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사귄지 100일.."결혼하고 싶어요"

입력 2012. 5. 31. 20:10 수정 2012. 6. 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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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두 여고생 '아웃팅' 당할까봐 몰래만나

학교는 '더러운 얘기 말라'

성소수자 교육커녕 비하만

"이성애와 같이 존중해주세요"

내일 종로서 퀴어문화축제

교복 차림의 김수진(가명·16)양이 지난 29일 경기도 광주의 한 피자가게에 들어섰다. 혹시 아는 얼굴은 없는지 가게 안을 빠르게 살피고 나서야 수진이는 미리 와서 기다리던 지현아(가명·17)양의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둘은 손을 맞잡았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노 독주회에서 데이트를 한 뒤 2주 만에 다시 만난 것이었다.

피자가게에 나란히 앉은 두 학생은 사귄 지 곧 100일이 되어가는 청소년 레즈비언 커플이다. 수진이는 자신의 피자에서 새우를 떼어내 언니의 피자에 얹어주었다. 새우는 현아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핫소스를 서로의 손등에 뿌리며 장난을 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현아가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동생은 머리를 언니에게 기댔다. 수진이에게 "언니가 그렇게 좋아요?"라고 묻자 "네, 결혼하고 싶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은 청소년 성소수자 온라인 모임에서 만났다. 곧 고등학생이 되는 수진이가 모임 게시판에 고등학교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올리자 현아가 친절하게 답을 해준 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왔다. 수진이는 "언니는 자상하게 뭐든 잘 가르쳐줘요"라며 빙그레 웃었다. 현아는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중이다.

학교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위험한 공간'이다. 어느날 현아의 학교 남자 교사 두명이 우연히 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 반 아이들이 "두분 커플옷 입으신 거냐"고 놀리자 교사는 "더러운 얘기 하지 말라"고 말했다. 현아의 얼굴에서만 웃음이 사라졌다. 현아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무심코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을 하는 게 속상하다. 아이들이 연예인 홍석천과 하리수를 소재로 심한 농담을 해도 제지하는 선생님을 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닌 현아에게 한국 학교의 이런 모습은 낯설다. "미국에서 상담선생님에게 여학생 친구를 좋아한다고 말했었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줬어요. 웃으면서 애인도 데려오라고 하셨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힘들 것 같아요. 상담선생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온라인 모임 게시판에 가보면 '아웃팅' 당한 학생들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아웃팅'이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뜻한다. 어떤 글에는 '선생님이 우리 반에 ○○가 게이니까 조심하라고 했다'고 써 있었다. 현아는 아웃팅 당해 자퇴한 아이들만 모임에서 5명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수진이와 현아는 데이트할 때 조심스럽다. 학교 친구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곳만 골라서 만난다.

"성정체성에 대한 판단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고 묻자 현아는 반박했다. "저도 제가 동성애자인 것을 100% 확신하지 않아요. 언젠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왜 청소년기에 동성애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성애와 동성애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현아는 중학교 3학년 때, 수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각각 동성애자임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확신은 굳어졌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2장 6조는 "학생은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2일 서울 종로구 청계2가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행진 행사에 100여명의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 친구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권리를 거리에서 외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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