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잘못된 직장 술문화가 성추행 피해 · 가해자 모두에 큰 상처 남겨

권승준 기자 2012. 6. 1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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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 성희롱 · 추행.. 술판된 신입생 환영회 · MT, 성추행 · 성희롱 자주 일어나

15일 오후 9시 1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흥가의 한 술집. A대 같은 동아리 선배·동기 13명이 소주 6병, 맥주 10여병을 놓고 폭탄주를 만들어 먹으면서 한창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목 때리기 같은 가벼운 벌칙이었지만, 점점 술이 오르면서 서로의 팔뚝과 뺨, 입술 등에 뽀뽀를 시키는 등 과도한 스킨십을 하는 벌칙이 이어졌다. 남학생이 여학생의 양볼을 붙잡고 뽀뽀를 하는 등 민망한 풍경이 이어졌다. 벌칙에 걸린 여학생들이 "못하겠다"고 할 때마다 남자 선배들이 나서서 "괜찮다" "재미로 하는 거다"라면서 압박했다. 신입생 장미영(가명·19)씨도 "전 남자친구 있어요"라며 거부했지만, 남자선배 2명은 오히려 "이러면 재미없지" "남친에겐 비밀로 해줄게" "뽀뽀해"라고 소리쳤다. 취재진이 술자리를 뛰쳐나가는 장씨를 붙잡고 물어보자, 장씨는 "학교 술자리에 가면 남자 선배들이 선생님보다 더 무섭게 굴면서 술을 강요하고 성추행 게임을 주도한다"며 "사회 나가서 저런 사람들을 또 만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충남 소재 B대 2학년 김영지(가명·여·20)씨도 지난 3월 신입생 환영 MT에서 게임을 빙자한 성추행을 봐야 했다. 가장 선배인 3학년 남학생들이 술자리를 주도했다. 이들은 일명 '진실게임'에서 여자 후배들에게 "남자친구와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 "지금까지 (성관계) 해 본 이성 3명 이상인 사람" 등 질문을 계속 했다.

이처럼 술자리에서 여대생들이 취한 선후배나 동기 등에게 성추행·성희롱을 당하는 일도 심각한 수준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대학생 7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여대생 중 성희롱·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비율이 33.3%에 달했다. 주로 어떤 상황에 당했는지에 대한 응답(복수응답)으로는 '술자리'가 66.7%, MT·신입생환영회(OT) 44.6%였다. 성희롱·성추행 가해자(복수응답)로는 '선배'라는 응답이 78%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교수'가 33.3%로 뒤를 이었다. 직장 술자리에서 상사가 성추행을 하는 것이 대학가에서는 선배와 교수로 바뀌는 셈이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나 MT도 회사의 워크숍처럼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술판으로 변질한 지 오래다. 매년 새학기나 MT 때의 술판에서도 계속 성추행 사건이 터지지만, 문제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세종대는 작년 2월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남녀 신입생들에게 키스를 하는 상황을 강요하고 성행위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하는 등 성적 수치심을 주는 게임을 했다가 논란이 됐다. 해당학과 과대표 박모씨는 "옛날부터 해오던 행사라 (문제시되니) 당황스럽다"며 "게임을 강요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가 더 큰 비판을 받았다.

서울 소재 C대 신입생 이지연(가명·19)씨도 지난 4월 학과에서 MT를 갔다가 성추행 게임을 강요당했다. 이씨는 "1·2학년 합쳐 60명 정도 가서 100병이 넘는 소주를 마셨다"며 "술에 취하니까 남자 선배뿐 아니라 여자 선배들도 덩달아 야한 게임을 시켜서 불쾌했다"고 말했다. B씨는 특히 '전화번호 뽀뽀'라는 게임을 하면서 성추행을 당했다. 이 게임은 상대방을 얼굴을 휴대전화 번호자판이라고 치고,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그 사람 얼굴에 뽀뽀로 찍는 것이다. 이씨는 "못 하겠다고 하면 선배들이 엎드려뻗쳐 같은 기합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제대 보건대학원 김광기 교수는 "어릴 때부터 TV 등에서 술 마시고 주정하고, 실수하는 것을 문제없이 수용하다 보니, 본인들이 직접 술 마실 수 있는 시기가 와서 문제의식 없이 따라 하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이런 대학생들이 결국 직장과 사회의 일그러진 술문화를 이어가기 때문에 사회문제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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