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눈물 "밟지 마세요, 지켜주세요"

입력 2012. 9. 5. 08:17 수정 2012. 9. 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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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소희 기자]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전남 나주의 그 아이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피해 입은 걸 생각하면… 이까짓 비에 굴하지 말아야죠."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말했다.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 '발자국'의 4일 촛불집회는 그렇게 시작했다.

발자국은 지난 7월 경기도 여주에서 4살짜리 여자아이가 50대 남성에서 성폭행 당한 사건을 접한 누리꾼 '지유엄마'가 같은 달에 만든 온라인 카페다. 발자국이란 이름은 '눈처럼 투명한 우리의 아이들이, 깨끗한 눈길을 밟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걸음을 옮겨주자'는 뜻이다.

지유엄마를 도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토끼이모'는 4일 오후 < 오마이뉴스 > 와 통화하며 "여주 성폭행 사건이 크게 알려지지 않고 묻혀 버려 안타까웠다"며 "이 같은 불행한 일이 또 다시 발생하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문제 제기를 하고 대책 마련을 준비하려고 모였다"고 말했다.

폭우 속에서 촛불 든 엄마 "아이들이 주위를 의심하며 살지 않도록"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주최로 열린 촛불집회에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어린이들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한 회원이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사형 구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카페 개설 후 사람들의 발자국이 조금씩 길을 만들어가던 때, 나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토끼이모는 "지난달 30일 사건이 벌어진 뒤 며칠 만에 회원 수가 250명에서 5300여 명으로 늘어났다"며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함께 움직이는) 시점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아동 성폭력 범죄가 연달아 발생한 이유도 있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아동 성폭력에 문제의식을 갖고 모인 일이 처음이어서 주목받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카페에 대한 관심만큼, 4일 촛불집회 참가 열기도 뜨거웠다. 카페 회원들은 공지글에 100건이 넘는 댓글을 달며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폭우가 내리는데도 50여 명이 촛불을 들고 서울역 광장을 밝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온 엄마들이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두 시간 넘게 택시와 전철을 갈아타며 왔다는 최영미(40)씨는 "비가 많이 오지만,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쌍둥이 딸(5)과 함께 참석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동 성폭력 관련 뉴스를 본 후로 잠도 안 오고, 옆집 아저씨나 윗집 할아버지까지 경계하게 됐다"며 "주위 사람들을 다 의심하며 사는 세상을 아이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발자국 회원들은 우선 아동 성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쳤다. 최씨의 생각도 같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제대로 재활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사회 문제도 있다"며 "제 입장도 정리가 잘 안 되는데… 그만큼 (아동 성폭력 등 성범죄 문제가)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범죄자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김문규(24·회사원·경기도 의정부시)씨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읽고 남자친구 김민순(27·회사원·경기도 의정부시)씨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김문규씨 역시 "성범죄 보도를 접하고 나선 잠도 안 온다"며 불안감이 커졌다고 했다. 예전에 아파트 1층까지만 바래다주던 남자친구는 요즘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후 김씨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다.

김씨는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무거워져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집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기 엄마다. 사실 아동 성폭력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나, 그리고 내 아이의 문제인데…. 전 국민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발자국은 앞으로 성범죄자에게 내리는 처벌을 강화하도록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하고, 일상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캠페인들을 진행할 계획이다. 카페 운영진인 '단아마미'의 제안으로 시작, 아이들의 발자국에 '밟지 마세요'란 글씨를 쓴 뒤 사진을 찍어 카페나 블로그, 트위터 등으로 알리는 캠페인은 그 중 하나다.

또 다른 주요 프로젝트는 집단소송이다. 발자국은 여주와 나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행 사건 뉴스에 악성 댓글을 다는 누리꾼 등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혐의로 형사고발하려 한다. 발자국은 오는 9일 0시까지 사람들을 모아 소송을 진행할 예정으로 4일 현재 약 1500명이 모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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