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 인권 침해]한국 선원들이 '윗계급'처럼 굴며 매일 때리고 성적 학대

김향미 기자 2012. 6. 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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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양 75호'에선 무슨 일이.. 인도네시아 선원 수기토 '오양 75호, 145일의 악몽'

뉴질랜드에서 조업하던 한국 원양어선 '오양75호'의 외국인 선원 가혹행위가 세계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부각됐다. 지난 2월 뉴질랜드 정부의 실태조사 보고서에 이어 미국 국무부는 최근 발표한 '2011년 세계 인신매매' 보고서에 이 사건을 '노예노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실었다(경향신문 6월21일자 1면 보도).

뉴질랜드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광대한 바다 위에서 맞는 바람은 늘 차갑기만 했다. 여름이라도 한국 원양어선 '오양 75호' 위에선 점퍼를 꼭 입어야 한다. 열대 기후에서 살아온 인도네시아 청년 수기토(29)에겐 더 그랬다. 고향에선 먹고살기가 막막해 찾아온 이역만리 타국의 바다생활은 갈수록 고단해졌다.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는 1983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가난한 어촌마을 '수라다디'에서 태어났다. 1999년 몰아친 아시아 외환위기로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열여섯 살 소년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카르타에 나가 어선을 타야 했다. 2004년부터는 외국 원양어선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아프리카 동부 모리셔스 해역까지 갔다.

수기토는 2011년 1월29일 뉴질랜드 EEZ에서 조업하고 있던 오양 75호에 올랐다. 그는 "돈을 더 벌고 경험을 쌓고 싶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해역에서 조업하는 한국 원양어선 안에서 선원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 이 사진은 인도네시아 선원이 한국 원양어선의 열악한 환경을 고발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고충을 해결해 온 활동가 노니에게 보낸 것이다.

▲ 휴일 없이 온종일 조업물고기로 머리 구타도한 달 받는 돈은 29만원

수기토가 이 배에 타기 위해 찾아간 인도네시아의 인력소개소는 250만루피아(약 31만원)의 소개비와 담보물을 요구했다. 수기토는 담보물이 없어 400만루피아 중 일부만 내고 나머지는 월급에서 떼기로 했다. 소개소와의 계약서상 임금은 한 달 250달러(약 29만원)였다. 그러나 수기토는 첫 4개월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매달 떼는 소개비 50달러에 배에 탈 때 빚진 돈까지 인력소개소가 다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기토는 오양 75호처럼 큰 배를 탄 것이 기뻤다. 오양 75호에서는 인도네시아 선원 33명과 필리핀 선원 2명, 한국인 선원 10명이 함께 일했다. 갑판장을 비롯한 한국인 선원은 외국인 선원들에게 '윗계급'의 인간이었다.

6월10일 오후 8시쯤. 수기토는 작업실에서 물고기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국 선원이 자신의 성기를 수기토의 엉덩이에 비볐다. 어느 날은 갑판에서 그물을 치우고 있는데 한국 선원이 물고기로 머리를 때렸다. 헬멧을 쓰고 있었는데도 아팠다. 더러운 장갑으로 얼굴을 때릴 때도 있었다. 한국 선원은 무언가 말을 했지만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수기토는 "많은 다른 나라 배들을 타봤지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며 "화가 나서 억누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도 매일 성적 학대와 폭력이 반복됐다. 그는 '이게 한국의 문화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수기토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자정 무렵까지 일을 했다. 다른 선원들은 한숨도 자지 않고 이틀간 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침식사는 10분, 점심·저녁 식사는 각 20분씩이었다. 식사량은 늘 부족했다. 인도네시아인 요리사가 있었지만 전부 한국식 음식이었다. 닭고깃국엔 고기가 한 덩어리씩만 들어갔다.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조업이 계속됐다. 무슬림인 수기토는 기도하는 순간만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종교 의식을 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좁다란 숙소에는 히터가 있었지만 작동이 잘 안돼 추웠다.

오양 75호

2011년 6월18일. 오양 75호는 뉴질랜드 리틀턴 항구에 정박했다. 이틀 전 동료 술라맛이 한국 선원에게 얼굴을 맞아 코를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 수기토와 동료들은 뉴질랜드 시민권자인 인도네시아인 '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니'는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통역을 해주면서 그들의 고충도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그날 밤 응급실로 갔다. 술라맛은 한국 선원을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노니가 지인인 오클랜드 대학 연구원에게 부탁해 경찰과 연락이 닿았다.

다음날 오후 경찰이 오양 75호로 찾아왔다. 경찰이 다녀가자 한국인 선원은 술라맛에게 사과했다. 수기토는 "보상을 해줄 테니 그냥 넘어가자는 취지였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술라맛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선원들의 분노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이날 밤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탈출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20일 오전 6시. 수기토와 동료들은 배에서 탈출했다. 무작정 걸어 오전 7시쯤 한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목사가 자초지종을 듣고 비정부기구(NGO)에 연락을 취했다. 이후 뉴질랜드 언론에서 이들을 인터뷰했고 뉴질랜드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섰다.

수기토는 그해 8월20일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족들 모두가 놀랐다. 그는 장인·장모와 부인과 아들, 그리고 조카 3명을 부양하는 가장이다. 오양 75호에서 받은 급여는 대부분 소개소 주머니에 들어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사장 일이나 배달 일을 해야 했다.

지난 8일 수기토는 한국을 찾았다. 한국 시민단체들이 오양 75호의 인권침해 사태를 고발하면서 수기토를 초청한 것이다. 수기토는 "내 권리를 되찾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 정부나 사조오양은 사건 수습에 미온적이었다. 지난해 10월 한국 시민단체들이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오양 75호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으나 인권위는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이 다르다"며 기각했다. 그나마 한국 정부는 해외에서 논란이 벌어진 후인 올 5월 말 한국 선원 4명의 폭행 혐의를 확인하고 형사처벌키로 했다.

그는 지난 12일 다른 인도네시아 선원과 함께 오양 75호가 소속된 사조오양을 상대로 폭력과 성추행 혐의로 인천해양경찰청에 고발했다. 수기토는 지난 19일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떠나기 전 그는 "사조오양이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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