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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수자다" 병역거부자 "국가의 부속품 아니다"

백철 주간경향 기자 입력 2012.01.14. 17:56 수정 2012.01.14. 18:0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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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기획시리즈 '나는 소수자다'를 연재합니다. '사회적 표준'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1회에서는 평화주의 병역거부자들을 만났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다." 2011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대 자퇴'의 주인공 공현씨(24·본명 유윤종)는 군대와 병역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있었다. 원래 이날은 공현씨의 입대 예정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입영부대로 가지 않았다. '병역거부 소견서' 작성을 마친 공현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일원이 됐다.

공현씨가 병역거부를 하게 된 밑바탕에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모두가 같은 옷을 강제로 입고, 같은 머리 모양을 강요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가졌다. 고3이던 2006년부터 청소년 인권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현씨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정록씨의 병역거부 소견서를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저는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들의 몸과 마음에 군대의 폭력과 문화가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의 폭력 때문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보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오정록 병역거부 소견서의 일부)

2004년 7월 15일 대법원에 출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유죄판결이 내려지기 전 대법관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성일 기자

평화주의 병역거부자 53명

공현씨와 오정록씨처럼 평화주의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가 시작된 지 10년 이상이 지났다. 첫 사례는 2001년 12월 17일 입영열차 탑승을 거부한 오태양씨(현 평화재단 교육국장)다. 당시 오씨는 국가인권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 때문에 인권이 침해당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오씨는 서울교대 3학년이던 1997년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 앞에는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졌다. 자연스레 생명을 중시하는 불교신자가 됐다. 오씨는 2002년 3월 작성한 병역거부 소견서에서 "군사훈련이 직접적인 살상행위는 아니지만 살심(殺心)을 유발하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낡은 역사적 명제 앞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새로운 관점과 접근이다"라고 밝혔다.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 평화주의 병역거부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총 53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후원모임인 전쟁없는세상의 여옥 활동가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우리측과 별다른 연락 없이 개인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의석씨만 해도 우리와 별개로 병역거부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G20 회원국 중 병역거부자 징역형 유일

병역거부자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닌 '다른' 방식의 복무다. 대다수의 병역거부자들이 거부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집총(執銃)과 전투훈련이다. 이들은 현역병보다 긴 복무기간 등 사회적으로 합의가 가능한 수준에서의 대체복무제를 요구하고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 처벌을 합헌으로 판시하면서도 대체복무제 입법 검토를 권고했다. 2005년 12월 국가인권위는 국방부에 대체복무제 입법을 권고했고, 마침내 2007년 9월 국방부는 "이르면 2009년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대체복무제는 백지화됐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했지만 대체복무제는 예외였다. 2010년과 2011년 유엔은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에 따른 징역형은 국제 인권규약 위반"이라고 통보했다. G20 회원국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징역을 사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2차대전 이후부터 광범위하게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정서상 입영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등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새해 들어 병무청이 발표한 대체복무 허용 여론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높았던 점도 대체복무제 도입 반대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공현씨는 현역병의 처우개선이 진행되면 대체복무제에 대한 찬성 의견도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그는 "현역병의 처우가 심각하게 열악한 상황에서 평화주의 병역거부는 군필자들의 고생과 희생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현역병들의 희생에 국가가 제대로 보상해준다면, 대체복무제에 대한 우호적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현씨의 마음 상태는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성적 소수자와 비슷해 보였다. "이르면 2월 말께 구속될 것 같다"던 그는 "설날이 머지않았지만 아직 친척들에게 병역거부 이야기는 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념에 당당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냈을 때 직면하는 편견과 비난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공현씨는 "가끔 꿈에 병역거부를 했다는 이유로 주변의 멸시와 비난을 받는 장면이나 감옥에 갇혀 있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병역거부 이유로 감옥생활한 김영익씨 인터뷰

반전운동 활동가인 김영익씨(30)는 지난 2008년 전쟁 반대와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했다가 1년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김씨는 감옥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병역거부 운동은 나 자신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군대문제로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병역거부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2001년에 대학생이 된 이후 군대에 대한 반대와 전쟁 반대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이후인 2003년부터 병역거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개인에게 있어 병역거부로 인해 짊어질 사회적 편견과 전과 기록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반전운동을 몇 년간 해온 나도 주위사람에게 내 신념을 알리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2007년이 되어서야 겨우 가까운 한두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신념을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2008년을 뒤흔들었던 촛불운동을 본 뒤 자신감을 얻어 내 생각을 알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베트남 전쟁 이후 거대한 사회운동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생겨났고 결국 징병제가 폐지되기에 이르지 않았나."

-사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나.

"자신의 신념을 법적으로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검열이다. 검사는 내게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판사는 '군대 가겠다는 말만 하면 집행유예를 선고해주겠다'고 유도했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이런 행동을 사상전향 시도로 받아들인다."

-감옥에서의 삶은 어땠나

"무엇보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돼 있다는 점이 견디기 어려웠다. 군대처럼 휴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면회 시간도 10분 정도밖에 안 된다. 교도소에선 24시간 불을 켜놓고 지내는데, 출소 이후에도 몇 달간 불 끄고 자는 것이 적응이 안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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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철 주간경향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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