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폭수사' 약자에게만 가혹..제2삼청교육대 될라

입력 2012. 6. 21. 08:40 수정 2012. 6. 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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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여당 당직자는 불구속 입건하고

노숙인 등은 구속하려 적극 탐문

표적 수사·실적 경쟁까지 벌어져

민변 "먼지털기식 수사 인권침해"

서울지방경찰청(청장 김용판)이 벌이고 있는 이른바 '주폭(주취폭력)과의 전쟁'이 약자에게만 가혹하고 강자에게는 관대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밤에 술에 취해 시비를 벌이다 연행된 뒤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까지 한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가 이튿날 아침 풀려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19일 술에 만취한 상태로 경찰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김아무개(47)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18일 밤 12시께 마포구 서교동 거리에서 택시기사와 시비를 벌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고, 인근 지구대로 연행된 뒤에도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으며 발길질을 했다. 경찰은 "김씨가 신분·주거가 분명하고, 관련 전과도 없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런 조처는 주폭 집중단속 한달여 만에 100여명을 구속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와 큰 차이가 난다.

지난달 20일 서울 구로구의 한 마트 주인에게 행패를 부려 체포된 노숙인 이아무개(48)씨를 구속하기 위해 경찰은 이씨 주변을 샅샅이 뒤져 14건의 범죄 혐의를 추가로 확보했다. 한달 전 이씨가 진단서를 받기 위해 드나든 병원에 찾아가 간호사들한테서 이씨가 행패를 부렸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동사무소 직원들한테서는 이씨가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연장해달라며 행패를 부렸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결국 이씨는 지난 1일 구속됐다.

지난달 27일 경찰서 지구대에서 소란을 피우다 체포된 홍아무개(48)씨의 경우, 강서경찰서 주폭수사전담팀은 열흘 동안 이웃들에게 홍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다녔다. 이런 방식으로 12건의 범죄 혐의를 추가 확인한 뒤 지난 10일 홍씨를 구속했다.

심지어 경찰은 '표적수사'까지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한 경찰서 주폭수사전담팀장은 <한겨레> 기자와 만나 "술 마시고 싸우는 등 경범죄로 체포돼 경찰에서 조사받고 풀려난 사람들 가운데 전과 10범 이상인 이들을 선정해 평소 주취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 고위 당직자인 김씨에 대해서는 과거에 주취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는지, 그 피해자는 없는지 등을 조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과거의 모든 주취폭력'을 추적조사해 구속 요건을 채우려는 것인지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20일 김씨의 불구속 입건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상식적인 정의감과 배치되는 경찰의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신분 주거 일정해서 불구속이라고? 나도 술 마시고 경찰한테 욕하고 발길질해볼까? 어떻게 되는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주폭과의 전쟁' 한달여 동안 경찰이 잡아들인 것은 노숙인 등 사회 최하층이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1000명까지 구속시키겠다"고 호언하는 가운데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 '실적 경쟁'이 벌어졌고, 당장 눈에 띄는 노숙인부터 잡아들이는 양상이다. 노숙인 지원단체인 '동자동 사랑방' 엄병천 대표는 "비노숙인이야 집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려도 주변에서 신고도 잘 안 하지만, 노숙인들은 잘 보이기 때문에 잡혀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이 사회 고위층의 부정·비리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하층민에게는 '먼지털기식 수사'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이혜정 변호사는 "경찰 조사는 이미 포착된 특정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찾기 위한 것인데, 새로운 혐의를 찾기 위해 묻고 다니는 것은 과잉단속"이라며 "구속 등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사는 가장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점에 비춰,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위해 여죄를 파헤치는 것은 경찰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경찰·검찰 할 것 없이 약자 앞에 군림하고 강자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엠비식 공정사회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의원이 집권하면 만들겠다는 대한민국의 정의냐"고 따졌다.

이 때문에 경찰의 주폭 수사 배경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경찰의 주폭 단속이 결국 '부랑자 소탕'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경찰의 주폭 수사는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가 벌인 '범죄와의 전쟁', 전두환 정권이 만든 삼청교육대와 같은 맥락에 있다"며 "사회불안의 원인을 일부 부랑자에게 돌려 체제를 통합하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우파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절대빈곤, 실업 등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면 주폭 등 생활안전 범죄도 줄어든다"며 "전시효과를 노린 일회성 수사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지훈 이경미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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