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인 오늘도 나는 동물원으로 출근합니다"

조혜령 2012. 1. 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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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직접 먹이 주다 물리기도.. 일할 수 있는 동물원 더 필요

[CBS 조혜령 기자]

솔로몬 왕은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연히 얻은 마법 반지 덕분이었다. 그는 반지를 통해 얻은 수많은 정보로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노벨 생리학상과 의학상을 수상한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솔로몬의 반지를 비웃었다. 수십년 동안 동물을 연구한 그는 반지가 없어도 '교감'을 통해 동물과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여기 솔로몬의 반지에 버금가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사육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 면면은 솔로몬의 반지처럼 반짝이거나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서 있다.

경기도의 한 동물원에서 1년째 사육사로 일하고 있는 26살이 김지영(가명.여)씨의 하루도 수달 사육장의 똥을 치우고 먹이통을 채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꺼운 동물원 점퍼와 무릎 밑까지 오는 장화로 갈아신은 김 씨는 자신이 돌보는 수달과 물개, 바다사자를 둘러본 뒤 오전 10시 동물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주 먹이는 청어와 고등어.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 먹이통에 담는다.

한 박스에 80여마리 들어있는 생선을 하루 3~4박스 사용한다. 하루 평균 300여마리의 생선을 다듬는 셈이다.

한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생선을 다듬고 나니 허리는 아파오고, 면장갑 위로 생선 비린내가 올라왔다.

순서대로 먹이를 배분한 뒤, 빈 통을 흔들며 사무실로 들어오던 김 씨가 갑자기 몸 냄새를 맡으며 킁킁댔다.

"몸에 생선 냄새가 밴 것 같은데 저는 못 느끼겠어요. 남들은 비린내 난다고 코를 틀어막거든요.(웃음)"

아무리 손을 자주 씻어도 비릿한 생선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칼로 생선을 토막내다보니 엄지와 검지에는 항상 생선 기름이 끼어 있다. 샤워를 하고 향수까지 뿌려도 친구들이 비린내가 난다고 할 때는 무안할 때도 있다. 먹이를 챙겨주니 청소 시간이 돌아왔다. 단 1분도 엉덩이를 붙일 시간이 없었다.

김 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29살의 사육사 박선호(가명,남)씨도 사육사 일을 시작하면서 몸무게가 7kg 빠졌다.

"지금은 살이 안빠지는데 첫 달 한 달만에 3kg이 빠졌어요. 매일 집에 가면 쓰러져 자기 바빴죠. 걸어다니는 게 많으니까요. 힘 쓰는 일도 대부분이고." 7마리 물개와 5마리의 물범, 바다사자의 먹이를 챙겨주고 사육장을 청소하다 보면 사육사지만 동물을 만질 틈도 없다. 박 씨는 "먹이 주고 아플때나 치료하려고 만진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절날 휴식도 이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명절엔 특히 관람객이 많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육사 김 씨도 이번 명절은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평일에 쉬죠. 주말에는 돌아가면서 한 번씩 쉬어요. 휴일에 관람객이 몰리니까요."

▣동물 직접 먹이 주다 물리기도… 상처투성이 사육사 손▣

"점심 시간이 아니라 일 하다 중간에 짬 내서 밥 먹는 수준"으로 밥을 먹은 사육사들은 바로 관람객이 동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쇼타임에 나섰다.

쇼타임 도중, 김 씨의 팔에 앉아 관람객과 사진을 찍던 앵무새가 갑자기 아래로 뛰어내렸다. 김 씨는 앵무새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를 닦고 끝까지 쇼를 선보인 김 씨는 이런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손은 여기저기 물리고 뜯긴 상처로 거칠었다.

며칠 전에는 수달에게 엄지손가락을 물려 항생제까지 처방받았지만 아직까지 아물지 않았다.

"제 손은 다 상처에요. 제가 관리를 잘 못해서... 그래도 동물들이 절 알아보고 따를 땐 정말 보람을 느껴요."

피가 난 손으로 김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육장으로 들어가 오후에 쓸 생선을 다듬었다.

사육사 박 씨는 "자칫 긴장의 끈을 놓치면 부상을 입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직접 동물과 마주하는 사육사들이 더 다치고 위험할 수 있어요. 사자의 경우는 위험한 줄 아니까 처음부터 조심하는데 작은 동물들은 마음 편히 있다가 공격을 해버리면 그냥 당하거든요. 어떤 사육사는 동물한테 물려서 신경이 눌린 탓에 며칠 감각이 없어지기도 했어요."

며칠 전 숨진 에버랜드 사육사 25살 김모양도 긁히고 베인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감기 증상으로 지난해 12월 병원을 찾은 뒤 올해 1월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지방의 한 사육사는 "많은 수의 사육사들이 연봉 2천 미만의 박봉에 공사판보다 더 힘든 노동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 "전국의 사육사 고작 100여명… 일할 수 있는 동물원 더 많이 필요"▣

전국의 사육사 수는 모두 100여명.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하면 약 200여명이 사육사로 일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희귀 직종"이다.

사육사 수가 적은 이유로 업계 관계자들은 "외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적은 동물원 수"를 이유로 들었다.

경력 28년의 서울대공원 한효동 사육사(58)는 "2천여개의 동물원이 있는 일본 등 외국과 비교했을 때 동물원이 10개 안팎인 우리나라는 수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워낙 일할 곳이 많지 않아요. 그렇다보니 사육사들은 이직을 하기도 힘듭니다. 근무 환경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사육사별로 격차가 심하죠."

동물원의 적자 운영도 사육사들의 근로 환경을 열악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기도의 한 동물원은 해당 지자체에 동물원이 아닌 '박물관'으로 등록돼 있다. 관련법이 없어 신고 항목에 동물원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동물원과 수족관 진흥법'이 추진중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동물원 관계자는 "민간 동물원은 정부가 지원하는 동물원의 입장료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민간 동물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동물원을 민영화하거나 입장료를 현실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tooderigir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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