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나꼼수 내용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2012. 4. 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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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의 오프라인 본부인 벙커원(BUNKER1)을 찾았다. '나는 꼼수다' 멤버들과 그 지지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4·11 총선이 끝난 이후 정치평론가들은 나꼼수와 그 팬들이 총선에서 야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벙커원은 서울 대학로 방송통신대학 뒤편에 위치한 카페다. '나는 꼼수다' 측에서 지지자들과 오프라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으로, 총선 당일 오픈 공식행사를 열었다. 19일부터는 정상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나꼼수 측은 이미 지난 2월 "오프라인에서 청취자들을 위해 카페를 내고, 그곳에서 녹음과 공개강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용민 막말이 패배 원인? 신경 안 써"

정상 영업 개시 하루 전인 18일, 김용민 나꼼수 PD가 벙커원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김 PD는 지난해 11월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보다 한결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군데군데 깎지 않은 수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나꼼수 멤버들이 '삼두노출 꼼수대번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차량 안에 탄 사람이 김용민 나꼼수 PD. | 백인성 기자

김 PD는 1분에 한 번꼴로 벙커원을 찾은 손님들과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김 PD에게 나꼼수와 그 팬들에게 제기된 비판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 했지만 그는 "선거 때부터 사방팔방에서 공격을 많이 당했다. 아직은 언론과 정식 인터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사양했다. 다만 김 PD는 자신의 막말 파문이 접전지의 여론에 영향을 줬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얘기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아직은 나꼼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수는 없다. 1주일 정도 지나면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총선이 끝난 후 언론은 김 PD의 출마가 야권연대 패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12일 조선일보는 "김용민의 노인비하 발언이 인구 구성비에서 노인이 많은 충청·강원 지역에서 영향이 증폭됐다"고 분석했다. 13일 한국일보는 총선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김 후보의 막말이 고연령층의 결집을 높였다"고 봤다.

나꼼수 측은 이에 신경쓰지 않았다. 총선 직후인 12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벙커원에서 열린 뒤풀이에서 "나꼼수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게 아니라 반대로 나꼼수 때문에 이만큼 저지한 것"이라며,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언제나 희생양을 찾는다. 가장 만만한 김용민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김 PD도 곧이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제 제가 무슨 욕을 해도 대중은 놀라지 않습니다. 이 특권으로 서럽게 사는 사람 대리해 할 말 하겠습니다. 낙선자의 근신은 끝났다. 국민욕쟁이 행동 개시"라는 글을 올려 활동 재개를 알렸다.

벙커원 1층은 일반 커피숍과 큰 차이점이 없다.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고, 점원들은 커피 등 음료를 판다. 일부 메뉴가 그동안 나꼼수에서 언급된 내용들을 패러디한 수준이다. 아메리카노는 아'에리카'노, 녹차라떼는 '녹색성장라떼', 우유는 '주진우유'라는 이름으로 내걸려 있다.

지하도 벙커원의 공간이다. 지하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딴지일보 직원들의 작업실이 있다. 그 옆에 있는 녹음실에선 조만간 '나는 꼼수다'와 '나는 꼽사리다'를 녹음이 진행될 예정이다. 나머지 자리에는 벙커원을 찾은 손님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벙커원을 찾은 손님의 상당수는 벙커원 개장을 맞아 일부러 먼곳에서 찾아온 부류로 보인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서울 송파구, 중랑구, 구로구, 마포구 등에서 이곳 종로구 혜화동까지 왔다.

진중권 "팬덤이 정권교체 목적마저 삼켰다"

벙커원의 손님들은 김용민 PD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도, 자신들을 '팬덤'으로 규정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총선이 끝난 이후 나꼼수를 비판적으로 보는 정치평론가들의 평이 지면에 실리기 시작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한 신문의 평론에서 선거 막판 나꼼수의 '삼두노출' 이벤트에 대해 "나꼼수 열렬 팬들은 결집시켰겠지만, 다른 유권자들을 이탈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 평론가는 이어 "나꼼수가 정치적 치외법권지대에 있었던 B급 언어를 가지고 A급 세계에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일은 어그러졌다. 애당초 나꼼수는 정치지도부가 아니었다"라고 썼다.

나꼼수의 오프라인 근거지인 벙커원(BUNKER1)의 내부 모습. 향후 안쪽에 보이는 스튜디오에서 '나는 꼼수다', '나는 꼽사리다' 녹음이 진행될 예정이다. | 백철 기자

오랫동안 나꼼수 현상에 비판적이었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총선이 끝난 후 "나꼼수 팬덤은 정권교체라는 수단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팬덤에 가속이 붙으면서 정권교체라는 원래 목적마저 집어삼켰다"라는 취지의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이어 진 교수는 "적군 욕 잘해서 인기 끄는 문선대(군 공연단)가 졸지에 지휘부 역할을 했다. 전 병력을 이끌고 '돌격 앞으로'를 한 거다"라고 썼다. 아울러 그는 나꼼수 팬들의 태도에 대해 "나꼼빠들의 신앙생활", "자기들의 신앙촌", "논리로 해결될 수 없는 유사종교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벙커원의 손님인 이종영씨(32·회사원)는 정치평론가들의 의견에 대해 "나꼼수 팬들을 비이성적 팬덤으로 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나꼼수 청취자들을 지적 소양이 부족하고 저급한 사람으로 여기고 싶겠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꼼수에서 말하는 내용이라고 청취자가 무조건 지지하진 않는다. 그 내용이 사실에 맞는지 인터넷 등에서 찾아보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벙커원을 찾았다는 신모씨(29)는 "나도 나꼼수를 좋아하지만 곽노현 교육감 건에 대해선 생각이 달랐다. 곽 교육감이 돈을 줬다는 사실 자체를 무조건 옹호할 순 없다"며, "대부분의 청취자들도 이 정도는 구별해서 들을 만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4월 18일 벙커원에서 김용민 PD를 만났다. | 백철 기자

선거 기간 동안 일부 나꼼수 팬들은 SNS와 정봉주 전 의원의 팬클럽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을 통해 나꼼수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해당 인물의 트위터에 욕설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김용민 PD의 후보사퇴를 촉구했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찌라시'로 규정하며 절독 운동을 벌인 사람들도 있었다.

이종영씨는 "어느 집단이나 지나친 마니아층은 다 있는 것 아니냐. 소수 팬들의 모습을 가지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모든 나꼼수 청취자들을 일정한 모습으로 재단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말했다.

"나꼼수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 배웠다"

또다른 손님인 유지혁씨(26)는 "나꼼수가 했다고 무조건 옹호할 순 없지만, 전체적으로 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답했다. 유씨는 "뭔가 세상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나꼼수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운 이후에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유씨와 동행한 이윤지씨(25)는 "나꼼수 전에도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꼼수만큼 속시원하게 긁어준 건 못봤다. 오랜 시간 동안 나꼼수가 내 편이 되어줬기 때문에 팬들이 나꼼수를 옹호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나꼼수 멤버들은 선관위, 어버이연합 등이 제기한 소송에 휘말려 있다. 선관위는 김 총수와 주 기자가 공직선거법 제60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에 명시된 언론인에 해당된다며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즉각 수사를 시작했다.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도 지난 16일 김어준 총수가 총선 직전 나꼼수에서 "어버이연합도 고생한다. 그거 일당 받고 하거든"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김 총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김용민 PD의 책을 출간한 한 출판사도 총선이 끝난 이후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관련자 일체에 대한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김재호 판사(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의 기소청탁 사건도 역시 아직 검찰에 계류 중이다. 주진우 기자는 "검사들이 너무 괴롭혀서 힘들다"고 말했다.

나꼼수 멤버들은 여러가지 법적인 분쟁에 대해 변호사와 함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어느 정도 마련되면 나꼼수를 일부 개편한 뒤, 벙커원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재개할 방침이다.

<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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