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단비의 풋내기슛] '솔직당당' 이동하 "6개월 뒤, 평가 뒤집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박단비 기자 2012. 7. 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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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거침이 없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 있다면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이야기를 한다. 거침이 없지만, 예의가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솔직하고 당당한 요즘 20대로 보일 뿐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동하는 '솔직 당당' 그 자체였다.

# 잘 나가는 농구선수 이동하

이동하는 여느 농구선수들처럼 장신자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인헌초는 주변 지역에 사는 장신자 어린이들을 찾아 나섰고, 이동하 역시 그 레이더 망에 포함됐다.

"키가 커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어요. 동작구-관악구 대상으로 장신자 명단을 본 거죠. 그 당시에 160cm정도였거든요. 그 전에는 운동도 안했어요. 공부도 안했고요. 그냥 쉬고 있었죠(웃음). 당연히 부모님 반대도 없었어요."

하지만 운동감각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던 이동하였기에 초등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전주에서 '좀 날렸던' 김건우가 합류하면서 광신중학교는 농구 판을 호령했다.

"그땐 우승도 많이 했죠. (조)상열이랑 건우랑 운동하면서 정말 재밌게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그 때 MVP를 받았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 MVP였죠. 그때 우수상이 옆에 있는 (박)병우였어요. 하하."

중학교에 입학한 뒤 이동하는 일취월장했다. 갑작스럽게 키가 큰 것도 호재였다. 이동하는 당시 중학교에서는 이동하를 막을만한 선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는 농구 좀 했었죠. 그 땐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봤을 정도였으니까요. 3점도 쏘고 포스트업도 하고 그랬어요. 중학교 때 193cm까지 자랐었거든요. 지금 키였던 셈이죠. 덕분에 고등학교 때도 가자마자 주전을 뛰었어요."

광신정산고에 진학한 뒤에도 이동하의 이름값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며 더욱 확고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다만 황금멤버를 구축했던 동아고에게 밀려 매번 준우승에 그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위기가 찾아왔다. 코치가 바뀌면서 팀 칼라가 바뀌었던 데다가, 갑작스러운 허리 부상으로 인해 6개월가량 팀에서 나와 혼자 운동을 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를 허망하게 보낸 것.

"고등학교 2학년때 까진 그런대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운동을 못했어요. 큰 문제는 없었는데 근육 쪽에 이상이 생겼었더라고요. 그래서 6개월을 제대로 훈련을 못했어요."

# 안성에서 생긴 일

이동하는 대학 진학에 대해 쿨하게 입을 열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솔직함이었다. 물어본 기자도, 대답한 선수 본인도 '빵' 터졌다.

"중앙대가 그 때는 솔직히 제일 멋있었어요. 농구도 멋있게 했고요. 다른 학교 생각은 안 해봤어요. 솔직히요? 진짜 솔직히 말해도 되요? 저 연세대 가고 싶었는데 연세대에서는 오라는 소릴 안하더라고요. 하하."

중앙대를 진학할 때만 해도 이동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이동하는 가비지 타임을 뛰긴 커녕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날을 찾기 조차도 힘들었다. 최현민, 박병우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자신은 1초도 뛰지 못했지만 함께 고생했던 동기들이 뛰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이동하다. "동기들이라도 뛰어야 된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이동하의 말이다. 그렇게 이동하는 2년을 허공에 날렸다.

그리고 그렇게 바래왔던 고학년이 됐다. 동계훈련도 단 한 번을 빠지지 않았다. 중앙대에서 동계훈련을 하루도 빠지지 않은 선수는 단 2명 뿐. 이동하도 내심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첫 대회에서 이동하의 꿈은 무참히 부셔졌다.

3학년이던 2010년. 첫 대회였던 MBC배에서 이동하는 관둔다는 말을 했다. 모든 동계훈련을 하며 참아왔지만, 이동하에게 돌아온 것은 엔트리 제외였다. 고학년 중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이동하가 유일했다. 2학년들도 이름을 올렸기에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동계훈련 때 정말 다른 길 한 번 안 보고 앞만 보고 뛰었어요. 그런데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더라고요. 엔트리에도 못 들었던 걸 대회 중간에 안 거예요. 그래서 원망이나 분노보다는 '내 자신이 이것 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더라고요. 그 때 그래서 농구를 관둔다고 이야기를 했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하지만 부모님이 처음으로 이동하의 의견에 반대했다. 모든 것을 이동하의 선택에 맡겼지만, 운동을 관두는 것만큼은 만류했다. 결국 이동하는 아버지의 만류에 의견을 굽히고 다시 농구를 시작했다.

"그 당시엔 그냥 힘들어서 농구를 관둔다고 말한 게 아니었어요. 진심이었죠. 그래서 병무청을 통해서 입대 날짜까지 알아봤었어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만류하시더라고요.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지금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억울하기도 하고요."

다른 선수들에게 대학리그는 기회였지만, 이동하에게는 아니었다. 대학리그에서조차도 이동하는 제대로 출장시간을 받지 못했다. 4학년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김유택 감독이 부임한 뒤 출장시간이 늘었다. 김유택 감독은 후에 "이동하는 항상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당연히 그런 선수가 뛰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동하에게 안성은 사실 추억이라기보다는 아픈 기억에 가까운 장소이다.

"모든 걸 마치고 짐을 싸는데 '드디어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아쉬움이 남았죠. 제가 경기를 뛰고, 뛰지 않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만 제가 경기를 못 뛴다고 개인 훈련을 안 했던 것. 그게 제일 아쉬워요. '내가 백날 개인 훈련해도 못 뛰는 구나'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경기를 못 뛰었음 개인 운동이라도 2배, 3배로 더했어야 했는데…. 그런 아쉬움은 다시는 안 남기려고요."

# "1년 뒤, 평가 뒤집겠습니다."

로터리 픽으로 평가 받는 선수들도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드래프트이다. 4년 동안 보여준 것이 없는 이동하였기에, 불안감은 남들보다 2배, 3배는 컸다. 그래도 어디선가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솔직히 불안했죠. 제가 4년 동안 보여준 것도 없고, 기록도 없었잖아요. 근데 왠지 모르게 어딘가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밑도 끝도 없이요. 높은 순위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프로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 명, 두 명 이름이 불려갈수록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

"절 알아주는 곳이 한 곳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누구보다도 운동을 잘할 자신은 없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할 자신은 있거든요. 성실함을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

이동하의 말처럼 자신을 선택해준 구단은 있었다. 삼성이었다. 그것도 예상보다 높은, 2라운드 3순위였다. 드래프트 단상에 오른 이동하는 다른 선수들이 '구단에 감사합니다'라며 획일 된 소감을 전하는 것과 달리 확실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못난 아들 둬서 고생 많으신 저희 부모님 죄송했습니다. 1년 뒤에는 평가를 뒤집어 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부모님." 드래프트 후에도 회자된 이동하의 소감이었다.

"솔직히 이름이 불리는데 대학교 4년간의 설움이 확 밀려오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했죠. 후회는 안 해요. 정말 제가 했던 말처럼 1년 뒤 모든 걸 뒤집을 자신이 있거든요."

올 해 삼성은 FA로 선수들을 보강하며 대대적으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소 빈약하다고 꼽히는 것이 3번 자리. 이규섭 외에는 마땅한 포워드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동하의 포지션이기도 한 자리이다.

"제가 당장 경기를 많이 뛰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남들보다 2배, 3배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출장 기회도 잡을 수 있겠죠. 제가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습니다. 파이팅도 있고요. 하하."

자신을 처음으로 운동을 관둘 뻔하게 한 것을 첫 시즌 목표로 겨냥했다.

"전 경기 엔트리 포함이 목표입니다. 하하. 워낙 선수층이 두텁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그 이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팀이 필요할 때 출장해 분위기를 바꿔주는 식스맨이 목표입니다."

#사진- 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2-07-26 박단비 기자( pdb1228@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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