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재벌과 타협' VS '총수자본주의 타파'

2012. 6. 20. 15: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개혁·진보성향 경제학자들, 재벌개혁 방법론 '갑론을박'

"삼성 목줄을 틀어쥐지 않으면 복지국가도 없다."(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이건희와 삼성도 구분 못하나."(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개혁·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것은 지난 5월 28일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 시사인 > 기자 등 3명이 인터넷 언론 < 프레시안 > 에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이들이 지난 3월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이하 선택)라는 책을 내놓은 이후로 정태인 원장이 '장하준 교수에게'라는 제목의 공개편지 등에서 "과연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올릴까"라며 비판을 이어가자 이에 대한 '반격'에 나선 것이다. 장 교수 등은 정 원장의 공개편지 이후 곧장 응답을 하려고 했지만 강원대 이병천 교수가 유사한 논지로 < 선택 > 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하자 정 원장과 이 교수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응답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 경향신문(왼쪽)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 경향신문

장 교수 등은 "이병천 교수는 우리가 < 쾌도난마 한국경제 > 와 < 선택 > 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 교수가 개인(재벌 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 회장과 같은 재벌 가문과 그 가신 그룹의 이해관계와 행위들(각종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주장

양측의 논쟁은 사실 최근 들어 새롭게 촉발된 것은 아니다. 장 교수 등은 2005년 < 쾌도난마 한국경제 > 를 펴내면서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펼친 김상조 교수 등을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며 비판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말하는 재벌개혁은 주식시장의 힘을 강화해서 재벌 오너들을 제약하자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단기 이윤만 좇는 금융자본이 재벌을 장악하게 돼 되레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대신 장 교수 등이 당시 내놓은 청사진은 스웨덴 모델에서 착안한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이었다. 재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재벌의 사회적 양보를 얻어낸다는 발상이다.

2년 뒤인 2007년 김 교수와 유종일 KDI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 한국경제 새판짜기 > 라는 책을 출간하고 사회적 대타협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유종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아마 총수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텐데, 이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 권리의 강화와 경영권 방어장치 약화는 개혁의 지렛대로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반드시 주주자본주의를 지향한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노조 조직률이 10%도 채 안 되는 한국에서 스웨덴에서와 같은 대타협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지난해 2학기부터 안식년에 들어간 뒤 미국에 체류 중인 김 교수는 여전히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펴낸 < 종횡무진 한국경제 > 에서 "문제는 재벌 총수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노동자를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하기보다는 정치인과 관료를 구워삶아 그 알량한 규제마저 없애버리는 쪽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이런 재벌 총수의 일탈행위에 대해 한국의 노동진영이 제재를 가할 힘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내가 대타협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목적지가 틀려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달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양측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이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재벌에 대한 인식 차이다. 장 교수 등은 반박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불법과 탈법에 연루된 오너 일가와 삼성, 현대 등의 대기업집단은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과 같이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의 입장에서는 재벌이라는 대기업집단의 장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오너 일가와 구분되는 재벌이라는 도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지난 3월 < 경향신문 > 과의 인터뷰에서도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로 가는 것은 결국 특정 집안으로부터 재벌을 뺏을 순 있어도 국민들한테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장 교수 등의 사회적 대타협론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은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산업화 이후 공룡처럼 비대해진 재벌의 폐해가 크다고 진단한다.

장 교수 등의 재벌 인식이 나이브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 교수 등이 강조하는 복지국가 운동은 재벌개혁 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정 원장은 "재벌과 주주자본주의(또는 외국인 주주)를 대립관계로만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그들은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해서 주주집단 바깥의 이해당사자들을 최대한 수탈하는 동맹군"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시각의 차이는 상대방 측을 '좌파 신자유주의자' '재벌 옹호론자'라며 딱지 붙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지난 5월 22일 < 프레시안 > 에 기고한 글에서 '재벌개혁론 대 주주자본주의 타파론'이라는 새로운 논쟁구도를 제안했다. 그는 "김 교수 등은 재벌개혁이 주된 목표이며, 장하준 등은 주주자본주의 개혁이 주된 목표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존중하는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장 교수 등이 앞으로 8~10회에 걸쳐 반론글을 계속 게재하기로 했기 때문에 한동안 이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이 학자들 간의 담론 영역에 머물지, 오는 12월 대선에 영향을 미칠 만큼 현실에 규정력을 발휘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m >

-ⓒ 주간경향 & 경향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