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폭군인가, 권력의 희생자인가

2011. 11. 24. 03: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24일 밤 10시 KBS 1TV '역사스페셜'은 궁예와 왕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다룬 '선각대사비의 증언-궁예는 폭군인가'를 방영한다. 흔히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궁예는 도술에 빠진 '얼빠진 중'이다. 왕건은 그런 궁예를 내쫓고 후삼국 통일을 이룩한 '위인'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기록. 고려를 만들어 낸 왕건의 입장에서 궁예를 폄하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왕건이 정통 지방 유력가 집안 출신에 복잡한 혼맥관계로 왕권 강화에 힘썼다는 점에 주목한다.

궁예의 혁명적 사회개혁 사상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던 기득권층으로서는 궁예가 마뜩잖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궁예와는 불가능했던 모종의 타협이, 왕건과는 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추정의 영역이다. 뒤집어 보려 해도 궁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 탓이다. 분명 궁예는 후삼국이 서로 다투던 혼란기에 한반도 중부를 장악한 제왕이었음에도 그렇다.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은 폭군 궁예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전남 강진 무위사에 세워진 선각대사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선각대사비는 고려의 건국을 예언한 인물로 꼽히는 선각대사의 행적을 기록해 둔 비석. 여기에 후삼국 통일과정과 고려 건국 비화를 새겨 두었는데, 왕을 뜻하는 의미로 금상(今上)과 대왕(大王)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금상은 당연히 현재의 왕인 왕건을 일컫는 말인데, 문제는 대왕이다. 예전에는 당연히 왕건일 것이라 봐 왔으나 최연식 목포대 교수가 이 단어가 궁예를 일컫는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 금상과 대왕을 구분해 놓은 것은 이 때문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고려 건국을 예언했다고 해서 왕건의 최측근으로 대접받는 선각대사도 실은 처음에는 궁예의 최측근이었다고 최 교수는 본다. 근거로 당나라에 10여년간 유학하고 돌아온 선각대사를 궁예가 선종의 큰스님으로 대우했고, 만나 보길 원했다는 점을 든다.

최 교수가 더 주목하는 것은 나주 점령의 의의다. 나주를 차지하는 것은 후삼국 통일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912년 나주 공략으로 한반도 중원을 장악한 궁예는 이를 기반으로 신라와 백제를 압박해 나간다. 그러나 궁예의 권력기반은 흔들렸고, 왕건은 918년 마침내 궁예를 제거하고 고려를 세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 [한·미FTA 통과 이후] 국회사무처 '최루탄 김선동' 법적 조치 취할 듯☞ [한·미FTA 통과 이후] 박근혜 "한나라 벌 받았다"☞ 서울 예비군, 강원서 훈련받으라고?☞ KT, 2G서비스 새달 8일 중단☞ 연예인 부자순위 집계해보니…의외의 인물이

2011 신묘년 토끼해 운세와 토정비결 미리미리 확인하세요

관심종목에 대한 증권 전문가의 상세한 진단과 분석 서비스

최신 속보와 뉴스 검색을 서울신문 모바일 웹에서 m.seoul.co.kr

'맛있는 정보! 신선한 뉴스!' 서울신문( www.seoul.co.kr) [ 신문 구독신청]

- Copyrights ⓒ서울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