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곧 '대국민 전자발찌?'..실시간 위치추적 논란

박대로 2012. 3.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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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지난달 29일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을 허가한 통신비밀보호법이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이 제기된 가운데 수사기관의 실시간 위치추적 관행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문제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주인공은 한진중공업 파업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운동을 주도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지난해 12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나란히 기소된 이들은 수사과정에서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 방식의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확보한 수사기록과 통지서에 따르면 부산 영도경찰서는 4차 희망버스 직전인 지난해 8월24일 법원으로부터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허가서를 발부 받은 뒤 10월21일까지 송씨의 휴대전화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또 경찰이 3차 희망버스 직전인 지난해 7월22일 오후 4시부터 같은해 12월23일까지 실시간 위치추적을 계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치추적 사실을 알게 된 송씨와 정씨는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서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은 감청에 준하는 허가요건이 필요함에도 통신사실 확인자료 규정을 활용해 장래의 자료를 제공받는 것이므로 명백히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통신비밀보호법상 수사가 끝나고 나서야 당사자에게 통지를 하도록 규정돼 있으므로 당사자로선 수사단계에서는 위치추적 여부를 알 수 없다"며 "당사자는 뒤늦게 통지를 받더라도 어떤 이유로 자신의 위치가 추적당했는지 그 사유조차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이 경찰 수사 편의주의의 결과물이란 주장도 내놨다.

송씨와 정씨는 "경찰은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고 장기간 위치추적을 할 수 있다"며 "결국 위치추적은 압수수색과 실질적으로 동일한데도 법원의 영장 없이 형식적인 허가만으로 실행된다는 점에서 헌법의 영장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소원 대리인을 맡은 이유정 변호사는 "위치추적은 사생활의 비밀, 일반적 행동의 자유, 인격권 등을 침해하고 명확성의 원칙, 영장주의 원칙 등에도 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며 "현재로선 모든 범죄가 위치추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수사권이 남용될 여지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경찰은 실제 수사과정에서 위치추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통신사실확인자료(전화번호, 통화 일시·시간, 인터넷 접속기록, 인터넷 접속지, 발신기지국 위치추적자료) 제공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통신사실확인자료 건수는 12만4658건으로 전년동기(11만7941건)에 비해 5.7% 늘어났다.

기관별로 경찰은 7.0%, 군 수사기관은 13.1% 늘었다. 통신수단별 건수도 유선전화가 8.9%, 이동전화가 8.5% 증가했다.

이같은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선 수사기관은 '기본권 침해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원이 수사기관에 위치추적 허가를 내주는 경우는 '혐의가 농후하고 확실한 때'로 한정되고 있으며 위치추적 대상 역시 소수의 범죄자일 뿐 대다수의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일선 경찰들은 수사상 필요로 위치추적을 하더라도 30일 이후에는 이 사실을 사후 통지하고 있는 점, 만약 기본권이 침해됐다면 소송을 제기하면 되는 점 등을 들어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서울 모 경찰서 형사과장은 "공익 목적이라면 마땅히 위치추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실종아동을 수색할 때처럼 급하다면 반드시 위치추적을 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나아가 수사기관의 위치추적 권한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 일선 경찰관은 "(현행법상)자살을 시도한다는 신고나 행방불명됐다는 신고를 받아도 소방서를 통해서만 위치추적을 할 수 있게 돼있다"며 "지금은 실시간 위치추적 면에서 경찰과 검찰에게는 권한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소방당국도 경찰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한 소방관은 "소방서는 위치정보의보호및이용등에관한법률에 의거해 긴급구조 상황에는 사업자들로부터 위치정보를 확보할 수 있지만 경찰과 검찰은 실종아동등의보호및지원에관한법률에 따라 실종아동을 수색할 때에만 자체적으로 사업자에게 위치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계는 수사기관과 소방당국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이 한국사회를 '현대판 판옵티콘(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위치추적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급격히 늘어나는 현실을 떠올리게 됐다"며 "경찰이 신기술에 의존해 시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치추적과 CCTV 모두 전자감시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일종의 증거"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이 성범죄자 전자발찌 제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관계자는 "지금 같은 추세로 위치추적이 일상화된다면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모두 수사기관의 추적대상이 돼버릴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국민 모두가 전자발찌를 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휴대전화 위치추적은 경찰 내사 단계에서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며 "진짜 전자발찌도 선고 후에야 채운다는 점에서 향후 심각한 적법절차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형사소송법 전문가들 역시 실시간 위치추적은 사실상의 수색에 해당한다며 수사 편의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씨와 송씨의 헌법소원 결과를 기다리는 것보다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통과된 개인정보보호법과 일관성을 고려해 하루 빨리 법률 개정 작업에 착수해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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