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 잡힌 청춘.. 결혼도 출산도 사치

홍제표 2012. 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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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2030의 좌절과 희망①] 글록벌 위기 극복했다던 한국경제, '88만원 세대' 양산

[CBS 홍제표 · 이대희 기자]

만성화된 청년실업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짓누르는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지금의 20,30대는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한다. 평생 열심히 일해도 윗 세대들이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분노와 절망은 급기야 결혼과 출산 포기로 이어져 사회의 영속성마저 위협하고 있다.2030세대는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서 집단적 의사를 표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청년세대들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깨우치고 조직화하며 활로를 찾아나선 것이다. '정치의 해' 2012년을 맞아 어느 때보다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30세대의 문제를 2일~5일 4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저당 잡힌 청춘…결혼도 출산도 사치

2. 미래 없는 미래 세대…분노 폭발3. 세대 갈등에 사회통합 멍든다4. 쫄지마 2030! 정치세력화 꿈틀

◈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청년 백수의 절규

의상 디자인, 벽지 디자인, 속옷 디자인, 백화점 계산원, 결국 술집 종업원까지. 정수영(가명, 여·24) 씨가 대학 졸업 뒤 4년간 전전한 직업이다.

닥치는 대로 일하며 몇 번이나 새 일자리를 찾았지만 정 씨에게 남은 건 학자금 대출로 진 1200만원의 빚과 '청년백수'라는 꼬리표였다.

정 씨에게도 꿈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4년제 대학에 들어가 경영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고 번듯하게 사회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억대 빚이 있는 부모님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었다"는 조 씨는 하루라도 빨리 취업전선에 나서기 위해 전문대를 택했다.

통학에만 왕복 6시간이 걸렸지만 돈 때문에 자취는 꿈도 못 꿨고 주말과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로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독하게 공부한 덕에 의류업체에 어렵사리 취직했지만 월급은 고작 80만원이었다. 그나마 따로 나오는 밥값도 없이 매일같은 야근에 시달리다 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이대로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자 이 일 저 일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봤지만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 힘들었다. 술집 종업원 모집광고에 시선이 꽂힌 것도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손님이 하는 얘기 맞장구 쳐주며 술 따라주는 일이었는데 매출을 강요당해 억지로 술을 마셔야 했어요."

그는 "몸이 축나 그만 둘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월급은 결국 떼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부모님 노후자금까지 바닥내…갈수록 쪼그라드는 청춘

대학생 조 모(22·여) 씨도 돈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치위생학과에 진학했는데 1년 학비만 1000만원에 달했다.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과 결혼자금 목적으로 10년 전부터 적금을 들었는데 5학기 만에 바닥이 났다"며 "이제는 부모님 노후자금까지 다 써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딸 하나를 위해 집안 전체가 '올인'하다시피 했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는 "모두 사활을 걸고 공부를 하니 지각 한 번 하는 것만으로도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취업에 영향을 받는다"고 살벌한 취업 경쟁 분위기를 전했다.

◈ "출산?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

이렇게 청춘을 저당 잡힌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생각만으로도 사치였다. 정 씨는 "요즘은 소개팅을 해도 돈 있는 여자를 원하더라"면서 "결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출산까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능력도 없이 애 낳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조 씨도 "이미 출산한 친구가 말하길 아이 하나에 한 달에만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며 "결혼이고 출산이고 하고 싶지만 수도권에 집을 장만하고 양육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나라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극복하며 성장을 거듭하는데도 청년들의 삶은 왜 이리 팍팍한가?

'진보세대가 지배한다'의 저자 유창오(새시대전략연구소장) 씨는 신자유주의를 근본 원인으로 지적하며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빼앗기는 어렵기 때문에 신규 진입 세대에게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청년세대에게 전가되면서 세대 문제가 '계급적' 성격을 띨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더 큰 좌절감을 맛보게 한다.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빈털털이 세대'(원제 Strapped)는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한국의 현 실태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1000유로 세대'나 일본의 '비참 세대' 같은 세태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보다 앞서 청년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선진국들이 여전히 미로속을 헤매고 있음을 감안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야할 길은 더 멀 수밖에 없는 것이다.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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