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절정의 비트여, 영원하라

2012. 6. 1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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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월요일 맑음. 작은 방의 비트와 디제잉의 추억.
트랙#12 The Chemical Brothers 'Hey Boy Hey Girl'(1999년)

[동아일보]

영국의 일렉트로닉 음악 듀오 케미컬 브러스. 워너뮤직 코리아 제공

새 학기가 시작되던 2002년 봄. 새로 구한 작은 방 안에 부푼 계획을 부려 놓았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포스터를 머리맡에 붙이고 책상머리에는 '추진(推進)'이라는 한자를 프린트해 붙였다.

새 침대에서의 첫날 밤, 잠을 설친 건 맘속 설렘 탓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어디선가 시작된 4박자의 반복 리듬. 비트의 진원지는 옆방이었다. 그 방문을 노크하자 염색한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내 또래의 빼빼 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내가 내민 귤 봉지를 받아든 그는 멋쩍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오늘 플레이할 음악을 믹스 중이었어요. 시끄러웠나요?"

그 친구, J는 금세 나와 '절친'이 됐다. 홍익대 앞 클럽에서 그는 매주 자신의 음악을 틀었다. 나는 늦은 밤, 디제잉 장비를 클럽까지 나르는 걸 도와주기도 했다. 그의 스피커에서 울리는 비트를 밤마다 감내한 대가로 난 그의 방에서 턴테이블과 믹서를 다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턴테이블에 두 손을 올리고 서로 다른 두 음악의 BPM(beat per minute·분당 박자 수)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J는 말하곤 했다. "록에서 한 곡에 두세 번만 나오는 절정을 무한대로 확장하려는 꿈이 이런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어낸 거"라고.

살면서 만난 두 번째 DJ는 음반사 직원 C였다. 그의 방에서 싸구려 양주를 오렌지 주스에 섞어 마시며 통기타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즉흥 교감을 했던 하얀 밤도 있었다. 동이 트자 오렌지 주스는 떨어졌다. 냉장고의 꽤 맛없는 건강 과일채소 주스를 남은 위스키에 타 마셨다. 맛은 떨떠름했지만 그 새벽의 기분은 알싸해서 이어진 출근길이 몽롱하지만은 않았다.

어제, 미국의 초대형 일렉트로닉 음악 축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두 DJ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올여름, 두 개의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이 한국에서 열린다.

초대형 공연장을 채울 비트는 거대할 것이다. 그래도 나, J, C가 머물던 세 개의 작은 방의 비트가 더 강렬했다면, 그건 앞날을 모르던 그때 어린 우리의 심장박동 때문일지 모른다. '쿵, 쿵, 쿵, 쿵… And the beat goes on…. Can U feel It?'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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