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낮아지려 한 꽃 이소선의 마지막 나날

2011. 12. 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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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태준식 감독의 다큐 '어머니'

전태일 어머니의 2년 기록

아픈 몸 이끌고 노동자 격려

"미친 세상에 꽃 홀씨 뿌린 분"

독립영화제 초청작 10일 상영

영화는 세상에 전하는 '어머니의 독백' 촬영만 남기고 있었다.

"지난해 아들 전태일 열사의 40주기 때 다시 튼튼해지셔서 갑자기 쓰러지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삶을 기록해 생전에 바치려던 영화는 '어머니 이소선'의 마지막까지 담은 추모영상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의 독백은 찍지 못했지만, "나쁜 놈들 다 잊어버리세요"라고 울며 떠나보내는 이들에게 앞니가 몇개나 빠진 늙은 어머니는 영화 곳곳에서 당부를 남긴다.

"인권은 날 때부터 똑같이 갖고 태어나는 거여. 인권이 차별받으면 난 대가리 쳐들고 싸웠어."

"애쓰고 하는데도 표가 안 나면, 더 싸워서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해요. 비정규직을 자기 자손 대대로 물려줘서야 되겠나."

태준식(40) 감독의 <어머니>는 지난 9월3일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의 마지막 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0년대 초반 노동운동이 번번이 지면서 이 난국을 타개할 지혜를 쉬운 언어로 얘기해줄 어른들의 말씀을 <대화>란 제목으로 찍으려 했다가 진행하진 못했죠.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금융위기가 오면서, 갑자기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머니는 "내가 찍을 게 뭐가 있겠냐"며 카메라를 물리치려 했다. 감독은 서울 창신동 전세 6000만원 집에 살던 어머니에게 수시로 찾아가 심부름도 하고, "힘이 없어 (손톱깎이도) 안 눌러진다"는 어머니의 손톱도 깎아주며 거리를 좁혀갔다.

영화는 1970년 스물두살 전태일이 몸을 불사른 뒤, 40여년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산 이소선의 일대기를 기록영화처럼 훑지 않는다. 대신 "태일아, 네가 보고 싶어서 왔네" 하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아들의 묘를 찾는 어머니, 당뇨합병증으로 약 봉투를 머리맡 가득 쌓아놓은 노년의 어머니, 그러면서도 노동 현장을 찾아 격려하고,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생각하고 40년을 꼬박 기다렸는데, 요새는 점점 더 마음 아픈 일이 생긴다"는 어머니의 걱정과 부탁 등을 곁에서 지켜본다. 주름으로 구겨진 어머니의 얼굴과 인디뮤지션 이아립의 음악, 영화에 삽입된 어머니의 옛 사진들이 '강한 울림'으로 어우러진다.

"어머니의 일대기 영상을 원한 분들에겐 아쉬움도 있을 거란 걸 이해해요. 하지만 어머니의 지금 모습만으로도 '이런 삶이 있구나'라고 사람들에게 힘을 줄 거라 생각했죠. 우리 어머니 같은, 저 할머니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걸 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면 해요. 그래서 20~30대 젊은 친구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2003년까지 노동뉴스제작단에서 활동하다 독립다큐 감독으로 활동중인 그는 '어머니 이소선'을 "한없이 낮아지려 했던 꽃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와 빛을 내신 분이죠. 이 미친 세상 속에서 홀씨가 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많은 꽃을 만들어 내셨고요. 어머니가 생전에 꽃을 아주 좋아하시기도 했고요."

<어머니>는 8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에 선정돼, 10일(오후 3시30분)과 15일(오후 1시) 서울 압구정 씨지브이(CGV)에서 상영한다.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10월), 광주인권영화제(11월)에도 상영한 적이 있지만, 최종편집본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편집을 하며 어머니의 얼굴과 계속 마주한 그는 "편집하면서 여러번 울컥했다. 어머니가 영화를 굉장히 보고 싶어 하셨다"고 했다. "학교 수업 때 전태일을 배웠다"며 몇만원을 보낸 중학생 등 일반인들의 후원금 1000만원이 제작비에 보태졌다.

영화엔 지난해 여름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그해 겨울 '전태일 40주기 행사'에 참석해 여러 야당 정치인들 앞에 선 '어머니의 말씀'도 담고 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만 하나가 되면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말이 많았던 어머니였던지라, 태준식 감독은 2009년 노동자대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던 '이소선의 생전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직접 뽑아 지난 9월 빈소에 올려놓았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서울독립영화제·임준형씨 제공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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