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야, 나홀로족을 부탁해

2012. 2. 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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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TV +] 김성윤의 덕후감

<장화 신은 고양이>의 흥행과 서울 전셋값 폭등 사이에는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해보자.

빤한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의 관객몰이 비결은 다들 알다시피 캐릭터의 힘에 있다. 실제로 귀여워 못 견디게끔 할 만한 캐릭터 묘사가 애니메이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펍(pub)에서 남들 술 마실 때 주인공 푸스는 우유 한 잔을 시킨다. 그러곤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핥아 먹기까지 한다. '꺄아아~.' 밤 골목을 가는데 누군가 바닥에 레이저를 쏜다. 그러자 푸스가 본능적으로 바닥의 스포트라이트를 잡으려 발버둥친다. '꺄아아~.'

당신이 만약 이 고양이를 보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낀다면 당신에게도 '냥덕' 포텐이 있는 셈이다. 냥덕이란 '고양이+덕후'의 준말이다. 고양이 좋아 못 살겠는 사람을 이르는 말 되겠다.

귀여운 짓은 다 하면서도 때로 날카로운 발톱으로 주인을 할퀴고 새침하게 돌아서는 그 모습. 좋지 아니한가. 좋아 죽겠다면 냥덕 가능성 75%, 그냥 좋다면 50%쯤은 되겠다. '길냥이'(길거리 고양이)를 보고 한번쯤 나도 모르게 "야옹~" 해봤다면 냥덕 가능성 최소 25%쯤 되겠다. "미야오~" 해봤으면 50%, "웽~" 해봤으면 75%, "그르르르~" 해봤으면 100%다.

그렇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고양이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전래동화 같은 데서도 강아지는 우직하고 충성심 높은 동물로 묘사되는 데 반해, 고양이는 허영심 많은 나르시시스트로 나오곤 했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고양이 대학살' 사건도 있었을 정도란다. 디즈니 캐릭터에 쥐와 개는 있을지언정 고양이는 없고, <톰과 제리>에서도 언제나 갑은 제리였다.

반면 (수백만 애견인들로선 수긍하기 어렵겠지만) 대도시 라이프스타일에선 고양이가 더 선호되는 추세다. 가족 형태가 핵가족을 지나 심지어는 1인 가족으로까지 다양화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단 외롭지 않겠는가. 사람 말이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노동환경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는데, 결국 혼자라면….

갈수록 고독한 상황에 처하는 인간에겐 따뜻한 사회적 관계와 서로를 보듬는 친밀성이 점점 중요해진다. 그런데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라는 게 역설적으로 굉장한 감정노동과 기회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반려동물과의 동거는 굉장히 사회적인 현상인 셈이다.

여기서 고양이의 매력은 (종종 강아지와의 비교우위 속에서) 한층 돋보인다. 강아지는 지저분, 고양이는 깔끔하다. 강아지가 외로움 타고 주인에게 치근대는 데 반해, 고양이는 적당히 혼자 놀 줄 알고 어딘가 대놓고 시크한 매력까지 있다. 그 녀석 얄밉지 않은가. 그럴수록 사람은 더 끌리는 법이다. '앗, 저 녀석 뭐지?'

그래서 <장화 신은 고양이>와 전셋값 상승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도시 서울의 주택 물량이 많아도 전셋값이 폭등한 배경에는 1인 가족들이 있지 않았던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주택 물량은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다른 한편 친밀한 관계도 부족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냥덕 감수성과 전셋값 상승은 하나의 몸통을 지닌 두 가지 얼굴인 셈이다.

여기서 고양이와의 동거는 매우 합리적이고도 현명한 선택지가 된다. 함께 '그르르르' 하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따로 가질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묘'한 현실이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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