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과 이정희 '밀애'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2. 5.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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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런 법이 있냐" vs "뭐하는 짓이냐"

유시민과 이정희 밀애에서 고성까지

진보당 통합의 역설 혹은 역사의 간계

진보·개혁 세력 지지자들이 참담함을 느끼는 건 '경선 부정'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수습 과정에서 더 큰 절망감을 안겼다. "부정이 일부 있었지만 당원과 당 전체가 부정덩어리로 오염을 뒤집어쓸 정도는 아니"라는 이정희 대표(5월9일 라디오 인터뷰)의 주장은 상식을 벗어났다. 부정이 있었다면 부정선거다. 그게 민주주의다. 당권파는 5월11일 현재까지 부정이 아니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번 경선 부정 사태가 어떤 식으로 끝을 맺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러설 수 없는 2라운드 기다려

다만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파국'은 피하겠다고 강조하고, 분당을 할 경우 모든 정파의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점에서 '절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시민 대표는 "분당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고, 이 대표는 "통합할 때 절대 갈라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믿음을 배신당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월12일 중앙위원회를 기점으로 양쪽이 절충점을 찾게 되더라도, 충격을 받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5월31일 공식 임기가 시작되는 비례대표 당선인들의 거취를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이고, 당 혁신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원내대표, 당 대표, 대선 후보를 뽑는 정치 일정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감정과 불신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에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물러설 수 없는 '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현 국면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유시민 대표다.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가 다른 진보세력의 반대에도 밀어붙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때문에 이런 곤욕을 치르고 조직의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야말로 역사의 간계다.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은 통합진보당 참여를 통해 오랫동안 진보 진영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자주파·당권파의 패권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엄청난 역사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진보통합 논의 과정에서 국민참여당의 합류에 반대했던 '진보교연' 소속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말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찰떡궁합을 뽐냈던 이정희·유시민 대표가 5월2일 진상조사 결과 발표 이후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표선수'로 정면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얘기다. 손 교수의 얘기가 통합의 '역설적인 결과'를 꼬집은 것이라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말은 진보정당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국민참여당계의 역할이 흥미롭다. 기존 운동권과 전혀 다른 체질을 가진 세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정파 싸움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둘러싸고 양보 없는 다원적 경쟁 구도가 가능하다. 오히려 당내 정당 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통합도 없고 진보도 아닌 이번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사태. 이것은 통합도 이루고 진보도 되살리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2011년 7월, 의기투합

"진보 진영에서 '금서' 비슷하게 됐네요." 2011년 7월14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대담집 <미래의 진보>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 책의 기획자인 이정무 <민중의 소리>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출판기념회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을 자극해 큰 반발을 샀던 터다. 출판기념회는 몇 차례 연기됐고, 이정희 대표는 행사 직전까지 참석 여부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황리에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전국을 돌며 북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1월17일 심상정·노회찬 등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류한 3자 통합이 성사됐다. '운동권 정당'에서 '수권정당'으로 탈바꿈하려면 대중성을 갖춘 국민참여당이 필요했던 민주노동당과, 지난해 4월27일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 올인했다 실패한 뒤 독자 생존이 어려워진 국민참여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했다. 진보정치의 '우경화'란 평가와 '외연 확대'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어찌됐든 '이정희와 유시민'은 한 묶음이 됐다.

그런데 이번 경선 부정 사태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권파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숨은 실세'로 불리는 이석기 당선인이라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5월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제가 참여당 통합을 가장 먼저 제기했고, 엄청난 논쟁을 했다. 온갖 개량주의라는 욕을 먹고, 리버럴 진보가 가능하냐, 따뜻한 아이스크림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오래전부터 저는 진보세력이 민노당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고, 진보 진영의 새로운 정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선 부정 사태의 해결 방안과 관련해 "유 대표와 견해 차이가 있었다"고도 했다. 통합의 '동지'들이 12월 공식 창당 이후 다섯 달 만에 서로 '뜻이 다름'을 확인한 것이다. 이석기 당선인의 말을 빌리면, '정치 방식'의 차이는 너무 컸다.

2012년 4월, 결별 조짐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이미 4월 총선을 앞두고 분열의 조짐이 드러났다. 유 대표는 당내 지역구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월 당무 거부라는 '파업'을 벌였다. 각 지역에서 경선 룰을 둘러싸고 정파 간 갈등이 심해졌으나, 공동대표단의 중재·권고안은 먹히지 않았다. 당시 유 대표는 당 누리집 게시판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썼다. 당무 거부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표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민참여당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후보를 독식하려는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작동됐고, 유령당원 동원 의혹 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다. 유 대표의 당무 거부는 '계속 이러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중순 온라인투표 소스코드 변경, 무효표 처리를 둘러싼 비례 8번과 10번의 순위 변경 등 비례대표 경선과 관련해 제기된 여러 문제는 서둘러 봉합됐다. 3월21일 이정희 대표가 나섰던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 여론조사 경선 부정, 경기 성남 중원 후보였던 윤원석 전 <민중의 소리> 대표이사의 성추행 전력 파문이 터진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3월22~23일)이 코앞이었던 탓이다. 공동대표단은 일단 선거부터 치른 뒤 진상조사를 하자며 이를 덮었다. 시한폭탄을 안고 총선을 치른 것이다.

총선 결과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었다. 원내교섭단체(20석)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전국적인 야권 연대의 경험을 쌓았고 제3당으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의석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 대표는 총선 결과에 크게 실망해 "집에 간다"는 말을 부쩍 많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권파는 6~7석을 얻고, 진보신당 탈당파인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은 생환했지만, 국민참여당계는 전북 남원·순창에서 1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다. 국민참여당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유 대표가 정치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1~2주가량 했다. 그러나 그 뒤로 당 개혁 작업에 의욕을 갖고 당권 도전 여부를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총선 과정에서 직접 겪었던 당 조직 운영의 폐습을 끊어내는 데 뛰어들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2012년 5월, 정면충돌

5월7일 오전 통합진보당 대표단 회의 시작 전 이정희 대표는 싸늘한 얼굴로 유시민 대표에게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따졌다. 유 대표는 "좀 이따가 하시죠"라고 받아쳤다. 앞서 5월4일 열린 전국운영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 대표는 이 대표의 회의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5월2일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형 폭탄이었고, 두 대표 사이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다. 두 사람의 상황 인식과 정치 방식의 차이가 앞으로 좁혀질지 의문이 들 정도다. 유 대표는 "우리 당이 민주주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어느 누구의 책임을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이 책임져야 한다"는 태도인 반면, 이 대표는 "부정선거가 아닌데 당권파와 당원들을 모욕·무고하고 있다"고 맞섰다. 당권파 쪽에서 유 대표를 향해 "동지로 위장해 세작질(간첩질)을 일삼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정의 골도 깊다.

불신도 깊어졌다. 사태 초반 이 대표는 유 대표에게 당권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으나 유 대표는 이를 거절했다. 통합진보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야권 인사는 "진보정당의 지도자라면 당권을 맡아 최대한 내부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유 대표가 너무 정치공학으로 접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 대표와 가까운 한 당내 인사는 "유 대표는 당권파가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바꿀 의지가 있는 건지 궁금하고도 두렵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권파가 당권을 제안한 이유가 "그냥 안주하겠다는 건지, 정말로 변화의 의지를 담은 건지" 확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2년 6월, 불투명한 진보의 미래

통합진보당은 애초 6월3일 새 당 대표를 뽑기로 했다. 공동대표단의 과도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대선 후보 경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과 달리 당권과 대권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당권파는 이정희 대표를 내보내거나, 이 대표가 관악을 경선 부정 사건으로 도덕성에 흠집이 간 점을 고려해 광주의 오병윤 당선인을 내보내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정 대표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국민참여당계는 내부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국민참여당계는 '정통 진보'가 아니라 출마할 경우 인천연합·울산연합 등 민주노동당계 비주류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에 고민이 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선 부정 사태 과정에서 이 대표와 유 대표는 모두 불출마 뜻을 밝혔고, 심 대표의 출마도 어렵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진상보고서 결과에 따른 후속 처리 및 대책을 위한 특위' 구성과 활동 결과 등에 따라 당대회 자체가 계속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외부 인사 6명을 포함해 11명으로 이뤄지는 특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도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적 외상이 커서 상당 기간 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표와 달리, 유 대표는 정치적 가능성이 오히려 열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개혁당 시절부터 열린우리당, 국민참여당에 이르기까지 '정당 개혁'을 외쳐온 유 대표가 통합진보당 쇄신 과정에 기여할 수 있고, 결과에 따라 당내 입지나 정치적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 12월, 불투명한 야권 연대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사태는 12월 야권의 대선 연대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5월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권 연대에 나서거나 대선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대표는 5월10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우리 당이 해결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정권 교체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야권 연대 파트너인 민주통합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5월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이 국민 눈높이를 보고 지혜롭게 해결했어야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도 야권 단일화를 했고 대선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이 민주당에도 있지 않느냐고 한다. 슬기롭게 빨리 진행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총선 뒤 민주당 일각에서는 야권 연대가 중도층 이탈을 가져왔다며 '야권 연대 재고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따가운 국민의 시선이 민주·진보 진영 전체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이 '결자해지'해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 왜 중계하나

참여계 요청으로 당헌·당규에 생중계 못 박아

지난 5월4일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에 대처하는 통합진보당의 자세를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도 볼 수 있었다. 당원들은 물론 수많은 국민들이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날 선 공방을 밤새도록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일부 당권파 당원들이 야유와 고함을 보내며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모습도 그대로 중계됐다. 의장인 이정희 대표가 17시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고, 다음날 아침 7시께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까지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당의 존폐까지 거론되는 중차대한 사안을 논의하는 이 회의는 왜 생중계된 것일까. 통합진보당은 창당 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계의 요청으로 각급 회의를 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온라인 기반 정당을 표방한 옛 국민참여당은 최고위원회 등 주요 당내 회의를 전부 인터넷에 생중계해왔다. 통합진보당은 통합 주체들의 합의에 따라 인터넷 생중계를 당헌·당규에 못박았다. 당규 제8장 40조는 "중앙위원회, 전국운영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운영위 생중계는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내부 갈등이 첨예한 사안일 경우 회의장 안에서는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회의 결과와 과정은 어느 정도 '정리'해서 브리핑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당규에는 "의장단 또는 공동대표단이 합의하면 전부 또는 일부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지만, 5월4일 이후 운영위는 모두 생중계됐다. 진상조사 결과를 '부실조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당권파는 생중계를 통해 조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당원·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중계를 통해 드러난 당권파의 '생얼'은 국민의 뇌리에 충격을 남길 만큼 강렬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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