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의 폭력, 흥분상태서 만지고 비비고

2012. 5. 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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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21, 보고서 단독 입수

사조오양 등서 한국인이 외국인 선원 추행

뉴질랜드 정부 보고서 내고 강하게 비판

우리 인권위는 진정 각하 처분 논란

피해자 직접 면접도 안해 불성실 지적

"(외국인) 선원에 대한 저임금과 학대에 대한 수많은 의혹과 보고가 제기돼왔다. 본 조사단에 제기된 모든 항의는 한 국가에 대한 것이다."(뉴질랜드 정부 보고서 7장)

<한겨레21>이 뉴질랜드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검토한 결과, 뉴질랜드 정부가 외국인 선원 학대, 불합리한 노동계약 등과 관련해 뉴질랜드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하는 사조오양의 원양어선과 또 다른 원양어선 신지호를 강하게 비판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 어선이 뉴질랜드 해역에서 조업한 이후 최초로, 선박 안전 기준 위반 등의 이유로 지난 2월 한국 어선 한 척의 조업 허가가 박탈된 사실도 드러났다. 논란의 강도는 '한국 국격의 침몰'로 표현해도 될 정도다.

뉴질랜드 정부는 '외국 어선의 운용에 대한 관련 부처 조사 보고서'(Report of the ministerial inquiry into the use and operation of foreign charter vessels)에서 어장 관리(Management of Fishery) 기준, 선박 안전(Vessel Safety), 고용·노동 조건, 학대 등 갖가지 이슈와 관련해 한국 원양업체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보고서 2장 '국제적 평판' 항목에서 "2011년 내내 선박 안전, (외국인 선원의) 노동조건, 선장과 간부에 의한 신체적·성적 학대(abuse), 저임금(underpayment)과 근로시간표 조작(manipulation of time sheet)이 있다는 의혹과 항의가 제기됐다. 노동착취와 기준 미달의 노동조건에 대한 이런 의혹이 진보적이고 공정한 국가라는 뉴질랜드의 평판에 해악을 끼쳐왔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고서는 "평판에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보고된 사건 대부분은 한국 어선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특정 한국 원양업체와 어선의 이름이 이런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학대 의혹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향해 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노동부(Department of Labour)가 한국 원양어선 '신지호'가 노동조건 등에 대한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에 답변을 거부한 이유로, 지난 3월5일 외국인 선원을 고용할 수 없도록 처분한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 뉴질랜드 농림부(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Forestry)는 선박 안전 기준을 어겼다며 지난 2월 신지호의 조업 허가를 아예 박탈해버렸다.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는 2010년 오양70호 전복사고로 촉발됐다. 2011년에는 오양75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32명 전원이 한국인으로부터 성희롱과 폭행을 당했다며 배에서 도망쳤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경영대학 아시아연구소에서 먼저 보고서를 작성했다. 뒤이어 뉴질랜드 농림부와 노동부가 합동으로 조사단을 꾸렸다. 오클랜드 대학 보고서는 한국 언론에 일부 소개되어(<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2년 1월호 '남획과 유린, 한국 참치배의 경쟁력' 참조) 관심을 모았다. 뉴질랜드 정보의 공식 보고서 내용은 이번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두 보고서는 모두, 원양어선의 한국인 간부가 외국인 선원을 성희롱하고 임금착취를 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가, 국제민주연대와 서울공익법센터 등이 오양75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6명을 대신해 '성희롱 등을 겪었다'며 지난해 제출한 진정에 대해 지난 4월18일 기각결정한 사실이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인권위는 결정을 이례적으로 비공개했다. 상임위 안팎을 취재한 결과, 인권위는 오양75호에서 보조갑판장으로 일하던 피진정인 강아무개씨가 인도네시아 선원 6명의 성기를 만지거나 이들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비볐다는 '개연성'을 인정했다.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가해자로 강씨를 지목하고 강씨가 자신의 성기를 내밀거나 피해자들의 몸에 비비고 피해자들을 껴안고 샤워 중인 인도네시아 선원을 쫓아갔다고 하는 등 공통점이 발견돼 성희롱 행위의 발생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등 석연찮은 이유로 기각결정했다. 다만 인권위는 원양어선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근거로 "원양어선 내 선원들의 성희롱 예방 및 구제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일종의 '타협안'인 셈이다.

김영혜(53) 차별시정위원장과 양현아(52), 김성영(63) 비상임위원이 함께 이 사건을 맡았다. 김영혜 위원장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법조인으로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인 '시민과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를 지냈다. 양현아 위원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남북한 공동기소단 검사로 활동하는 등 여성인권 활동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김성영 위원은 전 성결대 총장으로 이력을 살펴봐도 인권 관련 활동 경력은 찾기 어렵다. 주로 보수적 기독교계의 시각을 대변하는 활동을 해왔다. 결정 과정에서 위원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인권위 쪽은 "(한 차례 완성됐던) 결정문을 다시 고치고 있다. 언제 최종 결정문이 나올지 아직 확실치않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갑판장 최아무개씨가 폭행과 폭언을 했다는 혐의도 사실로 인정했다. 사조오양이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임금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폭언 문제와 임금 문제는 인권위의 조사 대상을 벗어난 주제라며 '각하'결정했다. 사조오양은 <한겨레21> 취재에 답변을 거부했다.

불성실함은 또 다른 문제다. 인권위는 중요한 참고인 4명의 "진술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진정을 기각했다. 피해자를 직접 면접조사하지도 않았다. <한겨레21>이 인도네시아 인권단체 '앗키 인도네시아'(ATKI Indonesia)에 문의하자 이들의 근황이 간단히 파악됐다. <한겨레21>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오양75호에 탔던 인도네시아 선원 2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머나먼 나라였다.

고나무 <한겨레21> 기자 dokko@hani.co.kr

*한국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인도네시아 선원 트리스만토와 스키토의 사연 등 이 사건과 관련한 좀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는 <한겨레21> 911호에 실려 있습니다. <한겨레21>은 전국의 철도역 등 가판대와 대형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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