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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낙원의 숲이었다.
▲ 원대리 자작나무 숲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낙원의 숲이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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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첫 주 토요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올여름 절정의 휴가 기간인지라 도로 차량은 지체와 정체를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정한 고도의 숲,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는 보헤미안 같은 내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군 종합장묘공원 갈림길을 지나 반장동 외고개를 넘자마자 오른쪽으로 접어드니, 원대리 산림감시초소다. 초소를 지나 이어진 임도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길은 부드럽게 구불구불한 약간의 오르막으로 정감을 자아내는 호젓한 곡선이다. 길이 눈앞에 나타났고, 그 길에 발을 내려놓으니 걸음이 되었다.

임도를 따라 걸으며 피부와 호흡으로 만나는 8월의 땡볕. 입안은 침이 마르도록 거칠었고, 땀방울은 정수리를 타고 내려와 이마와 목덜미를 축축하게 적셨다. 심지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처럼 굵은 땀방울은 눈과 입으로 스며들어 시리고 찝찔할 정도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걸었다. 걷는 동안 길은 직선이라서 무료함과 따분함 느끼게 했지만, 혼자만의 고요한 명상과 사색으로 원초적 자연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가늘게 일렁이며 불어오는 황토 바람 냄새를 코끝으로 맡았다.

자작나무 숲은 평화로운 낙원의 숲...

원대리 산림감시초소를 지나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임도 원대리 산림감시초소를 지나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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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감시초소를 지나 약 3km 정도를 걸었다. 길가에 비교적 너른 공터가 나오고, 그 옆에 이정표가 눈길을 사로잡으며 서 있었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라고 새겨진 이정표다. 잠시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며 이정표 아래를 슬쩍 흩어 보았다. 하얀 백색의 종아리와 장딴지, 늘씬한 허리와 훤칠한 어깨까지 시원스레 하늘로 뻗은 자작나무의 세상, 그들만의 평화로운 낙원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숲으로 걸어들어 갔다. 아니, 초록의 망토를 걸치고서 '내게 오라' 손짓하는 자작나무 숲의 거부할 수 없는 느낌은 나를 무작정 숲으로 이끌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에는 평온한 고요함이 있었다. 그 고요함은 적막하지 않은 고요함이었다. 새소리, 매미 소리, 바람 소리가 잔잔하게 어우러져 숲의 낙원을 고요하게 적시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온전히 느끼는 평화로운 숲 속의 고독을 음미했다.

사방을 눈으로 담았고, 감상했다. 귀를 열었고, 코로 크게 숨을 쉬며 자작나무 숲 낙원의 공기를 호흡했다. 청아했다. 감미로웠다. 가슴 속 휴지통에 겹겹이 쌓여, 평소 나를 억압했을지 모를 욕심과 분노, 조바심과 불안을 하나씩 꺼내서 버렸다. 무엇이든 포용할 것만 같은 너그러운 숲에 홀가분하게 버렸다.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쾌감, 영혼이 맑아지는 향기로운 느낌이었다. 

임도를 따라 동행한 한 마리의 견공과 함께 숲에서 쉬었다.
▲ 자작나무 숲에서의 쉼과 힐링 임도를 따라 동행한 한 마리의 견공과 함께 숲에서 쉬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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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자작나무 숲에 누워 있었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자작나무 사이로 조그맣게 열린 하늘은 마치 낙원의 호수처럼 보였다. 그 호수에 몸을 담가 씻었고, 마음을 열어 닦았다. 숲은 내 안의 나를 쉬게 하는 낙원이었고, 나의 피곤함을 치유해주는 그야말로 '힐링캠프'였다.

숲에 누워 허밍으로 노래를 불렀다. 이문세의 '옛사랑'. 그냥 그 노래가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혼자일 때면, 문득 떠올라 애상으로 물들게 하는 서정적인 가사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가사의 내용을 조금 바꿔가며 내 방식대로 '옛사랑'을 읊고 음유했다.

아무도 모르게 서성이며 걸었지
지나온 길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 밑 구름만 흘러가고
내 마음 하얗게 숲 속에 있네.
...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때 생각이 나면
생각나는 대로 내버려 두듯이
햇빛 내리는 길가를 헤매다
옛 추억 생각에 나 홀로 잠기네.

설악산을 가슴에 품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쉼을 선물로 주는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이 있었다. 그 숲에서 거닐었고, 편하게 앉아 쉬었으며 누워서 꿀맛 같은 잠깐의 토막 잠을 자기도 했다. 아마도 자작나무 숲에서의 느낌과 체험은 나의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어 새로운 삶의 에너지로 은근히 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쉼을 선물하는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작은 호수가 있었다.
▲ 자작나무 숲 하늘의 호수 자작나무 숲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작은 호수가 있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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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는 하얀색의 껍질로 비교적 잘 알려진 활엽교목이다. 추위에 강해 강원도 산간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목질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서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 재료로도 좋고, 나무 조각을 하기에도 적당한 자작나무는 껍질에 기름기 성분이 있어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껍질이 해열, 이수, 해독 등에 효능이 있고, 각종 염증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하니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그러니까 치유(힐링)의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자작나무 숲에서 나와 다시 굴곡진 임도를 따라 갈대밭이 펼쳐진 회동마을 분지를 향해 걸었다. 가깝고 멀리 바라다보이는 나무와 산, 구름과 하늘은 한 폭의 그림 이상으로 자연이 보여주는 걸작의 영상이었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스스로 만족했고, 절로 충만함을 채울 수 있었다. 

고도가 높은 산 속 분지로 오래전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옛 회동마을에 도착했다. 쓸쓸해 보이는 외딴집 한 채를 지나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고원의 분지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느낌이 새롭다. 속세가 아닌 오지 속의 낙원이랄까? 충혈로 혼탁했던 시력이 단숨에 맑고 투명하게 열리는 환상적인 느낌이 짜릿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그 자체의 순수한 풍경은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옛 추억은 세월 속에 잊혀져 가고...

회동마을 폐교 화단에 피어있던 '겹꽃삼입국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 겹꽃삼입국화 회동마을 폐교 화단에 피어있던 '겹꽃삼입국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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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지 30~40년쯤 되었다고 하는, 지금은 폐교로 변한 '원대국민학교' 회동분교가 아담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30여 년 동안 화전민 자녀 30여 명만을 졸업시키고 이제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회동분교는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낡은 칠판과 책상, 반공 포스터 붙은 교실 벽면, 실습용 주판, 거미줄 처진 창문은 어릴 적 아련한 옛 추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학 때나 주말에 아주 가끔 산촌체험을 위한 장소로만 사용되고 있다니 옛 추억은 세월 속에 이처럼 잊혀 가고 마는 것일까?

나는 학교 밖 화단에 샛노랗게 피어있는 '겹꽃삼입국화'를 보면서 호사스럽게 감동했다. 하늘과 산과 삼입국화꽃이 어우러진 자연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산들의 품속에 안겨있는 회동마을 갈대숲 분지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나의 걸음을 붙들고 있었지만, 나는 마지못해 아쉬운 걸음을 옮겼다.

회동마을 갈대숲 분지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안저울'에서 탁족으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 계곡물에 발 담그기 회동마을 갈대숲 분지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안저울'에서 탁족으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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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향기 펜션을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안저울' 가까운 곳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의 촉감이 상쾌했다. 물빛 위에 오늘 하루 동안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게 치유와 휴식이 되었던 자작나무 숲, 임도와 계곡 트레킹에 대한 행복한 혼자만의 추억이 어느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4일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임도 트레킹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 트레킹 코스 : 원대리 산림감시초소~임도~자작나무 숲~갈대숲 분지(회동마을)~들국화 향기펜션~안저울 계곡숲길~원대리 바깥저울까지 약 10.5km / 보통 걸음으로 약 4~5시간 소요



태그:#원대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숲, #자작나무 숲 트레킹, #원대리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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