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장 성추행에 무너진 女 소방관

맹대환 2012. 1.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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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맹대환 기자 = 인명구조라는 고귀한 업무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소방직에 몸담았던 30대 여성 구급대원이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고 결국 퇴직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5일 전남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소방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던 이모(30·여) 소방사가 지난달 말 1년여 동안 몸담았던 소방직을 떠났다.

지난 2010년 11월 전남도소방본부 영광소방서 홍농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소방직에 첫 발을 내딛은 이 전 소방사는 지난 1년여 동안의 소방관 생활이 몸서리치도록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 신속히 출동해 인명을 구조한다는 고귀한 업무에 매료돼 간호직을 포기하고 소방직에 몸담았다.

하지만 소방관 생활이 두 달 남짓 지나면서 그동안 품어왔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 무너져 내렸다.

지난해 1월 말 센터장의 권유로 소방서장과의 술자리에 참석한 것이 화근이 됐다. 소방서장이 강권하는 폭탄주를 사양하자 성추행 발언이 시작된 것이다.

"니가 못 마시면 어쩔 건데, 내 말 안 들으면 (다른 근무지로) 보내 버린다", "니가 이쁜 줄 아냐. 여자가 가슴도 없는게" 등 감당하기 힘든 수치심이 밀려왔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첫 술자리 이후 소방서장이 휴대전화로 술자리에 나올 것을 수 차례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자 명령 불복종이라며 "사표를 가지고 오라"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 함께 근무하던 센터장도 "부하 직원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우리가 너네 집으로 쳐들어갈까?"라며 술자리 참석을 강요했다.

결국 그녀는 두 달여 뒤 원치 않았던 다른 지역으로 전보됐다. 보복성 인사임에도 소방서장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추스리려 했지만 정신적 고통은 이 곳에서도 이어졌다.

전임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을 트집잡은 주위 동료들이 음해와 집단 따돌림을 한 것이다. "내 잘못도 있겠지. 언젠가는 진실을 알겠지"하며 그녀는 애써 적응하려 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감추고 8월부터 두 달간 교육을 다녀온 후로도 주위의 시선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언론에 도움을 요청한 후 주위의 시선은 오히려 더욱 차갑게 변했다.

"돈을 타내기 위해 언론에 제보했다"는 등 악의적인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던 것이다. 다잡고 있던 마음이 무너지면서 그녀의 정신도 황폐해졌다. 이 때부터 여럿이 모여 있는 장소를 기피하는 대인기피증까지 나타났다.

"직장에 복귀하기 힘들겠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 내려졌고 결국 그녀는 소중했던 소방관의 꿈을 접었다.

이씨는 "조직을 위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폄훼하는 소방조직에 이제는 미련이 없다"며 "소방조직이 사회적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내부의 변화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를 성추행했던 A소방서장은 지난해 11월 해임됐으며 술자리를 강요했던 센터장은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mdhnew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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