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2012. 3. 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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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특집2] 결혼 여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30대 여성 비혼자에 대한 인식의 '구멍'… 폭력적이기까지 한 편견에 맞서 살아가는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이상의 여성'은 매우 예민한 소재다. 그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또한 가부장주의자와 여성주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다르다. '출산율 저하'와 '왜 결혼이라는 잣대로 인간을 구분하느냐'는 쟁점을 한켠으로 치워둔다면, 가장 첨예한 대립은 이들을 '미혼'(未婚)으로 지칭하느냐, '비혼'(非婚)으로 지칭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47.1%, 결혼 해도 안해도 그만

미혼은 '원래 해야 하는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쉽게 말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거나 '골칫거리 똥차'라는 인식이 반영된 단어다. 이에 반해 비혼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결혼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단계나 생애주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할 문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최근엔 미혼이라는 단어가 내포 ·유포하는 '정상가족 신화'에 저항한다는 의미가 더욱 강조되는 것 같다. 자신의 의지로 결혼을 거부한 이들이나 동거 커플, 법적으로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동성애자 등을 설명하는 데 적극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비혼이 삶의 다양한 형태 가운데 하나이며, 결혼 여부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거나 차별해선 안 된다는 건 대단히 상식적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구멍'이 있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30대 여성의 20.4%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다. 적지 않은 수치다. 주변의 이 많은 결혼 안 한 30대 여성들을 떠올려보자. 비혼이 자신의 결혼 거부 의지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이 역시 현실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단어로서는 부족하지 않은가? 통계청의 '2011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설문조사도 이런 의문을 뒷받침한다. 30대뿐만 아니라 20·40대 여성을 포함한 설문이지만, 응답의 경향성을 살펴보기엔 큰 무리가 없다. 조사에서 결혼에 부정적인 비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하지 말아야 한다)은 전체 응답자의 4.4%에 불과했다. '반드시 해야 한다'와 '하는 것이 좋다'는 답은 46.1%였고, 가장 많은 답은 47.1%를 차지한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였다. 이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결혼 여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비혼이 적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음의 30대 여성 세 사람은 이렇게 결혼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적극적 비혼'이 아니라, 결혼할 생각이 없진 않지만 결혼 안 한 '소극적 비혼'이다. 30대 비혼여성을 향한 여러 가지 사회적 편견은 당사자에게 매우 가혹한 것이다. 하지만 결혼할 의사가 있는 '소극적 비혼'에겐 더욱 보편적이고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들은 결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종의 결핍을 느끼는 상태다. 그런데 편견의 근거는 류경희·왕석순의 논문 '기혼자가 인식하는 30~40대 미혼 여성의 이미지'가 지적하는 것처럼 대부분 결혼한 이들의, 우월감과 부러움이 중첩된 인식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21 > 은 2월21~23일 이들을 만나, 비혼여성에게 가해지는 편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실제 삶과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결혼과 연애에 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당사자들이 모두 실명 공개를 원치 않아 각각의 사례에서 '나'로 표현했다.

'내가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의문도 들었다. 지금도 행복한데, 일에서도 더욱 인정받고 싶은데…. 하지만 제일 밑바탕에 깔린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골드미스'라 결혼 안 한다?

나(35)에겐 사귄 지 6년째 접어든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있다. 학생운동을 시작한 대학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녀석이다. 그를 사귀기 전인 20대 땐 적잖은 연애를 했다. 그땐 두근거림이 끝나면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안 맞아서' 헤어졌다. 서로에게 맞춰가기 위한 지루한 공방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오랜 관계를 통한 심리적 안정보단, 두근거림이 주는 삶의 활력소가 당시 내겐 더 중요했다. 서른이 되면서 "둘 다 대안이 없으니" 사귀기로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10년을 알고 지내 서로 잘 이해하고 편했기 때문이다. 설렘은 적었지만, 연애가 환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서로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동지애'도 소중했다.

그와의 관계에서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결혼'이 문제였다. 지난해 초, 그는 내게 결혼해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자고 했다. 거절했다. 여태 내가 쌓은 모든 경력을 접고 공부를 시작할 엄두가 안 났다. 생면부지의 땅에 이 남자 하나 믿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러 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내가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의문도 들었다. 지금도 행복한데, 일에서도 더욱 인정받고 싶은데…. 하지만 제일 밑바탕에 깔린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프로젝트 과제를 따내 제법 큰 돈을 벌 때도 있지만 고정적인 수입은 아니다. 나? 난 석사 학위를 갖고 있고, 10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골드미스'여서 경제력 없는 남자친구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골드미스가 되려면 30대 이상, 고학력뿐만 아니라 '연봉 4천만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작은 연구소에서 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하는 내가 한 달 동안 일하고 받는 돈은 150만원 정도다. 그동안 두 차례 옮긴 직장은 모두 지금 다니는 곳과 엇비슷한 대접을 해주는, 엇비슷한 규모의 연구소였다. 연구소를 옮길 때도 서너 달씩 일을 쉬었어야 할 정도로, '이 바닥'은 불안정하다.

경기도 고양시의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난 월세나 관리비 같은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는 이 월급으로도 한 달에 한 번은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보고, 좋아하는 책을 실컷 사서 읽고,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내킬 땐 여행도 갈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은 다른 문제다. 그나 나나, 대단한 '출발'을 위해서가 아니라,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인 거다. 둘 다 "목돈 마련할 기회는 결혼 축의금밖에 없으니, 우리 돈 필요할 때 결혼하자"는 시답잖은 얘길 주고받는 게 두 사람의 현실인 거다.

이 문제로 우린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이별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석 달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술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이벤트 따위 할 줄 모르는 녀석이 "오다 주웠다"며 작은 선물도 건넸다. 그렇게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는 "이 여자랑 살면 불행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난, 연애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구구절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다. 오래 쓴 지갑처럼 추억과 시간을 함께 쌓은 그를 사랑한다.

요즘은 "결혼식 때 난 튜브톱 드레스를 입을 거다. 넌 키높이 구두를 신어라" 이런 얘기도 하지만, 진지하진 않다. 여전히 그의 장래는 결정되지 않은 채 불안정하고, 나는 언제까지 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상황이 1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정된 수입원이 없다는 건 '이후'가 불안하다는 거고, 곧 결혼도 불안하다는 얘기다.

나는 그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를 원할 뿐이다. 그걸 '까다롭다'고 한다면, 조금 억울하다. 결혼 자체가 내 인생의 목표일 순 없기에 결혼하려 안달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죽어도 결혼은 안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다만, 결혼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눈이 높아서 결혼 안 한다?

난(35) 중소기업이지만 나름 탄탄한 회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부모님은 "웬만큼 적당하면 이제 좀 가라. 네 친구 ××는 둘째도 낳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난 "선 자리라도 좀 알아보든가"라고 눙치며 '부모님까지 너무한다'는 진심은 삼킨다. 30대에 접어든 동생들 역시 결혼하지 않은 걸 두고 친척들은 "언니가 눈이 높아서 그러고 있으니 동생들도 눈치 보느라 시집 못 가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게요"라고 답하고 '그게 내 책임이냐'고 속으로 되묻는다. 촌수 따지기도 힘든 먼 친척까지 "대체 어떤 남자를 고르는 거냐"고 팔을 걷어붙일 땐 기가 막혀 그저 웃고 만다. 회사 동료들은 "남자를 만나볼 생각이 있긴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사람들은 참 쉽게 말한다. "눈이 높으니까 결혼을 안 하는 거지"라고. 하지만 그들이 진짜 하려는 말은 "성격이 왜 그리 까다롭냐"는 힐난에 가깝다. 묻고 싶다. "그럼 결혼한 너희는 전부 눈이 낮은 거냐?"

'눈이 높다'는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반박하자면, 난 명문대 졸업장에 으리으리하고 번쩍한 배경을 가진, 키 크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완벽한 남자'를 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중 몇 가지라도 가진 어떤 남자들은 '내 것'이 아니라는 이질감만 들게 한다. 나는 그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를 원할 뿐이다. 그걸 '까다롭다'고 한다면, 조금 억울하다. 결혼 자체가 내 인생의 목표일 순 없기에 결혼하려 안달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죽어도 결혼은 안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다만, 결혼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 나는 졸업한 지 10년 된 선배들도 다 아는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깨지는 쪽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캠퍼스 커플이건만, 어쩌자고 그와 나는 그렇게도 굳건하게 비쳤을까. 그땐 그와 나도 그렇게 여겼다. '죽을 만큼 사랑한 적'이 딱 그때였다.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했고,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연애는 채 3년을 못 채우고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빼놓고는 나의 20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내 가치관에 부모님 다음으로 큰 영향을 준 사람이고, 다른 남자를 판단하는 기준점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다.

서른 무렵, 누군가를 잠깐 만나기도 했다. 감정의 종류는 이전과 달랐지만, 노력했다. 돌아온 건, 오랜 연인이 있던 학교 후배와 바람난 누군가의 이별 통보였다. 아무나 붙들고 하소연할 수 없었다. 점집을 헤매다녔다. 점쟁이는 내게 "사주에 남자가 없다"고 했다. 아, 그도, 누군가도, 내 잘못이 아니구나 위로받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눈 높은 노처녀'가 돼 있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내가 나간 각종 취미·스포츠 동호회나 학원 등엔 남자가 거의 없었다. 내 위로는 물론 아래로도 몇 년 동안이나. 초등학교에선 각 반마다 몇몇은 남자아이들끼리 짝지어 앉아야 할 정도로 '남초' 현상이 심했는데, 대체 그 많던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적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간혹 소개팅도 했지만 '호감의 작대기'는 어긋나거나, 상대도 나도 서로에게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할 상대를 찾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연애나 결혼을 하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고, 곧 행복을 담보할 거라는 환상 따위는 없다. 지금도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기절할 정도로 지쳐 퇴근한 내게 "애썼다"며 등을 토닥여줄 사람, 이 미친 세상에서 '무조건 내 편'이라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그래도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적잖은 연애를 했고, 잊지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헤어지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건 일이 우선이었거나,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서로를 원하고 좋아하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기적이어서 결혼 안 한다?

나(38)는 프리랜서 기자다. 이 분야에서 꽤 능력도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내 직업에 나이, 그리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버무려 "일이 먼저여서 결혼 안 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마흔을 눈앞에 둔 요즘은 "쟤를 어떡하냐"라든가, "아이를 낳을 거면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적지 않다. 심지어 "언제까지 피부가 좋을 것 같으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다. 제발, 신경 좀 꺼주면 좋겠다. 아이를 낳으려고,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이런 이야기 속엔 비혼 여성이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으며, 새로운 관계맺기를 회피하려 든다는 무의식적인, 또는 암묵적인 비난이 존재한다. 내겐 그런 얘기가 나 같은 비혼자를 억지로 트집 잡으려고 하는 말로 들린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내가 과거에 누구를 만났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말하면 알아들을지도 의문이다.

결혼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다. 좋은 친구가 될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면, 과연 남편의 가족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들과 또 다른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그동안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잖은 연애를 했고, 잊지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헤어지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건 일이 우선이었거나,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서로를 원하고 좋아하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결혼이 가져다줄 복잡함과 피해가 뭔지 겪어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2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며 수없이 풍파를 겪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안다. 또한 오빠 둘의 결혼으로 '외부인'에서 가족이 된 올케들의 모습과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사는 서울 은평구의 부모님 집에선 큰오빠 부부와 조카가 5년째 함께 산다. 시집의 '시옷'자도 듣기 싫다는 사람들이 볼 때 큰 올케는, 38살이나 된 시누이까지 '혹'으로 달린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작은오빠 부부와 조카 둘은 적어도 격주에 한 번은 주말에 우리 집에서 지낸다. 작은올케 사정도, 그 또래들과 비교하면 '악조건'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평가'가 모두 맞는 걸까. 우리 집은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로 가족끼리 친하다. 다정함은 큰올케가 우리 가족이 되면서 진해졌고, 작은올케가 들어오면서 더욱 심해졌다. 매년 여름휴가를 같이 가는 건 물론이고, 며느리들이 먼저 나서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겠다 하고, "아버님, 사랑해요"라고 전화를 한다. 26살에 결혼한 동갑내기 큰올케와 나는 친구처럼 지낸다. 퇴근해 뭔가 수다를 떨고 싶어 큰올케를 찾으면, 큰오빠가 "니 베프(절친한 친구) 잔다"고 할 정도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장벽을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자, 내가 부모님 다음으로 강력히 믿는 존재가 큰올케다.

그들을 보면, 결혼을 통해 인간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도 맞는 듯하다. 다른 어떤 사회적 관계도 줄 수 없는, 딱 결혼을 통해서만 가능한 성숙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이해하려 애써본들, 아내와 며느리 자리에 서보지 않은 나의 이해가 100% 옳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여전히 미성숙하고 이기적으로 시부모와 대치하거나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 인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다. 결혼 여부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편협한 인간관계 때문에 비혼은 이기적이라는 평가에도 동의할 수 없다. 올케들에게 시누이가 생긴 것처럼 내겐 올케들이 생겼고, 이렇게 생긴 새로운 가족과 다정하게 지내려 배려하고 노력하는 건 올케들도 나도 마찬가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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