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당해도..손님 떨어진다고 참으래요"

입력 2012. 2. 26. 17:21 수정 2012. 2. 2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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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동철 기자] [기사수정 : 26일 오후 9시 20분]

▲ 대담하고 있는 이건복씨와 이조순씨, 권오정씨

2월 22일 대학로에서 요양보호사 이건복씨, 간병인 이조순씨, 취업준비생 권오정씨가 50대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청년취업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이동철

통계청이 2월 15일 발표한 2012년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50~59세 여성노동자의 고용률 증감은 2.3%p로 다른 모든 연령층의 고용률 증감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고용율이 1993년 이후 최초로 전체 20대의 고용률을 넘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대의 실업율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5~29세의 실업률은 6.5%로 전체 실업률 3.5%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실업률은 구직의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된 지표라고 합니다. 구직을 단념하고 통계청 조사에 '쉬었음'이라고 답한 20대도 33만 명을 넘었다는군요.

일부에서는 50대 여성의 고용율 증가는 20대의 취업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취업난으로 자식들이 수입이 없기 때문에 이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일하는 50대 여성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통계청 조사에서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33만 명의 20대들에게 언론은 '무위도식'이란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심지어 어느 경제신문은 "삶의 의욕 없는 20대를 너무 감싸고 도는 부모들 때문에 청년실업자가 늘고 있다"는 진단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높아진 50대의 취업율에 비해 이들이 일하는 환경은 너무도 열악합니다.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에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이 대부분입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만 그 속에서 자기성취도 꿈꾸는 50대 여성들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습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 역시 현실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 2월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활동을 하고 있는 50대 여성과 20대의 취업준비생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50대 여성의 취업률 급증이라는 통계 이면의 노동현실과 구직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20대의 취업난은 50대 여성의 고용률 증가로

이건복(59)씨는 6년차의 베테랑 요양보호사입니다. 광진구의 '늘푸른 돌봄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2008년에 요양보호사 제도가 생겼을 때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씨는 "집안에서도 시어머니나 가족이 아플 때는 자신이 전담 간병사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간병인 이조순(54)씨는 젊어서부터 노인요양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IMF 때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꿈은 포기했지요.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2008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답니다.

노인요양병원에서 1년 정도 일을 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일이 너무 고됐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인의 소개로 국립대병원에서 간병사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일하는 여건이 낫겠지" 싶었답니다. 그러나 24시간으로 돌아가는 간병인 일은 가정을 버려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권오정(29)씨는 4년째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입니다. 4년 전에 서울 소재의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기간제 교사 일을 하며 임용고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기간제 교사 자리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학원강사 일을 하는데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3일 정도 강의를 해서 50만 원에서 많게는 80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오정씨는 올해로 4번째 임용고사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올해는 마냥 시험준비를 하기에는 부모님 눈치가 보입니다. 몇 군데 기간제 교사 모집에 원서를 넣었지만 아직 연락 오는 곳은 없습니다.

성희롱도 비일비재... "손님 떨어진다" 쉬쉬

▲ 이조순씨

간병인 이조순씨

ⓒ 이동철

- 간병사와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일하는 조건은 어떤가요?

이조순

"저는 큰 대학병원에서 간병사 일을 하고 있는데,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일주일에 6일을 온전히 병원에서 숙식하며 일하죠. 그렇게 일하고 24시간을 쉽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해야 해요. 주변에도 가장으로 일하는 간병사들이 많은데, 집을 계속 비우니까 아이들이 엇나가기도 해서 많이들 힘들어해요.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적은 보수도 불만입니다."

이건복

"가정에 방문해서 환자에 대해 모든 걸 돌봐줘야 해요. 환자에 따라서 영양식을 만들어줘야 하고 목욕시키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다 하는 거죠. 폐쇄된 공간에 환자와 요양보호사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성희롱 문제도 진짜 많아요. 우리 센터는 비영리센터라 다르지만, 근데 이걸 센터에 얘기하면 손님 떨어진다고 그냥 참으라고 해요."

이조순

"이렇게 큰 병원인데도 쉴 공간이나 밥을 먹을 공간도 부족해요. 보통 일주일치 먹을 음식을 가져와 병원에 보관하면서 틈틈이 밥을 먹어요 간호사 선생님들도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까 바쁜 일은 우리가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중환자 같은 경우 15분 마다 석션(수술 외적으로도 목에 낀 가래를 빼내주거나 음식물, 불순물을 빨아들여 빼내어 주기도 하는 의학용 기구)을 해야 하다 보니 잠시도 눈을 뗄 시간이 없어요. 보호자들도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간병할 때는 밥 먹을 시간은커녕 제대로 쉴 시간조차 없어요. 환자 보호자들이 면회 올 때 '잠깐 나가서 쉬었다가 오라'는 경우도 있는데 쉴 공간도 부족하죠. 서럽죠."

이건복

"근데 더 기가 막힌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서 일을 도와주다보니 이미지가 '식모'잖아요. 그러니 온갖 집안일을 다 시키는 거예요, 빨래, 청소, 설거지 이런 거는 양반이예요. 밥도 제대로 못 드시는 양반이 자식들 보내준다고 김치를 담그라는 거예요. 그런 집이 한두 집이 아녜요. 어떤 집은 농사일 시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김장철에 일하러 가기가 정말 싫어요."

천직이라고 생각했지만... "쓸모없는 자격증"

▲ 이건복씨

요양보호사 이건복씨

ⓒ 이동철

- 보통 50대 여성 노동자분들을 보면 음식점이나 가사 도우미 일을 많이 하시는데요 어떻게 이 분야로 오시게 된거죠?

이조순

"저는 원래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예요. 젊었을 때는 노인요양센터를 차리는게 꿈이었죠.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생기기 전에 노인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죠. 그런데 막상 이 일을 하다보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더라구요. 병원은 그냥 영리목적으로만 간병사를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과연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해요. 좀 질렸어요. 여기 간병하는 분들 중 30년 일한 사람도 있는데 정말 그런 분들은 존경스러워요."

이건복

"저도 이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을 잘 돌보고 그 일에 보람도 느끼고 했거든요. 그래서 간병 일을 하다가 요양보호사 제도가 생기자마자 이 일을 시작했죠. 우리 센터에서 일하는 120명의 요양보호사 중 60%가 자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대부분이 여성이고요.

이게 얼마나 웃기냐면요. 나라에서 '주부들이여 부업하라'라는 슬로건으로, 살림만 하다가 나이가 많아서 어디 가서 일할 곳 없는 주부들을 상대로 홍보를 했어요. 60만 원 정도를 내고 학원을 다니면 자격증이 나왔죠 그래서 요즘은 '한 집 걸러 요양보호사'라는 말도 있는데, 수요와 공급이 안 맞아요.

게다가 한 집당 하루에 4시간 이상 일을 못하는데 그래서 두 집을 다녀도 한 달에 100만 원이 안 돼요. 처음에 광고할 때 120만 원 정도가 보장된다고 했는데, 완전히 속았죠. 지금도 돈 들여 자격증 따놓고 써먹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보람도 느끼고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가사노동의 연장선이네요

권오정

"어머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어머니는 집안일만 하시다가 이마트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셨어요 지금은 평화시장에서 옷을 파는데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하루에 한 장 파는 일도 어려울 때가 있어요.

저희 아버지도 학교식당에서 급식관리 하세요. 어느 날은 제 핸드크림이랑 립글로즈가 사라진 거예요. 생전 화장품도 안 바르던 분이 물을 만지다보니 손이 터서 가져가신 거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어머님들도 만만치 않네요."

이력서 65개나 썼지만, 연락 오는 곳은 달랑 2곳

▲ 권오정씨

취업준비생 권오정씨

ⓒ 이동철

- 권오정씨는 취업준비가 잘 되시나요?

권오정

"저는 4년째 임용고사 준비를 하고 있어요. 학생들 가르치고 싶어서 사범대 들어간거니까 조금 늦어져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임용고사라는 게 시험을 보면 4~5%만 합격되고 95%는 불합격이거든요.

저희도 졸업을 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이 나오니까 기간제 교사 일은 할 수 있어요.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공부시간을 많이 빼앗기니까 걱정이죠,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니까 막막하죠."

이건복

"아니, 나머지 시험 떨어진 사람들은 어디로 가요? 너무 보기 안타깝다."

권오정

"여자들은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남자들은 학원강사 일을 하고요. 저도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것 보고 마음이 아파서 올해부터 일을 해보려고 이번달에만 이력서를 65개나 썼어요. 임용고사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방과후 학교에서 일을 했던 경력도 있어서 기대했는데, 달랑 2군데에서만 연락이 오더라고요. 어머니들도 '무늬만 자격증' 이야기 하셨는데, 제가 절실하게 느끼죠."

- 어머니 세대가 보는 청년 세대의 취업난은 어떠세요?

이건복

"사실 나는 10대 후반부터 바느질을 했어요. 그 시절에 노동권이 어디 있어요. 2일이고 3일이고 밤새워 일도 하고 뭐 복지라는 건 알지도 못했죠. 일자리가 있으면 무조건 일하고 훨씬 열악했죠. 아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런 데 가서 일하라 그러면 안 하죠. 요즘은 학력도 높고 아는 것도 많잖아요. 근데 60을 바라보는 지금 저한테 다시 그렇게 일하라면 못해요. 아들한테도 '노느니 뭐라도 해라' 이렇게 얘기할까 하다가 결국 못하죠. 내가 겪어봤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지."

이조순

"맞아요.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나같이 고생 안 시키려고 악착같이 애들 공부시켰죠. 그런데 공부한 만큼 실력을 써먹을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요. 제 조카도 취업 때문에 이력서를 싸들고 다니더라고요."

권오정

"평화시장의 옷먼지가 굉장히 심해요. 그래서 어머니는 '네가 일자리 구하면 관두겠다'고 말씀하세요. 부모님이 저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다른 일이라도 구해야 하나 생각할 때도 있죠. 욕심을 부려서라도 내가 꿈꾸는 길로 계속 가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건복

"20대와 30대의 차이가 현실에 타협할 것인가, 계속 나갈 것인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30대로 갈수록 점점 현실하고 타협하더라고요."

서먹하던 공간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정을 지닌 눈빛들로 가득 찼습니다. "타인을 돌보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그 마음을 유지하게 어렵다"는 어머니들의 일터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에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눈높이를 낮추고, 현실에 맞추라"는 대통령의 훈수보다 따뜻한 어머니들의 위로가 임용고사에서 4번을 낙방한 20대의 청년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만남을 주선해주신 최경숙 희망터(병원노동자지원센터) 소장님은 "돌봄 노동은 불안정한 노동의 가장 극한이다"라며 "요양보호사와 간병사의 99%가 여성이고, 저임금에 노동권을 전혀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50대 여성노동자들의 벌거벗은 노동현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남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어머니들의 착한 마음만 이용하는 저질의 자격증 제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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