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가라오케 농민운동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2011. 12. 7. 15: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 [특집| 한·미 FTA] "김대중 정부때 관계장관 반대로 한·미 BIT 폐기"

"나도 정부에 있어봐서 알지만…."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웃지도 않고 말했다. 늘 유머를 잃지 않는 그는 이번 인터뷰 중에도 간간이 촌철살인의 풍자와 반어법으로 속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돌지 않았다. 게다가 깊은 한숨까지 내쉬었다.

농훈(農薰). 농업·농촌·농민의 향내를 뜻하는 그의 아호다. 1958년 서울대 농대 재학 시절 그가 만든 한얼 모임에서 불러준 이 아호를 그는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농사꾼, 농학도, 농경제학자, 농정 수장, 그리고 지금도 중앙대 명예교수로서 농학을 가르치고 이른바 '가라오케 농민운동가'로서 전국의 농촌을 누비고 다니는 그의 이력과 활동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가 웃을 수 없는 것은 농업·농촌·농민의 향기, 다시 말하면 그의 아호인 농훈이 '퍼펙트스톰' 앞의 촛불 처지가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미 FTA로 가장 타격을 입을 분야인 농업에 대한 걱정,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답답함, 그야말로 '속 터지는' 상황이다.

지난 11월 29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의 커피숍에서 김 전 장관을 만났다. 최근 그는 강연, 기고, 방송 출연을 통해 한·미 FTA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볼 농업 분야의 현황과 대책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미 FTA로 인한 농·어업 피해를 줄이기 위해 향후 10년간 22조1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발표부터 강하게 성토했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 말투를 흉내 내서… 나도 정부에 있어봐서 아는데, 이게 전부 다 이름표 바꿔 달기, 밑돌 빼서 웃돌 괴기, 집행한 것 다시 불러오기, 미집행한 것 보쌈 싸기, 뭐 이런 식이에요. 제가 아무리 좋게 봐도 이번에 순수하게 새로 들어간 것이 1조5000억원 정도 될까 말까… 이제 농민들도 다 알아요."

우선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지켜본 심경부터 말씀해주시죠.

"국회의원들, 특히 국정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여당 의원들, 앞으로 국정을 맡겠다고 하는 박근혜 의원께서 뭐가 그렇게 급해서, 뭐가 그렇게 안달이 나서 최루가스를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저렇게 분투하실까…. 그 뒤에 있는 힘이 무엇인가, 다국적 거대 자본인가, 권력보다 더 높은 초권력인가, 초국경 권력인가, 그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농민과 중소상공인, 노동자, 서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다가올 우리 후손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니 암담합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농민이 직접적으로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는 어떤 것입니까.

"모든 협정이라는 게 그 피해가 일시에 나타나면 아무도 견딜 수 없고, 또 아무도 하지 못할 거예요. 피해는 확실하게 약자들이 다 떠안고 두고두고 나타날 거거든요. 반면 소수 1%의 계층, 예를 들면 대기업 수출업자, 대기업 수입업자, 대기업 식품가공업자 등은 관세 면제라는 혜택을 천문학적으로 얻습니다. 한쪽은 화장실에 가서 웃는 상황이지만 다른 한쪽은 천장에 불이 붙어 지붕이 곧 무너진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 무너질까 마음을 졸이며 어쩔 수 없이 버티는 모양이 되죠."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농산물을 싸게 사먹을 수 있다고….

"(말을 막으며) 그래서 박근혜 의원이 생각나데요. 그래도 앞으로 대통령 될 야망을 가지신 분인데, 한·미 FTA 찬성 논리의 하나로 소비자 물가 인하를 얘기하더라고요. 투자자-국가소송(ISD)은 별 거 아니라고 하고요. 박 의원 지역구(대구 달성군)의 반이 농촌인데 농민의 사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까 싶어요. 지역구를 방문하고 농민과 스킨십을 해서 사정을 많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농민과 농촌의 화신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록 독재는 했지만 농업·농촌·농민만큼은 확실히 위했다고 회고했다. 박 의원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는 농림부 장관이었는데,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에 큰 기대를 가졌던 일화도 소개했다.

"제가 정부에 있을 때 (박 의원이) 특별히 부탁을 해서 달성군에 농산물유통센터를 만들어드렸거든요. 달성군 땅값이 싼 데다 이미 대구지역 한 곳 예산이 확보돼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오비이락 격이었지만,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생각하고 상당히 농업의 우군으로 여겼던 거죠. 그래서 이번에 한·미 FTA 찬성한다고 했을 때 경악을, 아니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비자에게는 득이라는 논리 자체의 허실은 무엇입니까.

"소비자시민모임이라는 데서 관세가 면제된 식품의 국내 시판 가격을 조사했어요. 대표적인 게 칠레 와인인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것으로 나왔어요. 관세를 한 푼도 물지 않기 때문에 칠레보다도 오히려 더 싸야 할 것 아닙니까. 수입 유통구조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지요. 조금만 인기가 있고 수요가 있을 것 같으면 그냥 값이 두 배, 세 배로 뛰어요."

농산물 개방이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FTA의 효과와 관련해서 유독 대한민국만 소비자 잉여라는 걸 분석해요. 미시경제학계에서는 이미 용도폐기된 이론이자 분석 방법이죠. 이론적으로는 가격 차이에 의해 이익이 발생하지만 실제로는 수입유통업자들, 주로 대기업의 배만 불리게 하는 걸로 낙착되거든요. 결국 농업은 죽고, 소비자는 별로이고, 수입유통업체만 재미 보는 시스템인 거죠. 정부의 홍보가 거짓말이라는 건 세월이 지나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김 전 장관의 더 큰 걱정은 한·미 FTA가 농업 피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제기했던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NTC)을 경제협력기구(OECD)가 받아서 채택하고 있는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이 크게 훼손된다는 것이다. 즉 환경생태계와 기후변화 보전 기능, 홍수·가뭄 등 자연재해 완충기능, 수자원 함양기능, 식량 주권과 안전성 확보 기능, 지역사회공동체 유지 기능, 전통문화 보전 기능 등 연간 70조원에 이르는 값어치의 희생이다.

김 전 장관께서 중시하는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이번 한·미 FTA에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의원, 홍준표 대표, 그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아요. 저는 모르고 있다고 선의로 해석하고 싶어요. 왜 세계 각국이 자기 나라 농업을 지키려고 저렇게 안달하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어떡하든 자기네 농산물을 해외에 팔려고 저렇게 '발악'을 할까요. 세계무역기구(WTO)에 NTC라는 그룹이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스웨덴에도 갔는데, 거기 가장 활발히 참여한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에요. 일본에서는 노다 총리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겠다고 하니까 제일 중요하게 들고 나온 것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 상실분이 연간 3조7000억엔(약 54조원)이라는 것이었어요."

김 전 장관은 국가 존립의 3대 요소인 영토·국민·주권 가운데 영토로서 농어촌, 국민으로서 농어민, 기본주권으로서 식량주권이 한·미 FTA로 결딴나게 생겼다고 우려한다. 이 부분은 최근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세계 곡물시장의 불안이 더해져 그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얼마 전 환경석학으로 불리는 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장을 인터뷰했는데,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식량문제라고 했습니다.

"유엔 산하의 공식적이고 보수적인 기구인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조차 식량·물·에너지 위기가 동시에 몰아닥치는,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 2030년 올 수도 있다고 했어요. 완전한 폭풍이라고 번역하지 마세요. 최악의 폭풍입니다. 우리는 식량·물·에너지가 다 불안합니다. 식량은 OECD 국가에서 최하위예요."

식량자급률 말입니까.

"아, 모르세요? 북한의 공식 식량자급률이 65%예요. 우리는 25%예요. 쌀을 제외하면 4.5%고요. 그런데 요즘 쌀 농사마저 정부가 억제하고 미국으로부터 의무적으로 37만톤이 매년 들어오거든요. 지금과 같은 농업 경시정책이 계속되고 지원책도 이름표 바꿔 달기 식 등등으로 시늉만 내면 한·미 FTA의 최종 이행 기간인 15년쯤 뒤에 우리 식량자급률이 15% 정도에 머물면 아주 천만다행이에요. 미국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엉뚱한 자리에서 명연설을 했잖아요. 식량을 제대로 조달 못 하는 나라가 어떻게 국가의 자주권을 지키느냐고요."

한·칠레 FTA와 포도농가를 예를 들어 한·미 FTA가 별 피해가 없을 거라고 일부 언론과 이명박 대통령은 말합니다.

"제발 내막을 좀 알고 쓰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증인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덕수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이 대통령 결재를 받아와 한·칠레 FTA를 하겠다고 했을 때 농림부에서 조사단을 칠레에 파견했어요. 가서 봤더니 칠레가 장난이 아니게 농업국가예요. 더구나 미국의 대자본이 뒷받침하는 플랜테이션, 즉 대형농장이었죠. 제일 걱정되는 게 국내 과수산업이에요. 교섭단에 아주 애국심과 애농심이 강한 과장을 배석자로 참석시키면서 지침을 줬죠. 사과·배 안 된다, 소고기·돼지고기 안 된다, 포도주는 좋아도 포도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요. 칠레가 거봉 포도를 팔려고 혈안이 돼 있었기 때문에 국내산 생산출하기에는 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서 허용하는 걸 최종 협상 카드로 숨기고서 말입니다. 그 과장이 무리하게 단장을 제치고 브레이크를 걸어서 결국 협상이 깨져버렸어요."

한·칠레 FTA 협상은 1년 4개월 중단됐다가 재개되어 농업 부문에서 우리의 요구가 많이 반영된 채 타결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칠레 FTA 이후 우리 포도가 살아남은 것은 국내 출하 계절에는 수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그 사이 3000억원을 확보해 포도농가를 지원한 결과라는 게 김 전 장관의 설명이다.

같은 FTA이지만 미국과 칠레는 다르군요.

"세계은행 분류에 따르면 남남식(south-south), EU식, 미국식 FTA가 있습니다. 남남식은 한·칠레 FTA처럼 관세만 서로 면제하자, 무엇무엇은 예외로 하자는 것이죠. EU식은 관세는 예외 없이 다 풀되 문화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남남식+양자간투자협정(BIT)이에요. 문화건 사법이건 뭐건 BIT가 다 포함하기 때문에 예외가 없습니다. 세계은행 표현대로 제일 강한 게 미국식 FTA예요."

역대 정부가 그런 걸 알면서 미국과 FTA에 집착한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한·미 FTA의 원조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들 하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먼저 시도한 사실을 아십니까."

아, 그렇습니까.

"한덕수씨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이 되어 한·칠레 FTA와 함께 추진한 것이 미국과의 BIT였습니다. 지금 한·미 FTA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독소조항이 다 들어 있는 것이었어요. 당시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 승인을 받기 위해 이 안건이 올라왔어요. 김종필 당시 총리가 위원장이었는데, 재정경제부·농림부·문화관광부·건설부·교육부·보건복지부 등 관계 장관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했어요. 본부장을 성토하고 고성이 오가니까 위원장이 각하하는 것으로 안건을 폐기해 대통령에게 보고도 못 올라갔던 거예요."

왜 관계 장관들이 극력 반대한 겁니까.

"미국이 네 가지 선행조건을 얘기했어요. 딱 한·미 FTA와 같아요. 한·미 FTA에서는 쇠고기 개방,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기가스 대형차 차별화 철폐, 복제약 특허 50년 간 연계제도, 이 네 가지 아닙니까. 쇠고기만 쌀로 바꿨지 이게 그대로 한·미 BIT의 선행조건으로 들어가 있었어요. 당시 외환위기 사태로 한 푼의 외화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마당에 우리 농업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겠습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아직도 폐기하거나 발효를 늦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제를 깔고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재미 보는 쪽과 피해 보는 쪽이 따로 있으면 이를 조정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관세가 하루아침에 0이 되어 재미 보는 쪽에 1%만 내놓으라고 해서 농업 진흥에 쓰는 것입니다. 저는 '농촌부흥세'라고 합니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안전성과 품질에서 찾도록 해야 합니다. 유기농 육성정책이 해답입니다. 농촌부흥세가 무농약 이상의 유기농업과 일촌일품(一村一品)의 가공·발효식품 사업을 지원하는 데만 쓰도록 하는 것이죠."

김 전 장관은 잠시 말을 멈춘 뒤 호소하듯이 덧붙였다.

"저는 이 일을 박근혜 의원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주도해주었으면 정말 고맙겠어요. 부탁드려요, 박 의원님, 제가 정부에 있을 때 저한테 부탁한 일을 제가 들어주었잖습니까."

<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 주간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