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가 정신질환자? 국방부 해도 너무 한다

입력 2012. 9. 17. 14:23 수정 2012. 9. 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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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고상만 기자]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이 '뇌관 화약 잔사 확인 시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도균

지난 1998년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으로부터 밤 늦은 시각에 전화가 왔습니다. 1998년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활동가로 일할 당시 아들의 의문사를 호소하고자 찾아온 아버지와 처음 만났으니 어느덧 14년째 이어져온 인연입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까맣게 타버린 아버지의 절박한 심경이 전화를 통해 울려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14년간 김훈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내린 3차례의 자살 결론에 대해 지난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순직 처리'하도록 요구한 후 한결 아버지의 시름이 덜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묻는 말끝에 그 아버지가 전해준 사실은 다시 한번 저를 충격에 빠지게 합니다.

국방부, 김훈 중위 또 다시 자살 결론? 원인은...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권익위의 '순직 처리' 권고와 달리 국방부가 또다시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며 4번째 결론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나아가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처리하려 하고 다만 권익위의 권고에 따라 그 결과는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여 순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국방부의 '비열한 거짓말'이며 '참을 수 없는 꼼수'입니다.

권익위가 국방부에 김훈 중위를 '순직 처리'하라고 권고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2011년 9월 권익위가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게 된 것은 유족의 진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국방부는 그동안 모두 세차례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국방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김훈 중위 유족은 최후 수단으로 권익위에 민원을 제출합니다. '사건 재조사후 순직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취지였습니다.

한편, 이같은 진정을 받은 권익위는 사전 조사를 통해 김훈 중위 사건이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1998년 2월 24일 낮 12시경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김훈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자살'로 결론을 내린 시각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김훈 중위가 판문점에서 자살했다"며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 시간은 당일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국방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던 그 시점은 아직 군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도 하지 못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수사가 시작도 안 된 그 때 이미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국방부의 자살 예단은 이후 그 어떤 객관적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김훈 중위 자살'이라는 국방부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후 '국회 국방위 김훈 중위 사망 소위'와 '대법원', 그리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의 국가기관이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자살로 볼 수 없다며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국방부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권익위는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화약흔 없는 '김훈 오른손의 진실'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김척

한편 권익위가 김훈 중위 사건에서 발견된 많은 의혹 중 가장 핵심적인 의혹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얽힌 논란이었습니다. 바로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여 자살했다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검출되지 않은 '화약흔'을 둘러싼 공방이었습니다. 만약 국방부의 주장대로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쏴 자살했다면 응당 그의 오른손에는 '안티몬과 바륨' 등 화약흔 성분이 검출되었어야 합니다.

실제로 권총에 의한 사망사건이 빈번한 미국의 경우 두 명의 사람이 사망한 채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하는 조치는 이들 사망자들의 손을 면봉으로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화약흔 검사를 실시하여 누구의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느냐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즉, 화약흔이 검출된 사람이 가해자인 것으로 특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논리가 맞으려면 문제의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검출된 화약흔이 전혀 없다는 것이 지난 14년간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논란이 가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실 앞에서 궁색해진 국방부는 황당한 주장을 시작합니다. "화약흔이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어 김훈 중위의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는 '작은 권총'과 탄창이 돌아가는 '피스톨 권총'의 경우 화약량이 적어 국방부의 말처럼 그럴 가능성이 있으나 김훈 중위가 사용한 '베레타-9' 권총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총으로서 격발시 반드시 화약흔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권총과 큰 권총을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국방부의 주장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김훈 중위가 스스로 총을 격발하여 사망하지 않은 명백한 증거라고 그의 타살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권익위는 이 논란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란만 제대로 규명한다면 김훈 중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진실은 알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김훈 중위가 사망시 사용했다는 문제의 권총으로 직접 발사 실험을 하고 정말 화약흔이 나오나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국방부의 주장처럼 발사자의 손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김훈 중위가 자살한 것이 맞다'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발사자의 손에서 모두 화약흔이 검출된다면 이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권익위는 즉각 국방부에 이같은 권총 발사에 따른 화약흔 실험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실험 과정에 대한 주도권 역시 국방부에게 전부 위임했습니다. 즉, 국방부가 원하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권익위의 깊은 고심이 깔려 있는 조치였습니다. 만약 차후 이 실험 결과가 국방부가 원하는 바와 다르게 나오더라도 자신들이 주도한 이 결과는 부정하지 못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초강수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들인 국방부의 조건은 너무나 특이했습니다. 처음 그들의 요구를 전해들은 저는 그야말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권총 발사자 10명 중 5명은 정상적인 격발 자세인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나머지 5명은 기상천외하게도 첫 번째 손가락인 '엄지'로 방아쇠를 당기게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육사를 제대한 장교가 엄지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게 하자는 국방부의 발상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확인해보니 국내 저명한 모 법의학자가 이같은 제안을 국방부에 제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동조해 온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화약흔이 없는 이유가 '엄지 손가락을 이용한 격발 때문'일 수 있다며 국방부에 제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훈 중위 아버지는 이처럼 말도 안되는 국방부의 요구에 대해 저에게 어찌해야 할지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만약 권익위가 국방부 요구를 수용한다면 우리 역시 이를 따르자고 했습니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손가락으로 당기든 터진 화약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모 법의학자의 '이상한' 주장이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저 역시 몹시 궁금했습니다.

2012년 3월, 드디어 지난 14년간 이어져 온 이 사건 '김훈 중위 자, 타살 논쟁'의 분수령이 될 역사적인 실험이 이뤄진 곳은 모 특전여단 사격장이었습니다. 이날 국방부의 주도 아래 14년 전 사고 현장이었던 판문점 241GP 3번 벙커를 그대로 재현한 상태에서 실험에 참여한 사수 10명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가 마를 정도로 긴장된 그때였습니다.

밝혀진 화약흔의 진실, 국방부 '실험 결과 부정'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석달여를 기다려온 화약흔 실험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밝혀진 진실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족이 옳았습니다. 국방부의 주장이 틀린 것입니다. 당연한 상식의 승리였습니다.

국방부가 주장한 '엄지를 이용한 격발'이든 아니면 '정상적인 두 번째 손가락을 이용한 격발'이든 상관없이 이날 실험에 참여한 사수 10명 모두의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입니다. 즉, 어떤 방식의 권총 격발이든 상관없이 권총 방아쇠를 당긴 사람의 손에서는 '화약흔이 검출된다'는 상식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마침내 길고 힘든 14년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예비역 장군은 저에게 전화하여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겼어. 마침내 우리가 이겼어. 그동안 주장해온 것이 모두 사실이었던 거야. 국방부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이제 명백히 드러난 거라고. 고상만씨. 정말 수고했어.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지난 14년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저 역시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오랜 14년간에 걸친 국방부와 얽힌 그 끔직한 고뇌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니 그 묘한 감정은 그야말로 무엇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설마하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이같은 우리의 자축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습니다. 우려해왔던 국방부의 실험 결과 부정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막은 이랬습니다. 이미 확인한 것처럼 총기 발사자 10명의 양쪽 손바닥과 손등에서는 모두 '화약흔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단 1명의 우측 손등에서 "화약흔은 검출되었으나 그 양이 적어 이른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이를 화약흔 검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다 정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며 따라서 기존의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본질에는 변한 것이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만약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국방부가 주관하도록 해주고 또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 말도 안되는 엄지 손가락 발사까지 다 수용했음에도 그들의 주장은 참으로 뻔뻔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국방부는 10명의 사수 중 단 한 명에게서 확인된 한쪽 손등의 '특이 상황'을 이유로 실험 결과 자체를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며 격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은 참으로 뻔뻔한 논리입니다. 발사자 10명의 좌우 손바닥과 손등을 합치면 모두 20개입니다. 그런데 그중 19개에서 다량의 화약흔이 검출되고 다만 1개에서 검출 기준보다 미달하는 화약흔이 나왔다 하여 이 모두가 의미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그야말로 너무나 야비한 주장입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만약 국방부가 제안했던 문제의 엄지 손가락 발사 결과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것처럼 화약흔이 과반수 이상 검출되지 않은 결론을 얻었다 해도 이처럼 실험 결과를 부정했을까요.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같은 국방부의 행태가 얼마나 치사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명백한 '진실 왜곡'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문제 삼는 발사자 1명의 우측 손등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정확히 말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미 검출'이 아니라 검출은 되었으나 그 기준에 미달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김훈 중위는 이와 '완전히 다른 사례'입니다. 즉, 기준 미달이니 뭐니가 아니라 김훈 중위의 오른손은 화약흔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준 미달이든 뭐든 상관없이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권익위는 이같은 권총 화약흔 실험 결과와 국방부의 초동수사 잘못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이 육군 참모총장을 상대로 권고한 것입니다.

"피신청인에게(육군 참모총장에게)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과실 등으로 인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게 된 신청인의 子, 故 김훈의 순직 여부에 대해 재심의하여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시정 권고한다."

국방부, 권익위 권고 따라 김훈 중위 사건 처리해야

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를 '파파보이' 의지가 나약한 한심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동기생은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육사 출신 장교였다고 말이다.

ⓒ 김척

그런데 이같은 권익위의 권고를 받은 국방부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또다시 김훈 중위를 상대로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며 진실을 왜곡해 온 국방부가 이제 또 다시 네 번째 그를 자살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도대체 국방부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그 유족에게 안겨줘야 그들의 성에 찬다는 것입니까? 14년 전 처음 만날 때 50대 후반의 신사였던 그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어느덧 70대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제 앞의 밥공기가 다 비워졌는데도 정작 아버지는 사건 설명을 한다며 제대로 식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14년간 듣고 또 들은, 어쩌면 젊은 제가 더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은 혹여 제가 이 사건에 관심을 버릴까 걱정되는지 멈출지를 모릅니다. 그런 아버지가 권익위의 '진상규명 불능에 따른 순직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재차 진실을 조작하려 하자 다시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로 절규합니다. 차마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그 아버지의 절규는 제 가슴을 다시 먹먹한 슬픔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너무 야비해. 정말 너무해. 도대체 이럴 수 있는거야. 이게 내가 청춘을 다 바쳐 충성해온 국방부라니 정말 너무나 슬프고 비참해. 정말 이렇게까지 야비하고 치사할 줄 몰랐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방부가 김훈 중위에 대해 또다시 자살로 결론 내린다면, 그것도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결론 내리면서 '순직 처리'로 하겠다면 그 결과를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반드시 권익위의 권고와 같이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되어야 것입니다. 그래야만 언제든 다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재조사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아버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지난 14년간 처절하게 싸우며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필요하다면 또 14년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버지와 저 역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끝내 이 결과를 보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다면 살아남은 저라도 반드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싸울 것입니다. 김훈 중위 한 명을 위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해 100여 명씩 자살로 처리되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김훈 중위처럼 또 다른 제2, 제3의 억울한 군 의문사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김훈 중위 사건은 반드시 진상 규명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살한 것은 '김훈 중위'가 아니라 '국방부의 양심'입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이같은 행위는 결코 양심이 있는 집단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지난 14년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도 없는 난데없는 '정신질환자' 주장이 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국가 권력의 폭력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저는 '자살해버린 국방부의 양심'에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간곡히 호소합니다. 더 이상 김훈 중위의 유족에게 이와 같은 '참담한 고통'을 줘서는 안됩니다. 지난 14년간 준 고통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칩니다. 죽고 싶어도 차마 죽지 못하고 살아온 그들의 지난 세월입니다. 숨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온 지난 14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14년 전 억울한 사인 끝에 죽어간 김훈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저 국방부를 뭐라고 규탄해야 할지 마땅한 말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37년간 국가와 군을 위해 살아온 늙은 노병에게 주는 국방부의 선물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겠습니까.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방부만 빼고 모든 국가기관이 다 확인해 준 '사인 진상규명 불능' 결정과 권고에 따라 처리하라는 이 당연한 요구를 왜 끝끝내 외면한단 말입니까.

정말이지 국방부는 김훈 중위에 대한 '비열한 진실 왜곡'을 중단해야 합니다. 권익위가 권고하고 사실상 내부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육군 전, 사망 심의위원회'를 통해 김훈 중위의 명예를 조속히 회복시키는 '순직 처리'를 조건없이 추진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나마 지난 14년간 국방부가 해온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이며 당연한 도리임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

25살에 죽어 이제 살았다면 39살이 되었을 김훈 중위. 그의 안타까운 넋에 또다시 흰 추모의 국화꽃을 올리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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