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45) 포스터와 편승·스놉 효과
과거의 예술행위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공급되어, 소수의 사람들에게 수요되는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도서나 음악 역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연주되어, 공연장에 참석한 일부 사람들에게만 향유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서는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되었다. 음악 역시 건축술의 발달로 인해서 거대한 공연장이 구축되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에는 축음기 등의 음원 저장 기술이 등장하여 대량 생산 대량 소비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 문화 콘텐츠의 대중화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예술 장르들은 이전과 달리 생산에 있어서 집단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들이었다. 영화나 텔레비전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매체를 통한 예술 활동들은 개인에 의해서 생산된 작품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생산된 문화 콘텐츠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참여하다 보니,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도 자연히 비용이 증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생산과정에 투여한 비용을 회수하는 데 있어서도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적게는 수억원부터 수천억원을 사용해서 콘텐츠를 제작해 놓고 비용 회수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생산되는 많은 문화 콘텐츠의 경우에는 해당 문화 콘텐츠가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를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예술품에 대한 홍보는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

음반과 도서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콘텐츠가 제작되어 공급된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대중에게 노출하는 데 있어서도,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용이하다. 영화나 TV 프로그램은 영화관과 TV 채널이라는 한정된 통로를 통해서 콘텐츠를 알리게 된다는 특성으로 인해서 주어진 기간에 한정된 방식으로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음반의 경우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음반을 출시했다고 해서 자신의 음반이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경로가 차단되지는 않는다. 도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공급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히 개별 콘텐츠의 노출 정도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요자들로부터의 반응이 일어나기도 전에 새로운 콘텐츠들에 의해 묻혀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결국 과거의 문화 예술인들 역시 과거와 같이 앉아서 수요자들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등장한 것이 포스터이다.

‘포스터’(poster)라는 단어가 ‘기둥’(post)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기둥에 붙이는 홍보성 게시물이라는 의미이다. 포스터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거리, 기둥, 벽 등에 붙여지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유도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집단적인 예술행위로 인해 탄생되는 문화 콘텐츠들은 반드시 포스터가 수단이 된다. 대표적인 집단 예술작품인 영화의 경우 뤼미에르가 처음으로 시네마토그래프로 대중 상영을 했을 때부터 포스터가 함께 제작되었다. 에디슨이 만든 키네토스코프는 대중 상영이 아닌, 한 명이 하나의 기계에 대고 관람하는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포스터를 통해서 이를 대중에게 알렸다고 한다.

* 포스터가 노리는 효과

포스터의 목적은 수요자들로부터 편승효과가 유발되는 데 있다. 편승효과는 밴드왜건효과라고도 불리는데,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재화를 나도 덩달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청바지가 유행한다고 해서 나도 하나 구입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것은 밴드왜건효과를 몸소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영화 포스터 등을 제작하는 것은 직접적인 홍보 효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오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도 봤는데, 나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심리가 형성되길 기대하는 데 있다.

반대로 스놉효과를 유발하기 위해 포스터가 제작되기도 한다. 스놉(snob)효과는 밴드왜건효과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낸다. 많이 팔리는 제품에 대해 오히려 소비량을 줄이는 현상을 말한다. 앞에서 제시한 사례처럼 다른 사람들이 너도 나도 구입해 너무 흔해 보여서 정작 사고 싶었던 옷이지만 구매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스놉효과에 해당한다.

대중적인 호응도가 떨어질 수 있는 작가주의 영화라든가, 제3세계 영화의 포스터들은, 스놉효과를 유발하여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영화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소수만을 위한 영화라든가, 기존 영화에 식상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 오피니언 리더들이 봐야 할 영화 등의 컨셉트로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오히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영화, 즉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점을 알리고 이 과정에서 스놉효과가 유발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포스터 자체도 예술품이 되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영화 포스터가 주인공들의 얼굴이나 영화 장면의 사진을 사용해서 제작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 포스터 자체도 예술품

하지만 1990년 이전엔 다양한 스케치와 이미지를 사용해서 포스터가 제작되었다. 영화 속 장면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에 맞게 새롭게 해석된 사진이 사용되는 것이다. 즉 디자인 개념과 예술적 기법이 다양하게 담겨 있는 포스터들이었다. 작년에는 화가 몽테규 블랙이 그린 비운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출항 전 홍보 포스터가 우리 돈으로 1억2000만원에 경매된 바 있다.

이처럼 초창기 포스터에는 다분히 디자인적인 요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자체로 예술품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라 해도 프랑스에서 개봉될 때는 문화 예술의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보면 최근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영화 포스터가 고액에 거래되는 사실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용어 풀이

편승효과

밴드왜건 효과라고도 불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재화를 나도 덩달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스놉(snob) 효과

밴드왜건 효과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낸다. 많이 팔리는 제품에 대해 오히려 소비량을 줄이는 현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