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종철 25기 추도식..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진달래 기자 2012. 1. 14. 20: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진달래기자]

ⓒⓒ(서울=뉴스1) 한재호 기자 = 14일 오후 서울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 마당에서 열린 '고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이 높은 담장 철조망 사이로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은 25년이 지난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시민들 곁에 머물러 있었다.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고(故) 박종철 열사의 25주기 추도식이 열린 14일 서울 남영동 경찰청인권보호센터 마당은 박 열사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간 구(舊) 치안본부 대공분실이다.

추도식을 위해 준비된 의자 200석은 박 열사를 기억하고 있는 시민들로 추도식 전부터 만석이었다.

이날 오후 2시15분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추도식에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보고 박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79)와 명진스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 회원 등 약350명이 참석했다.

박 열사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진행된 이날 추도식에는 당시 서울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을 지낸 안유씨(69)가 참석해 사건 전모를 설명하기도 했다.

안씨는 "당시 박 열사의 죽음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며 "이를 축소 은폐하기 위한 회유와 협박이 많았다"고 털어놓으며 "이런 문제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유가협 회장은 "죽어야 했는데 또 못 죽고 이 자리에 섰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배 회장과 함께 있던 박 열사의 형 박종부씨도 고개를 숙인 채 25년이 지나도록 그 날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명진스님은 "25년이 지난 지금 박 열사가 이뤄낸 민주화가 이렇게 무너질 때까지 무엇을 했나 반성하며 왔다"면서 "최근 SNS 활성화를 통해 민주화나 정치권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추도식은 박 열사의 후배인 서울대 재학생 30여명 등이 함께 평소 박 열사가 가장 좋아했던 "그 날이 오면"을 열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추도식 참가자들은 박 열사가 고문당한 장소로 알려진 센터건물 509호로 이동해서 헌화를 하며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긴급 추천 스마트정보!]

[내손안의 스마트한 경제정보 머니투데이 모바일]

▶상위 0.1% 주식 투자기법! '오늘의 추천주'

▶오늘의 증권정보 '상승포착! 특징주!'

머니투데이 진달래기자 aza@

<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