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반대" 맞짱 뜨던 '인권위 독립성' 지금은 만신창이

2012. 7. 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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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무현정부에 쓴소리 김창국 위원장

"독립기구란 그런 것"

조영황·안경환 위원장도 전문성

밑바탕 위상 지켜내

이젠 행정부 소속 취급…

"대통령 임명권 안돼" 비판

지난 2005년 11월 쌀 협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2명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망 원인은 경찰의 과잉 진압 탓"이라며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책임자를 가려내고 피해자에게 배상하겠다"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틀 뒤 허준영 경찰청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당시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인 농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기관인 경찰에 맞서고 대통령까지 사과하게 만들었다.

반면 2009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임명한 뒤, 인권위는 <피디수첩> 수사,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2009년 12월28일 용산참사 문제를 다루던 회의를 "독재했다고 해도 좋다"며 강제 폐회하기까지 했다. 당시의 육성을 담은 음성파일도 19일 공개됐다.

[관련기사] ▷ 현병철 "독재라도 좋다" 육성 공개

이런 태도를 비롯해 국회 청문회에서 쏟아진 여러 의혹과 자격 논란에도 이 대통령은 현 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할 태세다.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에게도 단호했던 인권위가 지난 2년 동안 겪은 몰락의 세월이 더 연장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 대통령과 '맞짱' 뜬 역대 인권위원장

2001년 11월 출범한 인권위는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법이 정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을 현실화했다. 초대 김창국 위원장은 2002년 11월 청와대에 사전 보고를 하지 않고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청와대는 '공무 국외여행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 위원장을 '경고' 조처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공무 국외여행 규정'은 행정부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독립기구 수장인 인권위원장이 이 규정을 적용받을 필요가 없다"며 공식 반박했다. 대통령의 지휘와 재가를 받지 않겠다는 인권위 수장의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3년 3월, 인권위는 정부가 추진하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 수석은 당시 김창국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발표하는 건 좋은데 대통령한테 사전에 언질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 김 위원장은 "독립기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통령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행위"라며 비난했지만, 노 대통령이 "인권위는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곳"이라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일단락됐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출범 초기에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위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며 "그런데 인권위원장이 대통령과 맞붙는 과정을 지켜본 공무원과 국민들이 독립기구로서의 인권위 위상을 자연스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 인권위원장 권위가 곧 인권위 위상

역대 인권위원장들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데는 이들이 인권과 관련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초대 김창국 위원장은 군사정부 시절 시국 사건 변론을 단골로 맡은 저명한 인권변호사였다. 김 위원장은 2002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검사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지검장이 인권위 조사를 거부하자 전화를 걸어 "당장 조사를 받으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3대 조영황 위원장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 출신이다. 4대 안경환 위원장도 인권법에 조예가 깊은데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반면 현병철 위원장은 스스로 언론 인터뷰에서 "(인권을) 모르는 게 차라리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외국 사례를 봐도 인권 관련 경력이 없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경우를 찾기 힘들다. 뉴질랜드의 로슬린 누난 인권위원장은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 등 인권 관련 국제기구에서 4년 동안 일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디 콜라펜 인권위원장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박해받는 이들을 변호했다. 타이의 아마라 퐁사피취 인권위원장은 여성인권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약해온 인류학자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인권기구는 한 국가의 '양심'으로 불린다"며 "우리보다 정치·경제 영역에서 뒤처졌다고 평가되는 나라에서조차 그 나라의 인권을 상징하는 인물이 인권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독립기구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

인권위법은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인권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제도로는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실제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위원장은 2009년 7월 취임한 뒤 처음 출석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인권위는 행정부 소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후보자추천위원회 등을 통한 민주적인 임명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타이의 경우 임명은 국왕이 하지만,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선발위원회에서 1차로 검증된 후보 가운데 국회가 표결을 통해 결정한다. 인권위원을 선발할 때 인종, 출생국, 종교, 성지향성 등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는 영국처럼 인권위원의 자격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도 있다.

진명선 엄지원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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