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어요" 신고해도, 경찰 흘끗 보고 돌아서

2012. 5. 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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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생 매맞은 엄마' 인데 감옥에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폭행당한어머니, 어느날 아버지 목을 졸랐다돌아온 건 징역 5년"

여성폭력 피해자 사법정의 토론회"가정폭력 저항 정당방위 인정을"

아버지의 폭력은 ㄱ(38)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뤄졌다. 틈날 때마다 어머니를 때렸다. 가죽띠, 돌, 흉기가 동원됐다. ㄱ씨는 걸음마를 뗀 직후부터 이웃에게 달려가 "우리 엄마 죽어요.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어야 했다. 구구단보다 파출소 전화번호부터 먼저 외웠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현관문 앞에서 아버지의 얘기만 들었다. 집 안의 어린 ㄱ씨는 경찰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고 애절한 눈빛만 보냈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경찰은 집 안을 흘끗 보고는 "괜찮으냐"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섰다. 38년 동안 그랬다.

지난해 8월 아버지가 흉기를 어머니 눈에 겨누며 "장님을 만들어줄까, 난도질을 해줄까"라고 위협했다. 30분 동안 승강이를 벌였다. 상황이 일단락된 뒤 아버지는 흉기를 이불 밑에 넣고 잠들었다. 어머니는 마침 눈에 띈 넥타이로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아버지의 유가족은 수십명씩 와서 시위를 했다. ㄱ씨는 수십년 동안 목격한 사실을 호소했지만, "엄마를 위해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여성폭력 피해자의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토론회'에서 ㄱ씨는 말하는 내내 울었다. "8개월째 수감중인 66살 어머니를 접견할 때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상황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노가 치미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이 한번만이라도 강경하게 대처했으면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재판부도 살인으로 무조건 단정하기 전에 가정폭력의 고통부터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20대 후반인 ㄴ씨도 어머니가 30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교사인 아버지는 학교에선 '행복한 가정'에 대해 강의하고, 집에선 어머니가 결혼 전부터 다른 남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구타와 성폭력을 가했다. ㄴ씨는 "초등학교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발 저희 아버지의 손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무원인 아버지를 생각해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 점을 노려 술만 취하면 30분 간격으로 폭력을 가하고, 어머니의 속옷을 검사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힘들어 누워 있으면 흉기를 들고 와서 괴롭혔다. 결국 어머니는 지난 3월 다시 폭력을 시작한 아버지를 살해하고 말았다. ㄴ씨는 "깊이 반성하고 있는 우리 어머니를 선처해달라"고 호소했다.

ㄱ씨 어머니의 법정 대리인인 오지원 변호사는 "재판부는 진단서 없이도 유죄를 인정하는 일반 상해사건과 달리 수십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 피해에 대해선 '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놓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며 정당방위를 더 엄격하게 재단한다"며 "가정폭력에 처해 있는 가정에다 일상적인 부부관계를 대입시켜 놓고 폭력 상황에 대한 입증 책임을 판단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법학)도 "가정폭력 피해자는 사회적 장치들의 방관 속에서 외롭게 폭력에 대처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가해자 살해는 가정폭력에 대한 구조적 방조의 결과로 피해자가 행한 사적 구제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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