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무기징역 구형 조두순(8세 나영이 성폭행범) "술 취해 그랬다".. 법원, 12년刑으로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는 치안 일선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25일 밤 10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본지 취재팀이 둘러본 서울 시내 14개 지구대에 접수된 주취자(酒醉者) 관련 신고는 총 75건. 이 중 실제 형사 입건까지 이어진 경우는 15건(20%)에 불과했다. 나머지 60건은 모두 그냥 풀려났다. 이 시간 동안 경찰 수십여명이 한 건당 2~3시간씩 매달려야 했다.
26일 0시 50분쯤 술 취한 여성 9명이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며 서로 싸우다가 서울 노원역 지구대로 들어왔다. 모두 19~21세 사이의 젊은 여성들로 핫팬츠나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만취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학교 선후배 사이로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자기들끼리 말싸움을 하다 시비가 붙어 20여분간 주먹다짐까지 하면서 싸웠다.
지구대에서도 1시간여 동안 다툼을 이어갔지만, 막상 형사처벌을 위해 진술서를 쓰라고 하자,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합의를 했다. 이들은 결국 경찰에 온지 1시간30분 만에 풀려났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 현행범인데도 당사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경찰이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법원도 최근까지 술을 먹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 경우가 조두순 사건이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만취 상태로 8살 나영이(가명)를 성폭행하고 신체 기능 일부를 영원히 훼손시켰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술에 취해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는 조두순의 주장을 받아들여 12년 형을 내렸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 대해 '심신미약에 이른 주취 상태(술에 취해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를 제외하고는 주취(酒醉·술에 취한 상태)를 형벌 감경 사유로 적용하지 않기로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살인 등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주취 감경이 인정되고 있다. 최모(54)씨는 작년 7월 술에 취해 아내 고모(44)씨를 칼로 찌르고 벼랑에 떠밀어서 죽이려고 한 혐의로 1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7년형으로 감형(減刑)됐다. 2심 법원은 최씨에게 "술을 마시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참작한다"며 형을 감경시켜줬다.
이렇게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면 피해자들이 2·3차 피해를 받게 된다. 나영이 아버지는 조두순의 형이 확정된 뒤 "나영이가 성인이 될 때쯤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도 술만 먹으면 용서해주면 피해자는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서울 동대문구 일대에서 활개치던 주폭 이모(47)씨에게 매일같이 피해를 당했던 가게주인 A씨는 "어차피 감옥 들어가봤자 금방 나와서 다시 행패를 부릴 것"이라며 "보복당할까봐 경찰에 진술하는 것도 무섭다"고 말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술 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려도 경찰이 봐주고, 법원에서 형을 깎아주니까 결국 죗값만큼 제대로 처벌받는 주폭이 별로 없게 되는 것"이라며 "비난 여론이 일면 그때만 처벌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법적 기준과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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