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민간인 사찰에 왜 침묵했나

정용인 기자 2012. 4. 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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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인권위 회의록 들여다보니…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사찰 논란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민간인 김종익씨 불법사찰 사실이 알려진 뒤, '언젠가 전모가 드러날 것'이 예정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인권위는 불법사찰 문제에 어떤 역할을 했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에 인권위 목소리는 아직까지 들리지 않고 있다.

'민간인 사찰' 문제가 인권위 내에서 제기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10년 8월 23일 열린 인권위 2010년 14차 전원회의의 제 10-25안건의 이름은 '정보기관의 민간인사찰(정치인 포함) 의혹에 대한 직권조사 등'이다. 안건 명에 '정치인 포함'이라는 문구가 삽입된 이유는 김종익씨 사건과 아울러 당시 한나라당 중진의원인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도 "본인과 가족이 불법사찰을 받았다"며 사찰의 배후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지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이 안건을 제출한 인사는 최경숙,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었다. 전원회의에서 안건은 부결되었다.

무소속 정태근 의원이 4월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즉시 사과하고 관련 공직자들을 해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석 기자

인권위 관계자는 "직권조사가 이뤄지려면 인권위원 6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다"고 밝혔다. 전원회의에서는 어떤 토론이 이뤄졌을까. < 주간경향 > 은 국회를 통해 당시 회의록을 입수했다. 안건이 보고된 직후, 김태훈 위원(변호사·법무법인 화우)은 이렇게 말한다. "내용이 불분명하다. 무엇에 대해서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상임위원들의 설명을 들은 김 위원은 다시 발언한다. "인권위가 직권조사해도 괜찮은지 한나라당 의원들 세 명과 가족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한태식 위원(보광 스님·정토사 주지)도 거든다. "상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인데, 우리가 이것을 (조사) 안 하면 '이상득 의원을 옹호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또 했을 때는 '이상득 의원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김양원 위원(목사·신망애복지재단 설립자)은 "민간인이나 정치인 사찰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하지만,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 등 고민할 게 많다"며 "이 사건 이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은 많다"고 말한다.

보수성향 인권위원 '보류' 주장에 부결

안건을 제기한 세 상임위원과 조국, 장주영 위원은 직권상정을 강력하게 촉구하지만 현병철 위원장은 안건을 1)직권조사를 한다 2)사실관계 확정은 더 보완한 다음 내리자, 보류한다 둘로 정리한 뒤 표결에 부친다. 결론은 5대 3. 6명이 안 돼 부결됐다.

여기서 의문은 현병철 위원장은 아무런 의견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동부결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인권위의 다른 안건, 이를테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표결에 참여하는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안건을 상정했던 유남영 당시 상임위원은 "당시 한겨레나 경향신문뿐 아니라 조선, 동아 같은 보수매체에서도 정보기관의 한나라당 의원과 가족 사찰 문제를 질타하는 사설을 실어 자료로 안건에 붙여서 청구한 것이 기억난다"며 "위원장부터 직권조사에 들어가면 정치적 문제가 될까봐 지레 겁먹어 절차적 문제를 들면서 회피해버렸다"고 말했다. 문경란 당시 상임위원은 "검찰이야 역사적으로 권력의 눈치를 봐왔지만 인권위라도 제자리에 있었으면 다행일텐데 아무리 봐도 당시 인권위는 대통령이나 권력의 심기를 살피는 게 항상 판단의 근거가 되었던 것 같다"며 "비록 인권위가 수사권은 없지만 불법사찰 문제에 대해 사법기관에 권고를 하고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이 정부가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릴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주간경향 > 은 2010년 당시 '보류'를 주장했던 인권위원들의 현재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한태식 위원은 "병원 치료 중"이라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김태훈 위원 역시 "회의 중이라 이야기하기가 그렇다. 다시 연락을 달라"고 말했으나 이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사찰 문제가 폭로된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직권조사에 대한 공식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권위 노조는 4월 5일 성명을 내고 "이번 민간인 사찰은 우리 위원회의 임무에 가장 부합하는 사안임이 분명하고 이것을 피해가는 것은 위원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직권조사를 촉구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금 현재 공식적으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민간인 사찰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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