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제주의 해변라이브 음악 속에 박제되다
트랙 #24 Latte E Miele 'Il Calvario'(1972년)
[동아일보]
낮은 돌담…. 제주의 낮을 돈다. 잠, 온다.
24일부터 26일까지 제주에 머물렀다. 서귀포시에서 열린 대중음악계의 비평가상 '이매진 어워드' 취재차 들른 그곳에서 본 공연들이 저마다 특별했다. 수상 후보자들의 연속 공연은 웬만한 페스티벌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줬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다락쉼터에서 본 4인조 밴드 얄개들의 '해변 라이브'였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바다가 비현실적 배경으로 뒤에 걸렸다. 멤버들은 통기타 두 대와 보틀넥 주법으로 연주되는 전자기타, 브러시로 연주되는 스네어 드럼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처럼 나른한 음악을 대기 중에 풀어놨다. 그들의 곡 '청춘 만만세'의 후렴구,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가 나올 때는 관객과 뮤지션 모두 그 풍경과 시간 속에 그대로 박제돼 버리면 어쩌나 하는 환상적인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래, 꽉 막힌 실내 공연장과 쾌적한 객석만이 정답은 아니다. 얄개들 보기 전날, 그러니까 23일 밤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서울 청담동 클럽 엘루이 서울 플로어에서 연주하는 걸 봤다. 클럽 한가운데서 칵테일 잔을 들고 잡담하며 무례하게 들어보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 신선했다. 거장은 그 잡음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음악에 집중하는 데는 눈을 감아 시각마저 차단하는 방법이 최고다. 졸음을 견딜 수만 있다면. 2002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성당에서 본(사실은 들은) 파이프 오르간 콘서트가 딱 그랬다. 성당 안을 입석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은 하나같이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끝날 때까지 1시간여 동안 눈을 감은 채 음악에 집중했는데, 그런 집단적인 집중의 광경은 장황한 설교나 설법, 찬양을 무색하게 하는 종교의식 같았고 내게 조용한 충격이었다. 그 기억은 지난해 4월,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서 열린 이탈리아 록 밴드 라테 에 미엘레의 파이프 오르간 콘서트를 보며 다시 떠올랐다.
나도 지난주 내 나름의 라이브를 펼쳤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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