들 가운데 60% 이상이 소녀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는 성매매를 경험한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경악하면서도 우리는 소외계층 10대 소녀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 성착취에는 무심하다. 9월 초부터 2주일여에 걸쳐 거리의 소녀들과 함께 지냈다. 거리의 소녀들이 겪는 성폭력의 가해자는 전자발찌를 찬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 그 폭력에는 한국 사회 전체가 가담하고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11일 아침 8시, 아영(가명·14)은 지민(가명·14)과 혜리(가명·14)를 흔들어 깨웠다. 차가운 빌딩 계단에 웅크려 깜박 잠이 든 친구들은 좀체 눈을 뜨지 못했다.

 "야! '일털'(일행털이) 당했어. 일어나봐." 지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그 돈 전부?" 지난밤 만나 함께 잠들었던 진석(가명·15)이 보이지 않았다. 혜리의 얼굴이 구겨졌다.

 피시방에서 진석을 처음 만났다. '서울 가출 일행 구함/은평구/나이 14.' 서울 은평구의 한 피시방에 모여 앉은 소녀들은 인터넷 카페에 알림글을 띄웠다. 늘 하던 '싸돌아다니기'도 지치는 저녁이었다. 돈이 없으니 아침부터 먹은 것도 없었다. 소녀들과 쪽지를 주고받은 진석은 이내 피시방으로 찾아왔다.

 여러 차례 가출 끝에 소녀들이 터득한 '거리의 법칙'이 있다. 돈을 벌려면 또래 남자의 '보호'가 필요하다. 또래 남자인 진석은 소녀들과 함께 '조건만남'을 벌이기로 했다. '스무살 여자랑 지금 만나서 조건만남 하실 분?' 카페에 글을 올리자 수십개의 쪽지가 날아들었다.

 그 가운데 골라 잡은 상대는 다시 만나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평범한 인상이었다. 28살이라고 했다. 남자는 소녀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짙게 그린 아이라인과 염색한 머리에도 불구하고 뽀얀 얼굴의 아영은 누가 봐도 10대 소녀였다. 남자는 모텔로 앞장섰다.

 "제가 미성년자인 거, 그 사람들도 알아요. 그래도 (조건만남) 해요." 나중에 아영이 말했다. "그 사람들도 걱정은 하죠. 미성년자랑 하는 게 걱정이 아니라 '안 아프겠냐'는 식이에요."

 남자가 씻는 사이 아영이 남자의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10만원을 챙겼다. 모텔 아래서 기다리던 친구들과 함께 앞뒤 없이 내달렸다. 조건만남을 내걸고 만난 뒤, 성관계 없이 돈만 챙겨 달아나는 것을 아이들은 '조사'(조건만남 사기)라고 부른다. 아영은 거리의 오빠들한테 '조사'를 배웠다. 주린 배를 채우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조건만남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아영에게 '조사'는 중요한 밥벌이 수단이다. 그렇게 번 돈을 진석이 모두 챙겨 도망간 것이다.

 집 나온 14살 소녀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영은 "재워준다"는 언니·오빠들을 따라다녔다. 재워준다는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영의 첫 성경험이 되었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아영은 뭔가 기억해 내는 것을 힘들어했다. 바람난 엄마가 집 나간 게 몇 살 때 일인지, 전라도·경상도·서울을 오가며 전학을 다닌 것이 몇 학년 무렵의 일인지,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이 안 난다고 아영은 말했다. 다만 중학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 가을 처음 집을 나온 기억은 생생하다. 자꾸 때리는 아빠가 미웠다. 그 뒤론 가출과 귀가를 반복했다.

 아영과 어울려 다니는 지민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집을 나왔다. 엄마에게 맞는 일이 지겨웠다. 유치원 다닐 적부터 엄마는 지민을 손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처음 가출한 그날도 대나무 회초리 다섯개가 부러져 없어질 때까지 맞았다. 나중에야 지민은 자신을 때리는 엄마가 새엄마인 것을 알게 됐다.

 집을 나온 10살 지민은 근처 교회 예배당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은 동네 주차장에서 잠들었다. 조그만 여자아이가 주차장에서 자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깨우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이번엔 지난 8월 집을 나왔다. 숱한 가출의 하나였지만, 이전과 조금 달랐다. 지난달 25일, 지민은 성폭행당했다. "재워주겠다"는 남자를 인터넷 카페에서 만났는데, 불결하고 끔찍한 일을 겪었다. 아래가 따끔거려 뒤늦게 병원에 갔더니 성병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도 지민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했다. "집에 있을 때보다 안 힘들면 되는 거예요." 소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영과 지민은 조건만남을 싫어한다. '조사'를 하거나 아주 급하면 '키알'(키스방 알바)을 한다. 불쾌한 손길을 30분만 참으면 5만원을 쉽게 손에 쥘 수 있다며 언니들이 소개해준 일이다.

 혜리는 세 소녀 가운데 유일하게 조건만남으로 돈을 번다. 혜리는 지난 7월 동갑내기 남자 친구의 아기를 임신했다. 5개월째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났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자"며 목을 조르고 싸웠다. 혜리는 커터칼로 손목을 그었다. 자살에 실패한 뒤 집을 나왔다.

 거리에서 만난 '가출팸'의 오빠들은 혜리를 을렀다. 함께 숙식하는 가출 청소년들의 모임을 '가출팸'이라 부른다. "밥값 해라. 안 그럼 우리 다 굶는다." 일단 일을 나서면 오빠들은 다정했다. "혜리야, 일 구해졌으니 다녀와. 한번에 15(만원). 나가서 남자들이 해달라는 거 해주고, 서비스 많이 해주고. 알지? " 그 오빠들마저 없으면 혜리가 기댈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혜리는 남자들이 해달라는 걸 해주었다.

엄지원 박아름 허승 기자 umkija@hani.co.kr 사진은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

② '폭력'에서는 10대 소녀들이 겪은 가난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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