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도 '피해자'..학생들에 폭언 들어도 속수무책

2012. 1. 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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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학교폭력 침묵의 카르텔 깨자 흔들리는 교권

교권침해 9년간 2.5배↑

혼내면 되레 삿대질하고

어깨 손올리며 성희롱도

"수치심에 피해 덮지말고

용기있게 해결 노력해야"

"씨×년, 꺼져."

민호(가명·12·초6)는 안하무인이었다. 상담실에 와서는 욕설을 내뱉으며 의자를 집어던졌다. 담임인 ㅅ(33·여) 교사는 민호를 통제할 수 없었다. 민호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사과를 했지만, 민호는 잘못을 인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반 친구들이 괜찮겠냐고 물으니 민호는 "교도소 가지 뭐, 하하"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민호는 평소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혀 '문제아'로 꼽혔다. 참다못한 ㅅ 교사는 민호를 불러 차분히 얘기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민호는 "선생님도 싫다"며 끝내 ㅅ 교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3일간 근신 조처를 당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호는 몇 달 후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갔다. 지난해 겪었던 일이지만 ㅅ 교사는 "지금도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교사들을 향한 학생들의 욕설·반항·폭행이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혼을 내는 교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반항하는 학생, 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추행을 하는 학생, 벌을 세워도 춤을 추면서 장난을 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김아무개(28)씨도 "복도에 나가 벌을 세우면 사라져버리고, 반성문을 쓰라고 해도 버티는 일을 종종 겪는다"며 "50대 남자 선생님한테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놓고 욕설을 한다"고 말했다.

김이경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팀이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교원사기 진작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땅에 떨어진 교사들의 처지가 잘 드러난다. 연구팀이 초중고 교사 784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학생이 교사를 폭행·폭언하는 등 교사 공격사례가 증가한다'는 항목에서 평균 3.43점(5점 만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생각한다'는 항목에선 2.33점으로 낮게 나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2010년도 교직상담 결과'를 보면, 교권침해 사례는 260건으로, 2001년 104건에 비해 9년간 2.5배로 늘었다. 260건 중 학생지도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당행위로 인한 침해 등이 98건(37.7%)으로 가장 많았다.

교사들은 학생 한 명이 돌출된 행동을 할 때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로 번지고 곧 교실 붕괴로 이어진다고 한다. 중학교 교사인 나아무개(36)씨는 "고학년이 되면 친구들 사이에 영향력을 갖는 게 중요해지기 때문에 교사한테 반항하는 행위로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며 "교사가 학생한테 언어폭력 등을 당했을 때 수치심에 문제를 덮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용기있게 그런 일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유 경기대 교수(교직학과)는 "우리나라 교사 양성과정에는 학교폭력 관련 커리큘럼이 거의 없다"며 "학생들이 교사가 되기 전부터 미리 학교폭력에 대처하고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ㅅ 교사는 이번 학기에서 민호와 똑같은 아이를 만났다. 일년 전 경험을 되살려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ㅅ 교사는 "당시에는 아이의 행동만 보고 아이를 이기려고 하다 보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학급 분위기, 집안 사정 등 전체 상황을 고려해 보니 그 아이가 왜 그런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 아이는 가정에서 늘 맞고 욕을 들으며 커왔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 친구들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게 ㅅ 교사의 결론이다. ㅅ 교사는 일단 안 좋은 행동은 눈감고 좋은 행동에는 칭찬을 보냈다. 그랬더니 아이도 바뀌기 시작했다. ㅅ 교사는 "교사가 변하면 아이들도 변하는구나 하고 느꼈다"며 "선생님들도 학교폭력 대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쉬쉬'하고 마는 폭력대책자치위전문가 없이 교사·학부모끼리 처리…결과도 비밀 부쳐

학교폭력 사건 해결에 대해 유일한 권한을 갖고 있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마저도 비전문가들의 부실한 운영으로 피해학생과 학부모를 두번 울리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자치위원으로 전문성을 지닌 판사·검사·변호사 등의 법조인, 의사, 경찰관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 이들이 위원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순갑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은 "여비나 실비 지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품을 들여 참석할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치위는 대개 교장과 교감, 생활지도 담당 교사 등 학교의 교사들과 학부모들로 구성돼 학교의 급식위원회나 징계위원회 등 여느 위원회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된다. 지난해 자치위에 학부모 위원으로 참여했던 ㅂ씨는 "학부모들은 처벌이나 법의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교장과 생활지도 담당 교사가 이야기를 주도한다"며 "결국 학교 문제가 소문나서 좋을 것 없으니까 빨리 마무리하자는 분위기가 된다"고 말했다. 자치위가 학급교체(0.7%), 출석정지(7.1%), 전학(5.85%) 등의 처분보다 교내봉사(36.9%)와 같은 손쉬운 처분을 내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국회 입법조사처, '2010 자치위 가해 학생 처리 현황')

대다수 교장들이 법률이 정한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을 들어 자치위의 처분 결과를 공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문제다. 박종효 건국대 교수(교직학과)는 "사건의 처리 결과를 공개하면 학생들이 이를 의식해 학교폭력 발생을 억제하거나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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