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문화人]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으로 고국무대 서는 강효정

2011. 11. 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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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무대 위 촛불 앞엔 연애편지가 나풀거린다. 쓰다 만 편지 위로 타티아나 강효정은 스르르 미끄러져 잠에 빠진다. 어느새 그녀 앞엔 오네긴이 서 있다. 로맨틱한 파드되(2인무)가 차이콥스키 음악에 맞춰 촘촘히 펼쳐진다. 춤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꿈에서 깨어난 타티아나의 얼굴은 화사하다. 만지작거렸던 편지 봉투에 말끔한 표정으로 사인을 한다. 화장기 없는 강효정의 뽀얀 얼굴엔 환희가 밀려왔다.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습실에선 존 크랑코 안무의 발레 '오네긴'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크랑코의 '오네긴'은 순진한 처녀 타티아나와 바람둥이 오네긴의 엇갈린 사랑이 줄거리인 푸슈킨 소설에 차이콥스키 음악을 빚어 만든 3막 6장의 드라마틱 발레다. 현대발레 역사에 존 크랑코의 족적은 뚜렷하다. 그의 행보는 '슈투트가르트의 기적'으로 통한다. 영국 발레리노 출신 크랑코가 1960년대 초반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독일 변방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일어섰다. 호소력 짙은 드라마 발레로 이미 저만치 앞서가던 프랑스, 영국, 미국의 선발 명문 발레단을 따라잡은 것이다. 1965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된 '오네긴'은 크랑코 전성기 시절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9년 '오네긴'을 초연한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는 12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다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크랑코의 '오네긴'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수진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강수진이 타티아나로 무대에 설 때 동생역 올가역을 주로 맡았던 이가 강효정(25)이다."제가 동생 전문 무용수였어요. '오네긴'의 올가, '말괄량이 길들이기' 비앙카역이 주특기였거든요."

그랬던 강효정이 이번엔 주역 타티아나역이다. "서른이 지나야 맡게 될 줄 알았는데, 감개무량합니다. 모든 발레리나의 로망인 역을 한국에서 처음 맡게 된 것도 새롭고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외부공연의 캐스트 제의가 들어오면 내부적으로 깐깐한 검토를 한다. 소속 무용수가 그 배역에 적합한지를 두고 한바탕 논쟁도 벌어진다. 하지만 레도 앤더슨 예술감독이 유니버설발레단의 이 제의를 받자마자 강효정에게 한 말은 "우린 널 믿는다"였다.

강효정은 10대중반부터 지금까지 해외에서 생활했다. 여덟 살에 발레를 시작해 선화예중 1학년이던 14세 때 미국 키로프발레아카데미로 유학을 갔고, 16세 때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유럽으로 터전을 옮긴다. 그 뒤 존 크랑코 발레학교를 다니던 중 졸업 1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2003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로 스카우트됐다. 당시 발레단장이 강효정의 연습 장면을 본 뒤 결정한 파격적인 입단이었다. "그런 파격 스카우트였으니 화려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곳엔 그녀와 비슷한 기량의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많이 초조했죠.여기서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5년의 그림자 생활을 뒤로하고 행운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2008년 대타로 투입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주인공 오로라역을 맡으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다. 군무 뒷줄에서 과감히 무대 정중앙으로 도약한 강효정은 2009년 솔리스트,다시 올 4월 수석 무용수로 승격했다. 강수진의 코스를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강효정은 14세 때 한국을 떠난 이후 지금껏 고국 무대엔 두 번 섰다. 지난 2008년과 올 6월 갈라 무대에서였다. 이번 공연은 국내에서 보는 강효정의 첫 전막 발레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난 6월 갈라무대에선 더글러스 리 안무의 단막 모던 '팡파레 LX'를 선보였다. 안경 쓴 못 말리는 코믹 발레리나역을 강효정은 하얀색 튀튀를 입은 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천연덕스럽게 해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부드러운 성격의 모범생 숙녀 이미지지만 무대에선 흡입력 강한 연기파 발레리나가 강효정이다.

리허설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했다. 연출을 맡은 스웨덴왕립발레단 출신 빅터 발쿠는 "예스! 예스! 예스!"를 연발한다. 훤칠한 키, 유연한 몸놀림, 자연스레 몰입하는 연기가 편안해보였다. "크랑코 안무가 원래 그렇습니다. 억지로 예쁘게 꾸미려 하지 않는 게 특징이에요. 스텝 하나하나가 편안해요. 장면과 기분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옵니다." 상대역 '나쁜 남자' 오네긴역은 같은 발레단 수석무용수 애반 매키가 맡는다. 키로프발레아카데미 동문인 그는 이미 독일 현지에서 수차례 오네긴역을 소화했다. 강효정은 "3막의 반전이 특히 볼 만하다"며 "슈투트가르트엔 '오네긴' 광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해마다 공연을 합니다. 중독성 강한 발레거든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선 발레단과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외로움을 느낄 때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젠 그런 것쯤 순식간에 물리칠 만큼 도사가 다 됐다"고 말하는 스물다섯 발레리나 강효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토슈즈를 갈아신었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사진=김범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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