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채 자란 고종석.. "나도 걔(피해 초등생)도 운이 없었다" 반성 안해

나주 입력 2012. 9. 3. 10:56 수정 2012. 9. 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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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부모·누나 인터뷰.. 무엇이 그를 초등생 성폭행범으로 만들었나

"나도 운이 없고, 걔(피해자 A양)도 운이 없었다".

전남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범인 고종석이 지난 1일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권일용 경감에게 한 말이다.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까지 하려 했음에도 이처럼 뻔뻔스러운 발언을 내뱉는 고종석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같은 '괴물'이 돼버린 걸까.

본지는 2일 아들의 범죄사실을 안 뒤 황급히 고향 전남 보길도를 떠나 전남의 모처에 가 있는 고종석의 부모와 이복 누나 등을 단독으로 만나 2시간가량 성장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또 고종석이 자랐던 전남 완도군 보길도 백도리에서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이웃 주민 10여명을 만났다.

◇도둑질해도 방치… "인정 베푼 것이 화 불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손버릇이 나쁘다(도둑질을 한다)고 소문이 났어요. 근데 우리가 통제를 못했죠."

고종석의 어머니(48)는 그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소문난 '문제아'였다고 말했다. 고종석은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작은 범죄에서 시작해 큰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하지만 주변에선 그를 방치했다. 백도리는 전복양식 업자가 많이 살아 '부자마을'로 소문난 곳. 하지만 고종석의 집은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집'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고종석은 남의 물건에 자주 손을 댔다. 이웃 주민 김모(50)씨는 "고종석이 도둑질하고 다닐 때 가족들이 엄하게 다스렸으면 좀 좋아졌을 텐데 (집이) 여유가 없으니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는 문제아로 소문나면서 마을의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됐다. 아버지(54)는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환각을 위해) 부탄가스를 마신 적도 있고, 선배들과 같이 성인 비디오도 함께 봤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한 그는 스스로 "공부도 못하고 학교 다니기도 싫어서 그만뒀다"고 말하고 다녔다.

고종석은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마을 잔치 때 마을금고에 있던 돈 700만원을 훔쳤다. 주민들은 그를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5년간 마을에서 추방했다. 주민 이모(62)씨는 "(고종석이) 훔친 돈으로 노래방에 가서 여자들과 놀면서 40만원을 쓰고 잡혔다"며 "그때 경찰에 신고해 혼쭐을 냈어야 하는데 쫓아내기만 하는 인정을 베푼 것이 화를 불렀다"고 말했다.

◇객지 생활하며 왜곡된 성문화에 젖어

고종석은 15세 때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전남 나주의 가구 공장에 취직했다. 이후 5년간 객지에서 일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살면서 그는 왜곡된 성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음란 동영상에도 이때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18세 때 충남 천안에서 공장에 다니던 이복 누나와 함께 생활할 때는 컴퓨터에 음란 동영상을 저장해 두고 수시로 보곤 했다. 이복 누나(27)는 "(동생의 컴퓨터에는) '로리타'라는 제목이 들어간 (아동 음란물) 동영상도 몇 개 있었다"고 했다. 누나는 또 "한 번은 2010년 여중생을 납치·살해한 김길태 뉴스를 보다가 '저런 게 가능한가'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면서 "술을 마시고 들어온 종석이가 자는 내 가슴을 만지기에 혼을 낸 적도 있다"고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인근 술집과 식당에서 만난 30~40대 정도의 여성과 성관계도 가졌다는 말을 딸로부터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 중 범행

고종석은 20세 때 보길도로 돌아와 마을 주민들의 양식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고종석은 이미 통제 불능이었다. 부모에게도 심하게 대들었다. 어머니는 "작년에는 내 통장의 돈을 훔쳐서 혼을 내니까 '×미 ×발'이라고 욕을 했다"며 "한 번은 '보길도 집이 내 집이니 부모고 뭐고 다 나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부모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고종석은 주로 같은 백도리에 있는 친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마을에서 추방된 뒤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고종석의 어머니는 "지난 5월 10일에 아들이 정신적으로 이상해서 계속 물건을 훔치는 게 아닌가 싶어 해남에 있는 정신병원에 데려가서 상담을 받았다"며 "병원에 갔더니 (고종석이) '왜 이런 곳을 데리고 오느냐. 이건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고함을 질렀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쫓겨나고 가족과도 사이가 벌어진 고종석은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심리적 고립감도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고종석은 3개월간 전남 순천에서 주로 머물며 일용직 노동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모텔에서 자는 날이면 인터넷으로 아동 포르노물을 즐겼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고종석이 아동 포르노를 보면서 '저런 행위를 하겠다는 의사가 쭉 있었다'고 말했다"며 "마을에서 쫓겨나 외롭게 생활하면서 이런 심리가 더 커져 범죄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종석의 아버지는 "차라리 (고종석이를) 안 낳았으면 좋았을 텐데. 피해자 부모께 죄송하다는 것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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