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명동황제' 이화룡·시라소니..낭만파 형님들 무용담 이젠 전설로

2012. 8. 3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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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거리 주름잡던 주먹들

혹자는 한국 주먹세계를 3기로 구분한다.

1기는 일제 치하에서 일정한 직업을 갖기 어려웠던 청년들이 주먹세계로 편입되던 시기. 명분을 중시하고 인정과 의리를 강조하면서 기습과 무기 사용을 굴욕적으로 여기며 낭만파 주먹의 이미지를 구축하던 때이다.

2기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기에 정치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주먹을 동원하고 깡패들이 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공생관계를 이룬 시기이다. 또 3기는 5ㆍ16쿠데타 이후 정치깡패들이 소탕되고 난 뒤 주먹계를 말한다. 조양은, 김태촌 등 범서방파 출신 주먹들이 계보도 명분도 없이 칼부림을 하던 시대이다.

명동은 2기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주먹잡이들의 활동무대였다. '시라소니'(본명 이성순)는 1914년 신의주 출신으로, 일제치하 만주를 무대삼아 주먹과 박치기가 특기인 건달이었다. 해방이 되자 귀국해 명동 일대에서 일칭 '식객(밥이나 얻어먹는 건달)'으로 전전하는 야인생활을 하면서 종로 동대문 일대의 주먹들을 쓰러뜨렸다. 또 일본 하야시 및 헌병대장 등과 맞장 결투를 한 무용담으로 유명하다.

시라소니와 동년배인 이화룡은 이정재의 동대문파와 맞섰던 명동파의 두목이다. 이화룡은 명동의 황제로 불리던 주먹계의 의리파이자 젠틀 건달로 통했다. 세력은 동대문파에 밀렸지만 건달세계의 진정한 대표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두한의 심복이던 김무옥과의 대결에서도 이겼지만 1958년 소위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주먹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1984년 2월 서울 혜화동 고대병원에서 고혈압으로 사망하기 전 건달세계에 발을 담근 것을 눈물로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현은 이화룡의 행동대장 출신으로 70년대 명동을 장악하고 전국의 건달들을 좌지우지했던 전국구 주먹이다. 하지만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구속됐다가 65년 봄 다시 명동으로 와 활동을 재개했다. 신상사파는 하지만 호남 출신의 조양은이 이끄는 양은이파가 1975년 사보이호텔을 급습, 타격을 입은 뒤 와해되고 만다.

< 이태형 기자 >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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