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의 친구'에서 유력 대선주자로
[CBS 조근호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운명"이라고 표현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1982년. 당시 변호사였던 두 사람은 만나자 마자 부산에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인권변호사의 길을 나란히 걸었으나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의 길로 들어섰고, 문 고문은 부산을 대표하는 노동·인권변호사로 자리잡았다.
앞서 경남중·경남고를 졸업한 문 고문은 경희대 법대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투신해 유신반대투쟁을 벌이다 1975년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
문 고문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특전사에 강제징집을 당해 병장으로 만기제대했고, 복한한 뒤 1980년 사법고시(22회)에 합격했다.
당시 문 고문은 사법고시 결과를 기다리다 전두환 신군부에 반대하는 투쟁에 나섰다 다시 체포됐고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문 고문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거두었으나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판사 옷을 입지 못했고, 결국 변호사의 길에 들어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그는 부산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모임 대표, 부산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등을 지내는 등 부산의 대표적인 인권·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다.
문 고문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통령 후보 나서자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는 등 한 번도 노 전 대통령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청와대 입성 뒤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으로 끝까지 함께 했다. 평소 정치에는 뜻이 없었으나 "당선시켰으니 끝까지 책임지라"는 노 전 대통령의 설득 때문에 청와대로 갔다는 것이 문 고문의 설명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문 고문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는 등 이명박정권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했고 2011년 자서전 '운명'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문 고문은 지난해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로서 야권통합운동을 이끌었고, 같은해 12월 민주통합당의 출범으로 그 결실을 보게 됐다.
문 고문은 이어 지난 4·11 총선 때 부산 사상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뒤늦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문 고문은 지금도 "제가 정치를 한다거나 하물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들어 국정이 너무 심하게 파탄났다"며 "마치 역사가 거꾸로 돌아간 듯한 퇴행을 겪고 있다"고 출마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있다.chokeunho21@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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