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재호 판사 관할 지역 시민만 기소됐나

주진우 기자 입력 2012. 3. 12. 17:41 수정 2012. 3. 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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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전 의원(새누리당)이 3월8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 나 전 의원은 남편 김재호 판사에게 제기된 기소 청탁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지난 3월1일 나 전 의원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다르다. '나꼼수'의 거짓 폭로는 성추행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8일 불출마 기자회견에서도 나 전 의원은 "당이 음해와 선동에 휘둘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나 전 의원의 말은 사실관계부터 다른 부분이 많다. 사실을 교묘하게 호도한 경우도 있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26일 나경원 전 의원이 남편 김재호 판사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의 말이다. "저는 자위대 행사 참석 논란과 관련해 저를 비난한 네티즌에 대한 고소·고발을 검토한 적도 없다. 제가 법적인 대응을 했다면 판사 시절 제가 맡지도 않았던 이완용 후손의 토지반환 소송에 관한 음해였으며, 따라서 자위대 사안에 대해 기소해달라고 서부지검 검사에게 기소 청탁을 했다는 일부 매체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다르다."

< 나는 꼼수다 > 는 자위대 행사 참석 논란과 관련해 누리꾼을 고소·고발했다고 지적한 적이 없다. 나 전 의원이 고소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고발은 나 전 의원의 보좌관이 했다고 밝혔다. 고소당한 누리꾼은 나 전 의원 주장대로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완용 후손의 토지반환 소송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밖에도 자위대 행사 참여 건 등을 언급하며 나 전 의원을 비난했다.

10·26 보궐선거 전 기자는 < 나는 꼼수다 > 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4년 나경원 의원이 자위대 창설 행사에 참석 후 나 의원이 친일파라는 글들이 수만 건 올라왔다. 서울 녹번동에 사는 김 아무개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나경원은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다, 친일파'라고 비방하는 내용의 글들을 올렸다. 그러자 2005년 말에 나경원 의원의 보좌관이 김 아무개씨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랬더니 나경원 의원 남편인 김재호 당시 서울서부지법 판사가 검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고소인을 기소만 해달라'며 기소 청탁을 했다."

기소 청탁할 필요가 없었다고?

다시 나 전 의원의 말이다. "기소된 사건을 배당받은 박은정 검사는 2006년 1월 중순께 불과 10여 일 담당했을 뿐입니다. 이후 박 검사는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최모 검사가 사건을 재배당받아 수사한 후 2006년 4월13일 기소를 했습니다. 즉, 박은정 검사는 기소 과정을 실질적으로 담당했던 검사가 아닙니다. 김재호 판사는 기소 시점부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미국 유학 중이었습니다. 기소 여부에 영향을 미칠 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2006년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김재호 판사는 서부지원에, 박은정 검사는 서부지청에 있었다.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기소 청탁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있었다. 물론 미국 유학 중 국제전화로 청탁을 할 수도 있다. 더욱이 검찰 조직은 유기적인 동일체로 볼 수 있다. 수사 검사가 교체되더라도 동일성을 유지한다. 그래서 수사 초기의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검사로 교체되었다고 하더라도 박 검사가 '담당한 사건'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박 검사가 나경원 사건의 주임검사였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나 전 의원은 기소된 사건이 애초에 청탁을 할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허위사실 유포 사건은 이완용 후손이 제기한 토지반환 소송 판결문의 담당판사 이름만 확인해도 명백한 거짓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검찰에서의 기소는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피고 김씨에게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정치인에 대한 누리꾼의 명예훼손 사건치고는 이례적으로 무거운 형이다. 통상 벌금 50만~200만원에 그친다. 이 사건의 경우 법원에서는 무거운 검찰 구형을 고려해 벌금 700만원이라는 무거운 판결을 내렸다. 벌금을 미납할 경우 5개월 가까이 노역형을 살게 된다. 이는 검찰의 '불항소 기준'(검찰은 일반범의 경우 선고가 구형의 3분의 1 이상이면 승복하고 항소하지 아니한다. 2006년 당시 항소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서부지검에 사건이 송치된 것은 우연이라고 말한다. "기소된 사건은 영등포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고 수사 결과 성명 불상의 네티즌이 은평구에 주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서부지검에 송치됐을 뿐입니다."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후 나 전 의원을 비방한 누리꾼은 수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김재호 판사 관할에 사는 김씨만 기소되었다. 김씨가 가장 악독한 누리꾼도 아니었다. 다른 누리꾼보다 죄가 경미했다. 김씨는 "의원실에 해명하라는 메일을 보내고 내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뿐이다. 막말이나 욕설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검찰과 법원 권력이 한 소시민을 너무 괴롭혔다"라고 말했다.

기소 청탁 의혹의 핵심은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청탁을 했느냐다. "김재호 부장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는 것이냐" "전화한 적도 없다는 것이냐" "기소 청탁을 안 했을 뿐 전화를 한 것은 인정하는 것이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 전 의원은 "기소 청탁을 한 적이 없다"라는 대답을 세 차례 반복했다. "기소 청탁을 받았다고 진술한 박 검사가 오해하거나 거짓말을 한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다른 말씀 안 드려도 되겠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한 것이 확인되면서 기소청탁 사건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기소청탁은 팩트다"라고 말했다. 김 판사는 "박 검사에게 전화로 아내인 나 전 의원 측의 고발 경위를 설명하고 '누리꾼 김 씨가 허위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내리면 당장 고발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 기소청탁은 절대 없었다"고 밝혔다. 박 검사는 '빨리 기소해달라'는 청탁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006년 1월 출산휴가를 떠나며 후임 검사에게 김 판사가 청탁한 사건이라는 내용도 함께 전달했다고 한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은 박 검사와 이 사건을 기소했던 최영운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에게 10장 분량의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최 검사는 < 연합뉴스 > 와의 통화에서 "그 사건과 관련해 나경원 전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탁받았을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은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란 것은 바로 옆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 시사IN > 주진우 기자가 김 판사의 기소 청탁 의혹을 제기하자 나경원 후보 측은 주 기자를 허위사실 공표로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에 주 기자는 김 판사와 나 전 의원을 맞고소했다. 경찰은 김재호 판사를 3월15일 피고소인 신분으로 출석토록 요청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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