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총재 사상 탐구] ⑧'참어머니 하나님'론
[세계일보]하나님을 말하는 신학의 전통은 하나님을 말하는 언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을 말하는 언어의 전통이 곧 하나님 말하기의 신학적 전통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격을 묘사하는 데 역사적 기독교가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남성적 이미지의 문제는 하나님 언어(God-Language)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하나님 언어에 관한 논의가 오늘의 문제가 된 것은 전적으로 여성신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신학, 곧 여성의 신앙 경험과 고백에 의한 하나님 언어의 문제는 변화하는 시대와 그 시대를 넘어 말해야 하는 하나님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기독교의 하나님 말하기는 비로소 하나님 온전한 것과 같이 온전한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전승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72년 11월6일 '제13회 자녀의날' 기념 문화행사를 관람하고 있다. |
한편 신을 말해온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원형으로서의 여신을 말해 왔고, 그에 따라 위대한 어머니를 말해 온 전통에서 볼 때 감추어진 하나님의 격위의 문제였지 새로운 하나님 말하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인류 역사에서의 원형적 여성성을 담지한 여신과 위대한 어머니 전통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근거로서 타당하다. 일찍이 하나님을 여성격으로 또한 어머니로 고백해온 통일교는 하나님 말하기의 전통에서, 그리고 전통을 넘어 온전한 하나님의 미래를 희망으로 맞이하고자 한다.
여신(Goddess) 혹은 모신(Mother God)은 인류의 원형(archetype)으로 존재하며 위대한 어머니(The Great Mother)로 전승되어 왔다. 위대한 어머니의 전승은 자식이 태어나면 음식과 사랑과 따뜻함으로 양육하고 자식은 어머니에게 편안함과 안전에 관한 문제를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어머니를 신성하고 초자연적인 존재로 느끼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원형으로서의 여신, 곧 성스러운 여성에 관한 관심은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원용될 수 있다.
|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70년대에 찍은 가족사진. 문 총재 내외는 7남6녀의 자녀를 뒀다. |
서구의 여성학자들은 과거에 여신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은 사회가 존재했음을 밝히고자 했다. 현대의 여신운동에 따르면 그 사회는 여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정복이나 지배보다는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예술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여신학자들은 이러한 황금기의 세계 곧 경쟁이 없고 자연 생태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로 미래를 재창조하는 것을 지구 대격변을 막아보려는 노력에 가장 필수적인 패러다임으로 삼는다.
인류의 의식에 내재하는 원형으로서든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원형으로서의 여신은 원형적 여성성으로, 위대한 어머니의 전통으로 계승된다. 위대한 어머니는 시대를 초월한 이미지이며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와서 이 이미지는 왜곡됐고, 이로 인해 우리는 여신의 일그러진 모습과 대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춰진 여신의 모습을 수용하여 우리의 또 다른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위대한 어머니인가? 위대한 어머니는 우리 모두가 내면에 품고 있는 우리의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부분을 망각하거나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아니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더욱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살인, 범죄, 테러, 전쟁 등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으로서의 여신이나 위대한 어머니의 전통을 되살리는 일은 어머니 하나님을 말함으로써부터다. 이미 부모 하나님론에서 언급했듯이 기독교의 하나님 말하기는 컨텍스트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왔다. 그중 하나가 하나님 언어에 관한 것이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말하는가? 이미 부모 하나님론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말해 부모 하나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해 왔다. 이와 같은 하나님 언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은 여성해방에 뿌리를 둔 여성신학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언어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를 결정하기 때문이며, 또한 언어를 통해 남성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여 여성의 억압, 소외,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한 언어, 곧 하나님 언어는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성적 분별을 넘어서야 하며 성적 근원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으로 신격을 묘사할 때 사용된 남성 대명사들과 이미지들이 서구 유일신교의 신격이 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결코 그런 적도 없다. 하나님은 성적 언어(性的 言語)를 초월한다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2002년 6월22일 경기 가평 청평수련원에서 국제축복가정 특별집회를 주관하고 있다. |
하나님 언어는 하나님을 어머니 하나님으로 부르는 일을 주저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죽음 이후 곧 하나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하나님이라는 신성한 가부장제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 이후에 와서 하나님은 부적격한 존재에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 하나님 어머니에게로 계속 열려가는 신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적극적인 하나님 언어는 단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대안적 호칭일 수 없다. 기독교 성서 속에 남아 있으나 감추어져 미처 읽지 못한 하나님의 어머니 모습은 분명하고 감격스럽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젖먹이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이 갖는 마음보다 더 간절하게 고통받는 인간을 잊을 수 없다고 예언자는 전하고 있다.
성서 속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낳는 분이라는 기록도 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하는 모습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낳는 하나님은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말하는 하나님임에 틀림없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이와 같은 전통은 예수조차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게 했다. "사랑의 주님 예수여, 당신은 또한 어머니가 아니십니까? 진정으로 당신은 어머니이십니다.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이시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당신의 소원에서 죽음을 경험하신 어머니이십니다." 이와 같은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의 고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어머니 하나님의 전통이다.
|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92년 8월22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WCSF)에 참석해 선수와 관중에게 환영의 뜻으로 태극 문양 부채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원리강론'의 하나님 언어는 이렇다.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中和的 主體)인 동시에 본성상적 남성과 본형상적 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며, 피조세계에 대하여는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로 계신다." 먼저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이때 중화적이라 함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중화를 이룬 상태" 곧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성을 초월해 있고 동시에 내재적인 근원이 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리강론'의 하나님 언어는 인격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일 뿐 성적 인격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을 인격적으로 표현하면 본성상적 남성과 본형상적 여성의 이성성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언어는 인격을 초월해 있으면서 동시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남성으로 혹은 여성의 한 인격으로 말하는 것은 '원리강론'의 하나님 언어가 아닌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인격적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란 본성상과 본형상의 중화적 존재를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통일교의 하나님 말하기는 기독교 전통의 삼위일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심화된다. 통일교 신학의 삼위일체론은 기독교 전통이 하나님의 신성을 일체화하는 것에 비해 신성의 체화(體化)를 강조하는 삼위일체론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전통이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일체를 말함으로써 성자로 성육신한 예수를 성부와 일체화시켰으나 성령의 관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통일교는 하나님이 체화된 예수와 동일하게 성령도 체화되어 일체를 이루는 것이 삼위일체의 본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리강론'의 '창조원리'에 의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목적이 있어 피조세계를 창조했으며, 그와 같은 창조목적은 사위기대의 터전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와 성령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으로부터 실체로 분립된 대상으로 서 가지고 서로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성자 예수와 성령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비로소 일체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곧 통일교의 삼위일체론이다. 이와 같은 통일교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실체와 그 인격 혹은 한 하나님의 세 존재양식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의 보편적 존재양상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통일교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존재양상이자 하나님을 닮아 창조된 인간의 존재양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근본적인 존재양상이 사위기대이며, 사위기대는 각 위가 추구하는 삼대상의 목적을 완성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각 위는 삼위일체로 그 존재의 양상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고 그 창조의 목적은 후손들의 참부모로 세워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해와가 삼위일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손들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로 완성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통일교의 전망은 후아담으로 오는 예수에게도, 나아가 재림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진리라고 살피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통일교는 아담과 해와가 창조이상을 완성하여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더라면 그들이 지상천국을 이루어 창조목적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악의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악한 자녀들을 번식하여 지상지옥을 이룬 것이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서 중생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타락한 인간을 원죄가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줄 수 있는 선한 부모는 누구일 것인가?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선의 부모가 타락인간들 가운데서 있을 리는 없다. 그러한 부모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와 성신 곧 성령이다. 따라서 예수는 타락한 자녀들을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지상천국을 이룩하시기 위하여 참아버지로 오셨던 분이다.
또한 인류에게는 타락한 자녀들을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기 위해서 참아버지와 함께 참어머니도 있어야 한다. 선의 자녀들을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 참어머니로 오신 분이 바로 성신 곧 성령이다. 이와 같이 성신은 참어머니로서 후해와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를 여성 신격(神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성 신격의 성신을 참어머니로 맞이하지 않고서는 예수는 참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없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는 성신의 감동에 의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면, 영적 참아버지인 예수와 영적 참어머니인 성령과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영적 참부모의 사랑을 받게 된다.
통일교 신학은 여성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하는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하나님도 말하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하나님 말하기와 어머니로서의 하나님 말하기는 어떤 차이가 있나? 그것은 본질적 차원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완성은 어머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심정의 하나님이며, 이 심정은 대상을 사랑하는 정적 기쁨이어서 하나님은 그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창조하셨고, 다시 인간의 기쁨의 대상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통일교의 하나님 말하기는 어머니로서의 하나님을 넘어 참어머니 하나님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참어머니 하나님이란 참부모 하나님의 여성적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참어머니로 계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참부모로 말해진다면 하나님을 참어머니 하나님으로 말하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므로 오늘의 하나님은 참어머니 하나님으로 말해져야 한다. 그간 말해온 아버지 하나님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인류가 처한 긴급하고도 궁극적인 현실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마지막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해방, 곧 여성이 담지한 창조본연의 가치와 위상의 문제다. 오늘의 문명이 폭력과 갈등이 질펀해져 하나님의 평화를 회복하고 재창조하기에는 때가 늦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편재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원인을 여신학자들은 위대한 어머니가 살아 있던 인류의 황금기가 지난 후 가부장 사회의 역사에서 찾고 있다. 이는 유일신교에서 주장하듯이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은 아버지 곧 남성이 하나님이라는 전이의 결과였다. 이러한 문명의 복귀를 위해 참어머니 하나님의 발현과 그의 통치는 절실해졌고 새로운 하나님의 사역은 참어머니 하나님에 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하나님이 참어머니 하나님으로 고백되어야 하는 이유라면 참어머니로 고백되는 하나님을 통해 인류가 처한 고통을, 나아가 하나님의 고통을 해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모성의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히 요구되는 피조세계의 컨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문명의 위기를 넘어 피조세계의 전 생명에 위기가 도래했고 그 재앙이 피조세계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기는 생명을 낳은 자가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다. 생명을 낳은 자 어머니 하나님이 생명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창조한 이 피조세계는 어머니 하나님에 의해 재창조되어야 한다. 인간에 의한 피조세계의 고통을 해방하는 참어머니 하나님의 재창조사역은 곧 고통의 하나님을 석방하고 해방하는 길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김항제 선문대 신학전문대학원 교수
[Segye.com 인기뉴스]
▶ 바로가기[ 사람을 만나다-스마트피플 ] [ 세계 SNS ][ 세계일보 모바일웹 ] [ 무기이야기-밀리터리S ]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세계일보 & 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55세에 손녀 같은 막내딸까지 얻었는데…이혼설 터진 신현준, 진실은?
- “운동 다녀올게” 집 나선 40대女 참변…30대男 “너무 힘들어서”
- ‘78세’ 김용건, 붕어빵 늦둥이 아들 공개? “역시 피는 못 속여”
- “돈독 올랐다” 욕먹은 장윤정, ‘진짜 돈독’ 오른 사정 있었다
- “내 콩팥 떼어주면 돼” 언니에게 선뜻 신장 내어준 동생
- “개보다 못해” 아내에 피살된 유명 강사…백종원 피고발 [금주의 사건사고]
- 누군지 맞히셨어요?…아기 때 얼굴 전혀 없다는 유명 방송인
- “이제 10억으론 어림도 없어요”
- “한국인 45만명 사라졌다”…무슨 일이?
- "남자한테 참 안 좋은데~"… 우리도 모르게 섭취하고 있는 '이것' [수민이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