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열대야에 대처하는 뮤직맨의 청각적 저항

2012. 8. 7.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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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월요일. 지나치게 맑음. 북극과 남극의 밤들.
트랙 #21 Shadow Gallery 'Alaska'(1995년)

[동아일보]

3일 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자음악 축제 'UMF코리아'. DJ들의 화려한 플레이와 객석의 춤사위가 열대야의 기승을 더욱더 부추겼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지중해나 남태평양 같은 물빛을 그와 비슷한 하늘빛 아래로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 비해 7도나 낮지만, 남쪽바다(이렇게 쓰고 싶지만 정확히는 북동쪽)에서 자꾸만 날아오는 습기 탓에 아주 따뜻하다. 이 섬 서부에 오늘 낮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누군가 이곳 카페에 유투의 '주로파'(1993년) 앨범을 틀어놓았다. 때마침 '원'이 흐르고 있다. 에어컨도 없는 카페 안에서 가장 시원한 바람이래야 곡 막바지 보노의 얇은 가성 정도다.

요즘 왜 이러나. 열흘째 열대야다. 얼마 전 태국 휴양지에 다녀온 대중음악평론가 I마저 "한국이 더 덥다"고 증언한 걸 보면 열대야가 아니라 그냥 열대의 도래다. 오늘밤도 수은주는 숫자 '40'이 끌어당기는 인력 앞에 기진맥진할 것이다. 이런 밤이면 북극의 밤을 떠올려본다.

지난겨울 방문했던 노르웨이의 트롬쇠는 스웨덴 뱀파이어 영화 '렛 미 인'에 나올 법한 인상의, 차갑고 하얀 북극권 안쪽 도시였다. '북쪽의 빛(Northern Lights)'이라 불리는 오로라는 그날 밤 도시의 하늘을 갈랐다. 검고 깊은 밤의 용액 위로 녹색, 빨강, 분홍, 보라색 수채화 물감이 떨어졌다. 그 빛은 맥없이 풀려 섞이다 맹렬하게 하나가 돼 불타오르곤 했다. 전자 활(e-bow)로 연주되는 기타 소리처럼 하늘 위로 안개 같은 음표 무더기가 쏟아졌다.

추운 고장의 밤을 다룬 음악들이라도 틀어볼까. 열대야에 대한 청각적 저항. 독일 록밴드 스콜피언스의 1978년 라이브 앨범 '도쿄 테이프스'에 담긴 '폴라 나이츠'. 극지방에서 돌아온 사나이가 '거기서 춥고 어지럽고 아주 힘들었는데 당신 곁에 돌아오니 평안해졌다'고 고백하는 노래. 명(名)기타리스트 울리히 로스의 소용돌이치는 기타 연주가 압권이다.

미국의 트랜스시베리안 오케스트라는 '크리스마스 록' 장르의 개척자다. 1990년대 중반부터 몇 년에 한 번씩 가을에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다락방' '잃어버린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앨범을 내 크게 히트했다.

섀도 갤러리의 '알래스카'는 귓전에 겨울 공기를 불러오는 곡이다. 신시사이저와 통기타, 플루트의 투명한 연주를 배경으로 '고향의 꿈을 꿔/알래스카의 꿈을'이라는 후렴구가 등장할 때면 왠지 전생엔 나도 에스키모였다고 생각해본다. 이만하면 어떤가. 여전히 수은주가 안 내려간다고? 팥빙수를 시켜 놓고 다시 들어보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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